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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Dec 12. 2018

투병에도 좋은 선배는 큰 힘이 된다.


 응급실, 중증 환자들만 모여있는 자리로 옮겨졌다.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 구경할 것도 없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엄마가 퇴근하며 사 오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옆자리 젊은 그러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자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어떤 병이냐고. 먹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놀랐다. 그녀는 얼굴이 황달로 노랬고, 복수에 찬 배는 이불로도 가려지지 않아 누가 봐도 위급해 보였다. 누가 봐도 죽음이 그녀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웃으며 내게 어떤 병이냐고 물은 것이다.


 아직 의증이긴 한데, 백혈병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러시구나.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요.
 너무 잘 드셔서 저도 처음으로 뭔가 먹고 싶어 졌다니까요.  


 몇 년을 앓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봤지만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도 말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병을 알게 되면 종일 울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와 다르게 친구들과 전화하며 웃는 모습과 먹고 또 먹고 또 또 먹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없긴 했다. 다들 누워서 벽을 바라보거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은 눈을 감고 앓는 소리를 내기 바빴다. 일단 먹고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 농담으로 던진 말에 그녀는 밝게 웃어 주었다. 그녀의 깊게 파인 눈두덩이가 눈웃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초보 환자가 오래된 환자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금방 마음이 열려 실없이 군대 이야기를 했다. 큰 훈련 중에 증상이 있었는데 몰랐다는 이야기 유격훈련 일주일 전에 알았다는 이야기 그녀는 불편한 기색 없이 즐겁게 들어주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계속 그렇게 잘 먹고 계속 잘 웃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추임새처럼 해줬다.

  좋은 선배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 미래와 자신의 현재는 다르다고 선을 긋듯이 그랬다. 그 배려가 고마웠다.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병동에 올라갔다면 같은 병명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을 보며 절망만 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항암 후에 녹두를 갈아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항암제가 독이라고 했다. 암을 독으로 잡는다고 했다. 녹두가 해독에 좋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항암이 남긴 독이 도대체 어떤 고통을 줬길래 그런 표정까지 지으며 해독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걸까. 녹두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겪었던 효과는 엄청났던 것 같았다. 시골에서 농약을 치거나 마시면 녹두를 갈아 마신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꼭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꼭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같이 꼭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웃기만 할 뿐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선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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