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알람소리에 깨고 싶었다. 내 기침 소리에 몇 번을 깼는지 모르겠다. 천장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병도 어두운 천장과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왜 아플 때마다 평생 아플 것만 같을까. 이제 일주일째 벌써 지겹다.
마음이 심장에 있다면 정신은 코에 있지 않는 것 같다. 코가 막히니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침대에 걸터앉았다. 목구멍은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익숙한 통증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멍한 상태로 문을 바라봤다. 문을 열고 나가서 물을 마시고 싶다. 엄마를 부른다고 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도 괜히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아파. 목말라. 도와줘.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당연히 대답은 들리지 않고 문도 그대로 닫혀 있다.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누웠다. 괜히 목을 만진다. 목을 만지니 익숙한 통증의 정체가 생각났다. 임파선이 부었을 때 느꼈던 통증과 비슷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임파선을 만졌다. 붓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백혈병 확진을 받기 전 몇 가지 증상이 있었는데 임파선이 많이 부었던 것도 있었다. 어이가 없다. 아프긴 한데 죽을병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드니 힘이 났다.
휘청거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에 물은 없고. 방치된 지 1년은 족히 넘은 레몬만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타석증이 생겨 민간요법으로 써먹었던 것이다. 타석증은 결석이 침샘을 막는 병이다. 레몬의 신맛을 이용해 침샘을 막고 있는 결석을 밀어내는 민간요법이었는데 도움이 되었다. 수전 터지듯 침이 터져 나와 결석을 밀어냈었던 것이다. 나를 위하던 것들이 쪼그라든 모습을 보니 측은하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쓸쓸하니 나중에 버려야겠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물이 어딨는지 한참을 찾다가 화장실에 가서 코를 풀고 나니 생각났다. 베란다에 있었다. 여섯 개 들이 비닐 포장을 대충 뜯고 물병 하나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반을 마셨다. 물을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살 것 같으니 텃밭이 생각났다. 걔들도 물 먹여야겠다 싶어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빗소리가 들린다. 텃밭은 내일가도 괜찮을 것 같다. 빗소리에 내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테고 과식하고 있을 텐데 내가 가면 신경만 쓰일 것 같다.
출근 준비를 하는데 멍하다. 코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고 몸은 아파도 아파도 끝이 없다. 글도 쓸 것이 끝없이 나올 수는 없을까. 글도 써야 하는데 머리가 멍하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매일 버티고 사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지친다. 콧물이 또 쌓였나 맹한 소리 하고 있네. 마냥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 그만 씻어야겠다. 군대도 그랬고 백혈병도 그랬고 다른 잔병들도 그랬다. 결국 끝은 있었다. 끝을 기대할 수 없어서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도 백지 앞에 앉아 있다 보면 끝이 있을 것이다. 계속 백지상태일 것 같아 두렵지만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 하지 않던가. 버티고 있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