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우리는 우리에게 어른이 되지 말자

by 조매영

오랜만에 K를 만났다. 작년 초에 의도치 않은 퇴사를 했고 다시 취업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안 되었다고 했다.


취업한 기념으로 밥을 산다는 K를 따라온 이자카야. 안주와 하이볼을 앞에 두고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가 고등학생이 되었다가 성인이 되었다. 중학생 때 이야기를 하며 마신 하이볼이 제일 맛있었다.


대화의 시간이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스럽게 하이볼은 밍밍해졌다. 혀도 밍밍해져서 할 말이 없어졌다.


K는 내게 말했다. 어른이 다 되었네. 예전 같으면 퇴사 이유부터 시작해서 입사하기까지 상세하게 물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고.


대답 대신 멋쩍게 웃어 보였다. 남의 속사정은 이제 별로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릴 적에 만난 어른들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어떻게 지낼까. 그들은 정말 어른 같았다. 이제 그들보다 우리가 더 나이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어른 같지 않다.


입을 다문 채 안주만 들여다봤다. 입에 맞지 않냐는 K의 질문에 음식을 천천히 먹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엔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민하던 것을 잊고 정말 음식을 천천히 먹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며 악수를 했다. 악수는 너무 어른인 것 같아 포옹도 했다. 우리는 어른으로서 만나지 말자. 중얼거렸다. 더 자랄 수 있다 믿고 싶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파도 글도 쓰고 출근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