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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10. 2024

혼자서도 잘해요

 변소는 달동네 오르막길이 시작하는 지점에 있었다. 오르막길에 사는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변소를 지나쳐야 했다. 


 문 이음쇠가 고장 나 있었지만 아무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변소를 다녀오면 시원한 마음에 문이 고장 난 것을 잊는 것 같았다. 볼 일을 보려면 손잡이에 묶여 있는 노끈을 힘껏 잡아당겨야 했다. 당기는 힘만큼 틈이 작아졌다. 


 다섯 살, 처음으로 혼자 변소에 간 날. 아무리 힘껏 당겨도 틈은 작아지지 않았다. 상체가 가려지는 것이 전부였다.


 동네 사람들은 매일 같은 신발을 신었다. 내려가는 신발도 올라가는 신발도 하나같이 먼지투성이였다. 익숙한 신발이 보이면 생각나는 이름을 외쳤다. 불리는 이름마다 내 이름을 불러줬다.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고도 해줬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신발이 보이는 족족 신발의 주인을 호명했다. 엄마를 변소 문 앞에 세우지 않고 혼자 변소에 왔어요. 라고도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너무 길어져서 그럴 순 없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두 바빴다. 


 부끄럽다고 그만하라고 파리가 엉덩이에 달라붙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자랑을 멈출 수 없었다. 변소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파리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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