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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9. 2024

긴장의 끝

 선생님이 코를 그만 만지라고 했다. 고등학교 수행평가 시간. 발표를 하다 말고 깜짝 놀라 코를 만지던 손을 뒤로 숨겼다. 준비한 말이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졌다. 발표를 마저 하라는 말에 앞을 봤다.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스크린에 띄운 발표 자료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음 화면으로 넘기려고 하는데 이전 화면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뒤죽박죽 되었다. 식은땀이 났다. 고개를 드니 아이들의 눈이 총알처럼 보였다.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님의 다그치는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발표 자료에 요약된 글을 읽었다. 날아갔던 말 중 하나가 콧잔등에 앉았다. 발음이 엉켰다. 그만 발표하고 자리로 돌아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앉아 다음 발표자를 봤다. 유려한 말솜씨에 날아가버린 말들이 생각났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코에 손이 올라가려 했다. 남은 손으로 꼬집으며 붙잡았다.


 모든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발표마다 가벼운 코멘트를 했다. 내 차례는 넘어갔다. 아이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발표를 다시 시킬까 봐 왜 코멘트가 없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진짜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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