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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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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3. 2024

거미를 내쫓았다.

 샤워를 하고 나오던 중에 천장과 벽 이음새에 거미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를 닦으며 거미줄을 봤다. 거미줄 모양새가 엉망이다. 무언가 걸렸던 흔적도 없다. 머리에 물기가 다 말라가는데도 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겨우내 굶어 아사한 걸까. 출근 전 글을 쓰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저녁에 치우기로 결심하고 시선을 거두려는 순간 실거미 한 마리가 힘겹게 움직이는 것을 봤다.


 빗자루를 들고 와 거미줄을 걷어냈다. 빗자루를 가지고 오는 동안 두어 개의 페트병과 서너 개의 에너지 음료를 발로 밀쳤다. 반려동물과 집사는 닮는다던데 엉망인 거미줄을 보니 우리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가는 실거미를 빗자루로 살짝 누르고 휴지로 감쌌다. 현관문 밖으로 휴지를 털어냈다. 제대로 달아났는지 확인도 않고 문을 닫았다.


 쫓겨난 거미는 당혹스러울까. 나도 거미줄은 아니었지만 엉망인 옷을 챙기지도 못하고 발가 벗겨진 채 쫓겨났던 적이 있었다. 정말 거미가 나와 닮았다면 당장은 맞을(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오트밀에 견과류와 닭가슴살을 넣고 먹었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에너지 음료도 먹었다. 아침 일기를 쓰기 전 현관문을 열었다. 먼지 때문에 보일 리가 없는데도 실거미를 찾아보았다. 집에 들이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마음에 쓰였다. 그 사이에 떠난 것 같다. 나는 벌벌 떨기만 했었는데. 나와 닮기는커녕 나보다 용감한 녀석이었네.


 글을 쓰기 전 거미의 정체부터 검색해 봤다. 집유령거미라고 한다. 거미계의 지박령 같은 건가. 무당집은 아래인데 아무래도 집을 잘못 찾은 것 같다. 나도 빈 건물 옥상에 겉옷을 깔고 벌벌 떨며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학교는 가겠다고 아침에는 집에 갔었지. 임시거처로서 우리 집은 괜찮았을까나. 거미가 집에 잘 들어갔으면 좋겠다. 엉망인 거미줄을 생각하니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같은 녀석인데. 거미 학교에 가서 거미줄 치는 법도 제대로 배우고.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걸까. 그래도 거미도 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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