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결혼을 하며 통장을 합쳤다. 통장은 용도에 따라 5가지로 나뉜다. 생활비통장, 자산배분통장, 비상금통장, 예비비통장, 용돈통장이다. 부부 공동생활비는 생활비통장에서 사용된다. 월급이 들어오면 자산배분통장에 일괄 입금하여 매달 정해진 예산을 각각의 소비 통장에 옮긴 후 남은 돈은 모두 투자한다. 비상금통장은 30만 원을 매달 채워두고 경조사비에 주로 사용한다. 예비비통장에는 20만 원을 매달 입금하여 여행자금, 병원비 등 갑작스럽게 생활비가 부족해질 경우에 대비한다. 그리고 각자의 용돈통장에 용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한다.
용돈은 월 30만 원, 아내의 경우 60만 원이다. 아내는 여자여서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줄이고 싶었지만 타협이 되지 않으면 협상이 원점으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어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출산을 하고 아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육아휴직기간에는 국가에서 지급되는 소정의 급여 외 회사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육아휴직기간은 월급이 안 나오잖아?"
"그리고 회사도 안 나가고 집에 있으니까, 용돈은 따로 지급 안 할게"
아내가 뒤통수라도 맞은 듯이 기겁을 하고 말한다.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래도 생활할 돈은 있어야지?"
"아니 당연히 생활비 통장에 돈 있으니까 그걸로 쓰면 되지"
"그냥 생활비 통장에 든 돈이 전부 용돈이라고 생각해"
"어쨌든 월급도 거의 반으로 줄어드는 거라 우리 긴축재정해야 돼"
언짢아 보이지만,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일단 알았어"
"월급이 줄어들긴 하니까..."
그렇게 아내가 쿨하게 동의하면서 용돈만큼 소비비용이 절약됐다. 육아휴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아내는 첫 달을 생활비 통장의 예산 안에서 생활하며 아이를 양육했다. 그렇게 서로가 아끼고 양보하며 소소한 일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으로 밝혀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시기 대리로 진급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원이 아닌 대리가 된 이후로 복잡한 업무들을 많이 떠맡아 업무시간에는 정신이 없었다. 이 날도 업체 한 곳과 이견이 생겨 한참을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다 어느 정도 타협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온 전화였다. 업무시간에 잘 전화를 하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되는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 왜? 무슨 일 있어?"
다급한 목소리가 느껴진다.
"여보 얼른 생활비 통장에 돈 좀 넣어줘"
"지금 잔액부족이야"
다음 달 예산을 넣으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당황스러웠다.
"아니 벌써 잔액이 부족하다고?"
"아직 다음 달 예산을 입금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일단 알겠고 돈부터 넣어"
"지금 계산대에 서있다고"
빚쟁이가 따로 없었다. 다급해 보이는 것 같아 돈을 옮기려다 궁금한 마음에 다시 묻는다.
"아! 여보 얼마가 부족한데?"
"얼마를 넣어야 돼?"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내지른다.
"아니 그냥 예비비 다 넣으면 되지"
"일단 3만 원 넘게 나왔으니까, 4만 원 이상 넣어놔"
다시 한번 타이르듯 이야기한다.
"일단, 급해 보이니까 넣는데, 다음부터 초과하면 안 돼, 알았지?"
"여보?, 여보?
그냥 끊어버렸다. 그냥 돈을 확 넣지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뒷감당이 안될 거 같아 얼른 돈을 옮겼다. 그날 저녁 아내는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생활비는 이미 아이가 태어난 후 들어갈 비용까지 사전에 함께 검토하고 증액한 금액이다. 여기에 다른 육아하는 가정들의 생활비도 사전에 파악하여 부족하지 않게 책정했다.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여보, 우리가 사전에 들어가는 비용 다 알아보고 잡은 예산이라 증액은 어려워"
"근데 생활하다 보니 부족한 게 많아, 아까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돈을 빨리 안 넣어줘서 벌서듯 서 있었다고"
"아 알겠는데, 예비비까지 바닥나면 돈이 없어"
"아이거는 빼더라도, 그럼 우린 라면만 먹어야 돼"
이 말에 아내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맞지 않으려면 우선 도망가야 한다. 신혼 초 처음 함께 예산을 세우고 생활비를 쓸 때, 생활비통장의 체크카드를 아내가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했다. 돈을 사용할 때 대중이 없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매했고 부족하면 신용카드로 사는 게 익숙했다. 한 번도 신용카드를 만들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아내는 생활비카드에 잔액이 없으면 신용카드를 사용해서 생활비를 썼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내가 다음 달 월급에서 특별예산을 편성하여 메꾸었다. 이런 상황이 두세 번 반복되자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아내에게 신용카드를 없애길 종용했다. 3개의 신용카드 중 2개는 해지하고 하나만 비상용으로 집에 보관하여 소유하는 것으로 최종 타협을 봤다. 그리고 생활비를 다 쓰고 나면 정말 라면만 먹었다. 주말 세끼를 모두 라면만 먹은 적도 있었다. 예산에 맞춰 사는 것이 어느 정도 습관화되면서 조금씩 숨통을 트여 주었지만, 고역이었던 그때의 경험을 끄집어냈으니 맞지 않으려면 도망가야 했다. 도망치듯 뒷걸음질하며 한 마디 남겼다.
"아껴 써"
평일 업무시간에 크게 통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가끔씩 아내에게 연락이 온다. 생활비 통장에 돈을 넣어달라는 전화이다. 마트, 키즈카페, 카페 등 정말 다양한 장소에서 잔액이 부족하다고 전화한다. 그럴 때마다 아껴 써달라는 이야기를 달콤하게 속삭였다. 다 듣지도 않고 통화를 종료하는 아내를 향해...
다른 엄마들은 출산휴가에 육아휴직까지 꽉 채우고 복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내는 육아휴직 1년도 다 채우지 않고 복직을 서두른다. 아이가 100일이 되었을 때, 가정 어린이집에 아이를 한 시간, 두 시간씩 맡겨보며 적응을 시키더니 구민회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집에 운이 좋게 입학허가가 나서 그곳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다. 무던한 아이는 어느 곳에서든 적응을 잘하여 우리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남들은 영어유치원이다, 사립초등학교다, 아이의 교육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우리의 양육가치는 분명했다. 구민회관 어린이집은 5세 이후로는 다닐 수가 없었고 다음 행선지도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을 찾아 입학시켰다. 이유는 하나였다. 유치원 대비 어린이집이 경제적으로 저렴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치원에서 배웠던 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 답은 당연한 것이다. 다 까먹고 기억도 못할 곳에 돈을 크게 쓸 필요가 없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아내는 복직을 결정했다. 아내는 일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없었고, 오히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주말에도 늘 나들이를 나가는 것을 즐기고 취미는 여행계획을 잡는 것이다. 하루 종일 육아에 매진하는 일은 결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돈이 없는 삶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나 다음 달부터 출근하니까, 용돈 주는 거 잊지 말고 예산에 잡아둬"
싱글벙글 이야기하는 아내를 보며,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어, 다음 달부터는 꼭 용돈 줄게"
웃으며 대답하는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아, 그리고 말해줄 게 있어"
"뭔데?"
"둘째는 없어"
"..."
아내가 복직을 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나에게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아들이 나의 훌륭한 첫 번째 '독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회사에 복직하게 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아이 양육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적임자로 어머니를 고용했다.
당시 어머니는 우리와 집을 맞바꾼 후로 7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프신 상황에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으며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은 일반적인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전우애가 형성되어 있었다. 전우애를 바탕으로 결혼을 해서 따로 살게 되더라도 한동네에서 함께 사는 것을 꿈꾸며 실제로 그 꿈을 하나씩 실현시켜 나가 갔다. 부단한 노력 끝에 어머니의 집을 필두로 나와 동생의 집을 각각 10분 내 거리에 위치하도록 집을 마련했다.
자식들에게 끔찍했던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터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기꺼이 아이를 돌봐주는 선택을 한다. 우선 임금협상부터 해야 한다.
"엄마, 그래서 대만이 봐줄 거지?"
"어, 며느리 출근하는 날부터 오전에 너희 집으로 갈게"
"그래도 돌봐주는데 돈은 드려야 하잖아. 얼마정도 드리면 될까?"
"너 알아서 줘"
"다른 할머니들은 그래도 100만 원 이상 받는다고 하더라"
"그래? 엄마 잘 생각해 봐"
"아침에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저녁은 나 올 때까지만 보고 우리랑 저녁도 같이 먹잖아?"
"그렇지"
"다른 집 엄마는 아들 얼굴 보기 힘들다는데 엄마는 아들 끼고 살면서 매일 저녁도 같이 먹잖아"
"그리고 귀여운 손자도 매일 볼 수 있고?"
"그렇지"
"엄마가 그럼 엄청 행복할 일인데, 이 정도면 내가 돈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
"저녁밥은 맛있는 걸로 해줘~"
"..."
어머니 입장에선 다행히 돈을 주고 아이를 돌보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상당히 양보된 금액으로 어머니와의 임금협상이 타결됐다. 형제가 어렸을 때도 자신을 희생하여 아들들을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정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주던 어머니는 장성하여 자식들이 결혼한 후로도 자신의 남은 마지막 뼈까지 내어줄 준비가 된 것이다.
장난스럽게 어머니와 임금협상을 하긴 했지만 돈의 액수보다 아이를 돌봐주는 그 마음에 참으로 감사하며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꼈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사는 데 본인의 시간을 희생하는 모습에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다. 하지만 영화 같은 한 시점의 감동도 일상이 되면 매 순간 닥치는 비극으로 느껴지고 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희극으로 되돌아와 추억을 선물하는... 그런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부자의 탄생'은 그렇게 매 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으로 아내가 복직하며 새로운 루틴이 시작된다.
그러기 앞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아이의 돌이 다가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