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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Dec 11. 2018

공복에는 괴롭기도 힘들다.


 응급실은 두 가지 표정밖에 없었다. 걱정스러워하는 표정과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엄마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엄마는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스무 살 때 천재 병을 앓으며 끝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배가 고팠다. 뭐라도 먹을 수 있다면 누구보다 행복할 것 같았다. 배가 고프니 죽지 않을까라는 두려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려움도 일단은 먹어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는 불편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딱히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치료 방향도 궁금하지 않았다. 검사를 들어갈 때마다 밥을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게 다시 불편한 것을 묻는다면 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뿐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진짜 나에게 불편한 것은 무엇일까. 거추장스러운 링거대가 불편하다. 대기실에서 엄마가 다른 보호자들과 수다를 떨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내 병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다. 안타까워하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불편하다. 검사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도대체 내 안에 백혈병은 있긴 한 걸까.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병이 줄 고통에 대한 공포보다 엄마가 내게서 느끼는 공포가 더 현실적이었다. 엄마는 보호자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내가 호출될 때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불릴 때마다 엄마는 아픈 아들을 가진 엄마라는 것을 새로이 깨닫는 것 같았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나는 아프지 않다. 그런데 아프다고 한다. 아프다는 건 도대체 무얼까.   

 친구들에게 백혈병에 걸렸다고 전화했다. 첫 통화부터 쇼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내가 휴가를 나왔으니 술이나 좀 사달라는 뉘앙스로 백혈병 소식을 알린 것도 있겠지만. 믿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병원에 확인 전화하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병을 알리고 나니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큰 병이 걸린 것은 처음이라 조금 억울하긴 했는데 하소연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로도 받을 마음이 없었다. 군대에 있느라 연락도 자주 못 했으니 그동안의 안부나 주고받았다. 다음에 만나 맛있는 것이나 먹자고 말했다. 다음에 만나 술이나 한잔하자는 녀석도 있었다. 덕분에 별일 아닌 것 같아져 고마웠다.


 자정이 넘어서야 의사는 밥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침대는 만석이라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대기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급한 환자가 아닌 걸까? 안심되었다. 안심되니 피치콜이 먹고 싶어 졌다. 군 병원에서 팔던 피자, 치킨, 콜라로 이루어진 세트의 줄임말이다. 때론 엄살까지 부리면서 군 병원에 가려했던 이유였다. 역시 병원 하면 피치콜이지. 밤이 되자 보호자도 응급 환자도 별로 없어졌다. 이내 대기실에는 엄마와 나만 남았다. 양념치킨을 시켰다. 치킨이 실했다. 붉었지만 적당히 매콤했고 적당히 달달했다. 적당한 것과 적당한 것이 합쳐지니 행복한 맛이었다. 한입 가득 뜯어도 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해서 좋았다. 엄마와 나는 닭다리 하나씩 뜯고 나서야 대화 같은 대화를 처음 나눴다. 엄마는 낮 동안 주워들은 투병에 대한 조언을 풀어놨다. 나는 군대에서부터 생각해두었던 앞으로 먹고 싶은 것들을 풀어놨다. 거기에 공포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도 배가 고팠구나. 엄마는 배가 고파서 운 것 같았다. 엄마가 맛있게 치킨을 뜯는 모습이 좋다. 나도 즐거웠다. 열심히 치킨을 뜯었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배가 부르니 이제 괴로운 것들을 생각해야 할 차례였는데 졸려서 괴로울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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