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여기 미련곰탱이 있어요.

by 조매영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해치우려는 못된 습관이 있다. 나이 들수록 소화능력은 떨어진다던데 아직도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엔 치킨 한 마리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으려다 탈이나 한참을 앓아눕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두 마리 먹어도 끄덕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약해진 걸까. 앓아누워있는 동안 친구들은 내게 미련곰탱이라며 놀렸다. 서러웠다. 두 마리를 먹을 수 없게 된 것이. 습관 고칠 생각은 않고 탈 나지 않던 시기나 그리워하고 앉아있다니. 정말 친구들 말대로 미련곰탱이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습관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폭식하는 사람의 영상을 찾아봤다. 영상 속 주인공은 우울증으로 인해 공허함과 공복감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맞다.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먹고 나면 숨은 쉬기 괴로울지언정 공허하진 않았다. 분명 공허는 위의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사람도 공허가 연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꼭꼭 씹는 모습에서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감정이 공허를 채우면 좋겠다고 댓글을 달고 영상을 껐다. 내 폭식도 공허함 때문이려나. 공허함 때문에 폭식을 했던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내게는 기존의 습관에 공허함이란 옷을 입힌 느낌이었다.


또 다른 이의 영상을 클릭했다. 폭식 영상인 줄 알았는데 먹방이었다. 식탁 위에 다양하고 많은 양의 음식이 올려져 있었다. 이번 영상 속 주인공은 음식을 앞에 두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 입씩 맛을 보며 맛을 설명했다. 먹어본 것은 과장되게 느껴졌고 먹어보지 못한 것은 믿기 힘든 말들 뿐이었다. 여유로움을 끝까지 잃지 않고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인상 깊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공감 가는 것이 없었다. 난 뭐에 심통이 난 걸까. 영상 속 식탁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던 음식을 배달시켰다. 꿔바로우였다. 먹었는데도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입천장만 다 까졌다.


입안에서 허연 피부를 뜯어내다 방금 영상 속 주인공은 입천장이 괜찮았던가 궁금해졌다. 영상을 다시 틀었다. 꿔바로우를 먹고 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음식들을 비우고 있었다. 여유롭게 먹는 모습이 불편해졌다.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여유로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항상 먹기 급급했던 것 같다. 생각났다.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야 했다.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동네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동네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그럴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데려 함께 밥을 먹으려고 하는 친구들이 고마웠지만 부담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친구 부모님이 내 욕을 하거나 친구를 혼낼까 두려웠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친구들이 보이면 숨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면 자꾸만 밥을 얻어먹고 싶단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이제 도망갈 일도 없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데 습관은 그대로 있었다. 길고양이도 식탐이 강하다고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당장 먹지 못하면 영원히 다시 먹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와 별반 다를 것 없구나. 고양이의 불안감이 이해 간다. 길에서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고양이의 식탐 교정법은 마저 읽는다. 주인과 교감이 강해지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면 식탐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한다. 안정감이란 말이 참 멀게 느껴진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인데 막상 들으니 이렇게 나와 멀 수 있는 단어가 있나 싶다. 갈수록 소화기능은 떨어질 텐데 습관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참 멀다. 어떻게 하지. 식탐을 고치지 못한 고양이처럼 평생 제한 급식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습관의 원인을 알게 되니 진짜 야생 동물이 따로 없구나 싶다. 친구들이 뭘 알고 미련곰탱이라 부른 것은 아니겠지. 아닐 거다. 헛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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