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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10. 2021

사람이 사는 곳

우린 언제나 즐거울 수 있지(2011)


 군 입대를 앞두고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하나 같이 동네 형들은 군 입대를 가지고 놀렸었다. 그러다 놀릴 만큼 다 놀렸다 싶으면 반창고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을 했었다. 화를 내려고 하면 술을 사줬다. 사막이나 정글이나 하다못해 바다에도 인공 섬을 띄워서 사람은 살고 있다. 이제 우주까지 그 범위를 넓히려고 하는데 사람 살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더 힘들겠다는 말하고 싶었지만 사주는 술이 너무 달아 그럴 수 없었다.   


 병실에서의 첫날밤, 나는 왜 그 술자리들이 생각났던 걸까. 군대는 분명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었고  분노가 되는 사람이 있었다. 매달 있던 훈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고 분노를 도핑 삼아 이겨냈었다. 분명 KCTC(육군 과학화전투훈련) 때도 백혈병 증상이 있었는데 어찌 살아남은 것을 보면 위로와 분노의 힘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뭐? 투병과는 무슨 상관이람. 복장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군복을 입고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올라와서 그런 것 같다. 그것도 그렇고 옆 자리 어르신이 준위로 정년 퇴역하신 직업군인이셨다는 이야기를 까지 들으니 군기가 저절로 들 수밖에.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니 환자들이 나를 구경(?)하러 모이셨다. 병동은 젊은 사람이 귀하고 우울감에 빠져 있지 않은 환자는 더욱 귀했다. 병에 걸린 것을 실감하지도 못한 채 마냥 신나 있는 내가 신기하셨던 것 같다. 아니 구경하려 오신 분들이 더 신기한 거 아닌가. 자신들도 혈액 암이면서 말이야. 참 이상하신 분들이네 라고 생각하는 도중 한 분이 현역 원사님이시라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장난스럽게 경례를 받으시는 원사님을 보니 군대에서 선임에게 들었으며 후임에게 누누이 말했던 우리의 적은 간부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투병 속에서는 동지인데 어떻게 하나. 특수부대 훈련 중에 병사 간부 할 것 없이 같이 받는 것이 있다던데 우리가 그랬다. 그곳에서는 계급 상관없이 전우애를 느낀다던데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원사님은 너무나 유머러스하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셨다. 


 치료가 시작하고 항암제는 고통이 아니라 분노 그 자체였다. 무기력과 울렁거림이 극단적으로 뒤엉킨 느낌이랄까. 하지만 원사님이나 아저씨들이 먼저 항암 끝났다고 놀러 오셔서 약 올리시는 통에 울렁거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은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었다. 항암 치료 중에 든 생각은 나도 빨리 끝내서 놀리러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고통이나 우울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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