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4월이다. 4월이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가까워간다.

by 조매영

텃밭에 물을 주고 동네를 걷는다. 밤공기가 불안하다면 새벽공기는 분명하다. 내 발소리가 더욱 선명해진다. 꽃나무를 지나면 꽃향기가 나고 전봇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쓰레기들을 지나면 쓰레기 냄새가 난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곳을 보면 다른 고양이가 있고 신발 끄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노인이 폐지가 담긴 리어카를 끌며 지나가고 있다.


오랜만이다. 한참 새벽 산책을 했던 적이 언제였더라. 2014년이었다. 안산이었다. 와동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자취를 했었다. 매일 눈을 뜨면 씻지도 않고 집에게 도망쳤다. 아무리 걸어도 발소리가 선명해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꽃나무를 지났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곳을 봤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신발 끄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시 앞을 봤다. 창백한 건물들이 있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디를 봐도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울음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울음이 네 울음이고 네 울음이 내 울음이었으니까. 울음을 그러모으며 걸었다.


걷다 보면 안산올림픽공원이었다. 걷다 보면 화랑유원지였다. 울음이 마른 이들과 울음을 나누다 보면 아침이었다. 잃어버린 걸음소리가 너무 많았다. 아침공기가 고요했으므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바다 냄새가 났다. 하나 둘 늘어나던 자동차. 무표정하게 출근하는 사람들. 무표정하게 등교하는 아이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던 잃어버린 걸음 소리들. 살기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살려면 가만히 있으라 해선 안 되었다.


고요는 우리를 자해하게 만들었다. 집은 어디보다 고요가 가득했다. 옆 집의 고요가. 앞 집의 고요가 문을 두드렸다. 무단침입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산책이 끝나면 씻지도 않고 바로 등교하는 날이 많았다. 매일 밤 피로에 절여 있고 나서야 씻었다. 그리고 누워 자야 했다. 고요가 오기 전에. 고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전에.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고요를 피하기 위해 온갖 소리를 찾던 시간. 울음 밖에 찾지 못했던 시간. 울음이라도 그러모으며 걸어야 했던 시간. 새벽공기조차도 불분명했던 시간. 그것들이 모두 진짜 있었던 일이라니 말이 안 된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진짜로 일어났었다.


10년을 반복해 중얼거리며 걷는다. 다채로운 풍경은 그날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이제는 다채로운 풍경이 거짓 같다. 여태 살아 있으면서 바뀐 것이 별로 없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자처해서 가만히 있게 되었다. 여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죽고 있던 것이다. 그날을 나를 먼 전생으로 취급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아침이 오기 전에 집으로 향한다. 고요는 이제 자해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길 좋아한다. 날것의 정신으로 질문을 듣고 답해야 할 것들이 많다. 선명해진 정신으로 마주 해야 할 것들이 많은 4월이다.



와동은 세월호 희생자가 65명이나 나온 동네다.

안산올림픽공원은 세월호 희생자 임시분향소가 있던 자리다.

화랑유원지는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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