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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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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0. 2024

흐르다 보니 어른

 일곱 살. 집에 들어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문방구 앞 오락기에 앉아 레버를 마구 돌리며 버튼을 연타했다. 화면 속 캐릭터들이 화려한 기술을 쉼 없이 선보였다.


 인기척도 없이 주인 할아버지가 문방구에서 나와서는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춘 채 얼어붙었다. 할아버지가 돈 넣고 만지라며 욕을 해댔지만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화면을 봤다. 내가 레버를 돌리지 않아도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캐릭터들은 분주히 날아다니고 장풍을 쏘아대고 있었다.


 눈치를 보다 일어나 뛰었다. 얼얼해진 뒤통수를 만지며 골목에서 골목으로 뛰었다. 좁은 물길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된 것 같았다. 욕 섞인 고함은 물수제비처럼 마음속에 몇 번 튀어 오르더니 가라앉았다.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집 앞을 서성였다. 밤이 오면 창문 아래 앉아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오락기에서 레버를 돌리고 버튼을 눌러 필살기를 쓰던 동네 형들처럼 신중해야 했다. 문 손잡이를 돌렸다. 닫혀 있었다. 엄마가 미리 열어두는 것을 잊어먹은 것 같았다. 엄마의 꿈에만 닿기를 기도하며 작고 짧은소리가 나도록 문을 두드렸다. 열리지 않았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아빠의 고성이 필살기처럼 터져 나왔다. 문이 열리기만 바랬을 뿐이었는데 손잡이를 두 번 돌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문을 서너 번 두드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빠는 왜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나는 단 한 번도 아빠를 선택 한 적 없었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뛰었다. 여러 개의 가로등을 지나 가로등이 없을 때까지 뛰었다. 멈춰 서니 숨이 심하게 차올랐다. 공포가 폭우처럼 쏟아져 시냇물이 넘치고 있었다.


 내 안에는 피라미는 없고 서러움만 남아 헤엄치고 다다. 흐르고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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