죽으면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린다고 한다. 그간 밀린 말을 모두 쏟아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말을 잘하려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움직일 기력도 없을 정도로 아프면 귀가 밝아졌다.
잔병이 오래간다. 덕분에 연차를 쓰고 누워 있다. 누워 있으니 온갖 소리가 다 달라붙는다. 우체부만 보면 발을 구르며 반가워하는 할아버지 목소리, 놀이터를 향해 올라가는 어린이집 아이들 떠드는 소리, 창문 위에 터를 잡은 비둘기 울음소리, 아래층에서 들리는 북소리까지. 귀를 막아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와 신경을 긁는다.
북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둥둥. 미쳐버릴 것 같다. 둥둥. 귀신을 부르는 소리인가. 둥둥. 귀신을 내보내는 소리인가. 둥둥. 귀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둥둥. 내가 내려가고. 둥둥. 귀신을 내보내는 소리에도 둥둥. 내가 내려갈 거다. 둥둥. 시끄러워서 귀신이 오겠냐고 내 넋만 나가겠다고 둥둥. 소리칠 것이다. 둥둥.
일어나 아랫집에 가려다 넘어질뻔했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땅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북소리에 맞춰 주먹으로 바닥을 친다. 쿵쿵, 둥둥, 쿵쿵, 둥둥. 위로 찾아오지도 않고 끝낼 생각도 않는 것이 귀신이 아니라 진짜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싶어 진다. 내가 귀신이었으면 굿판 엎었다. 그만 좀 불러라. 좀 쉬자 하면서.
지치고 힘드니 병원 생각이 난다. 병원에서도 남 생각 안 하던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자는 시간 옆 침대 보호자가 강판에 무를 갈았다. 아들이 소화가 안된다며 무를 갈았다. 드르륵드르륵 아들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무가 갈리는 소리. 몸에 달라붙었다. 아들을 위한 마음을 위해서 견뎌보자 싶었는데 드르륵드르륵. 내가 무가 되어 강판에 갈릴 것만 같았다. 드르륵드르륵. 사람들이 배선실이 아니라 왜 여기에서 그러는 거냐고 물어도 드르륵드르륵. 대답 없이 무를 갈았다. 드르륵드르륵. 간호사가 오고 나서야 멈췄다. 모두 소화 불량에 걸린 듯한 표정으로 무와 강판을 치우는 보호자를 봤었다. 보호자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정리가 끝나자 보호자 침대에 눕더니 아무 말 않고 자는 척했다.
힘들게 간 무즙은 왜 아들에게 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둥둥. 주술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둥둥. 소화 불량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둥둥. 병원에서 북을 칠 수는 없으니까. 둥둥. 강판에 무를 간 것이 아닐까. 둥둥.
독감 이놈 참 지독하다. 과거의 소음까지 나를 괴롭히다니 도저히 안 되겠다. 긴다. 기어서 약이 있는 곳으로 간다. 물도 없이 약을 먹고 그대로 바로 누웠다. 소리들아, 죽을 생각 없다. 천천히 듣고 싶다. 할 말도 없다. 그만 좀 괴롭혀라. 약기운이 빠르게 퍼진다. 둥둥거리던 소리도 이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살 것이다. 졸리다.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