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화) 부자의 잔치

by 경자호

생애 가장 소중한 선물의 1주기

아이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준비 없이 맞이한 아이였지만 1년 동안 부부는 참 잘해주었다. 아이가 선물로 찾아온 지 1주년을 맞이하여 아내는 아이의 돌사진을 저렴한 가격에 출장 사진사를 통해 훌륭히 찍어냈다. 그리고 돌잔치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늘 예산에 쪼들리는 남편을 앞에 두고 다그치기 시작한다.


다른 집의 사례를 보면 휘황찬란한 뷔페나 호텔에서 돌잔치를 치르는 가정들이 많다. 남편은 턱시도를 입고 아내는 드레스를 입는다. 그리고 더욱 화려한 복장의 한복이나 양복을 빼입은 아이를 안고서 사회자의 지시에 맞춰 돌잡이를 하는 그런 잔치 말이다. 이미 아내는 머릿속에 자신이 하객으로 경험했던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연스러운 잔치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런 의식도 차츰 옅어지는 것 같다. 물론 돌잔치부터 부모님 칠순잔치를 소중한 의식으로 여기는 경우도 여전히 많지만, 가족끼리 간소하게 치르거나 가족여행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도 사실이다. 일단 아내에게 돌잔치의 의미와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 속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먼저 설명하기로 했다.


"여보, 요즘 우리 회사를 봐도 돌잔치를 막 크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

"우리가 돌잔치 크게 해서 직장동료에 친구들까지 부르면 괜히 부담스러울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친척들과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서 부를 사람도 별로 없고"


아내는 남편의 이런 반응을 당연히 예상했다. 아내 또한 그동안 남편과 함께 살며 겪은 일반적인 가정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세상을 많이 알게 되었다.


"뭐, 나도 엄청 화려하게 돈 많이 쓰며 할 생각은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할 건 지, 생각한 걸 얘기해 봐"


아내가 좀 편하게 나와주는 덕분에 규모를 줄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음으로 그럼 어떻게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이번 잔치를 적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대안을 내놔야 했다. 무작정 줄여서 얘기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올 수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생각한 걸 얘기해 봐" 이 말 자체가 '내 맘을 맞춰봐' 공격이다. 힌트와 정답 따윈 주어지지 않는다. 몇 번 없는 기회 속에 그 마음을 맞춰야 통과이다.


데이트를 하다 보면 몇 번씩 경험하는 그런 것이다.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이런 경험 말이다.

"뭐 먹고 싶은데?"


"자기 먹고 싶은 거"


"그래? 자기 좋아하는 만두전골 갈까?"


"아니, 점심에 너무 무거워"


"그럼 라멘 먹을까?"


"아니 그건 어제 먹었어..."


"떡볶이?, 짜장면?, 쌀국수???"


"아니, 아니, 아니, 그냥 파스타 먹으러 가자."


"..."


짜릿한 프러포즈 이벤트에서 힌트를 얻다.

그냥 처음부터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얘기해 준다면 정말 편할 텐데 무엇인지 모를 마음속 정답을 맞혀나가야 한다. 한동안의 고뇌가 가득 찬 상태로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프러포즈를 엄청 비싸고 화려한 곳에서 해줬다. 비용으로 따지면 수백만 원 상당의 패키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깜짝 이벤트로 진행해 주진 못했다. 거기엔 사연이 있었다.


프러포즈를 준비할 당시 다니던 회사도 내가 결혼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사 내 프러포즈 이벤트 패키지를 신상품으로 만들었고 홍보가 필요했다. 그룹 홍보실을 통해서 해당 패키지를 사내 방송으로 만들어 홍보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방송촬영을 할 모델이 필요했고 그때 홍보실에서 제안이 왔다. 기획에 맞춰 프러포즈하는 모습을 촬영하여 사내방송을 할 수 있게 해 주면 수백만 원 상당의 프러포즈를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무료로 수백만 원짜리 프러포즈 패키지를 제공한다는 말에 바로 승낙을 했다. 아내에게 연락해서 좋은 기회로 프러포즈를 해줄 건데 간단한 인터뷰가 있다고만 언급했다. 아내도 큰 고민 없이 승낙을 했다. 방송이 시작되고 하루 종일 촬영이 이어졌다. 결혼식장소로 사용되는 연회홀에 앉아 촬영팀에 사인에 맞춰 고기를 썰고, 입에 넣으라는 말에 맞춰 고기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이제 각도를 바꿔서 한 번 더 촬영한다고 한다. 다시 고기를 썰고 큐사인에 맞춰 입에 넣는다. 아차 모르고 삼키라는 말없이 꿀꺽 삼켜버렸다. 한번 더 찍을 태세다. 하루 종일 비슷한 촬영이 이어지고 간단한 인터뷰 정도만 촬영하는 것으로 알았던 아내의 표정이 오묘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NG를 최소화하여 1분이라도 빨리 끝마쳐야 한다. 하지만 촬영은 연회홀 컷이 끝나자 다시 다음 장소인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동하여 끝없이 이어진다. 열심히 시키는 대로 웃으라면 웃고, 놀라라면 놀라가며 사인에 맞춰 연기를 하는데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촬영팀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서둘러 촬영을 끝내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마지막 레스토랑 지배인의 화려한 퍼포먼스로 최고급 스테이크에 불이 한번 타오르고 장미꽃 한 송이가 나오며 놀라는 표정으로 촬영이 마무리된다.


종료와 동시에 촬영팀은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과 함께 상황을 같이 정리해 주길 기다리는, 두려움에 떨던 나를 두고 급히 자리를 뜬다. 어색한 분위기에 나와 아내만 덩그러니 최고급 식당 단독룸에서 값비싼 음식을 앞두고 앉아있다. 아내가 조용히 묻는다.

"프러포즈받고 나서 결과를 인터뷰하는 게 아니었어?"


뜨끔한 표정으로 순진한 척 대답한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전달받진 못해서 이럴 줄 몰랐네?"


"정말 모르는 거였어?"

"이게 어디까지 방송이 되는 거야?"

"어떻게 방송이 나오고?"

"지금 거의 연기자처럼 프러포즈 전 과정을 찍어갔는데 나 얼굴 들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정말 모르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도 모르지, 그냥 무료 프러포즈를 해준다고 해서..."

"근데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몇백만 원짜리야"

"여기 단독룸이랑 음식코스까지 해서~"

"여기에 집중해~"


그리고는 야무지게 스테이크를 베어무는데 확실히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황홀한 맛이 느껴진다. 아내에게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한다. 스테이크를 입에 넣은 아내도 맛이 있었는지 약간 기분이 풀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때 사전에 홍보실 후배에게 부탁하여 홍보촬영 외 내가 따로 준비한 데이트 영상과 음악이 둘만 있는 단독룸에서 켜지고 아내 몰래 숨겨둔 꽃다발을 전달했다. 무릎을 꿇고... [다만 한쪽만 꿇었어야 하는데, 당시의 분위기상 두 무릎을 땅바닥에 모두 꿇는 바람에 프러포즈가 아니라 용서를 비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아내는 맛있는 음식과 황홀한 야경, 그리고 감동적인 영상과 배경음악, 마지막으로 꽃다발을 보며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 원래의 그녀의 계획이었던 사진촬영을 끝도 없이 찍는다. [아마도 앞에 홍보영상촬영에 대한 언급을 빼고 그녀가 받은 프러포즈만 기록하여 SNS에 올라갈 듯싶다. 두 무릎을 꿇은 나에게 한쪽은 올리라고 지시하고 다시 사진을 찍은 것이 그 증거다.]


그렇게 다행히 아내는 앞에 있었던 사건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분위기를 즐겨 주었다. 가성비 끝판왕 프러포즈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홍보영상이 사내방송으로 나간 후 한동안 전 직원의 놀림거리가 되어 힘들었다는 점만 빼면 충분히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거둔 인생 최고의 프러포즈였다.


그때의 분위기를 음미하며 비슷한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 끝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최고급 식당에서 값비싼 돌잔치를 치르다.

우선 아내에게 가족들끼리 모여서 최고급 레스토랑 룸을 빌려 돌잔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내도 그 부분에 흔쾌히 동의하고 다양한 식당들을 찾아본다. 열심히 찾는 아내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식당 예약을 가로막는다. 바로 복지포인트와 식음료 할인쿠폰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던 호텔급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복지포인트와 20% 할인 쿠폰을 1년에 한 차례씩 직원들에게 제한된 수량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 혜택들을 모두 긁어모아 양가를 불러 최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룸을 잡고 값비싼 코스요리를 주문한다.


상당한 금액이 나왔지만 복지포인트와 할인쿠폰의 1년 제공액수를 모두 소진하고, 그리고도 넘치는 금액은 절친한 동료들에게 사전에 부탁해서 받은 쿠폰을 사용하여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돌잔치를 치를 수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잔치를 대접하는 가장의 모습을 양가 가족들은 의아하게 보면서도 경험하기 힘든 레스토랑에서 돌잔치 코스요리를 대접받은 데 대해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한껏 치켜세워준다.


잔치를 마친 후 계산을 하기 전, 카운터에 서서 온갖 멋있는 척을 하며 서둘러 가족들을 먼저 내려보낸다. 아내가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시야에서 사라지자 바로 20% 할인쿠폰부터 복지포인트까지 꺼내놓고 주저리주저리 할인 혜택을 읊는다. 방금까지 온갖 있는 척을 하던 사람이 복잡한 방정식을 꺼내오자 직원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하나씩 맞춰보고 계산을 끝낸다. "휴~" 다행히 할인쿠폰과 복지포인트 처리가 다 인정되었다. 긴장이 풀리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가족들은 내막도 모른 채 아이가 생기고 화끈하게 바뀐 가장에게 즐거운 식사였다고 연신 이야기해 준다. 성대한 돌잔치 이후 즐거운 인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헤어진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고생했다는 말을 무심히 해준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돌잔치에 들어간 실비가 거의 무료에 가까웠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다. 또 결국 욕을 먹는다.


욕을 먹으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울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은 실, 청진기, 연필 등 다양한 돌잡이 물건을 올려놓고 아이가 잡도록 유도했을 때, 알아본 건지 떡 하니 5만 원짜리 현금을 집어 올리는 대만이를 보면서 가슴속 깊은 곳부터 폭발하여 올라오는 뿌듯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역시 내 아들 돈을 줍는구나...


눈에 보이는 장식장을 잡고 겨우겨우 일어났다 앉은 방아를 찍던 아이는 어느샌가 손을 놓고도 잘도 걷기 시작한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면 또 어느 센가 아빠보다 더 커서 내려다볼 시간이 올까, 걱정되는 마음도 감추진 못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오래 있어주지 못하는 시간들이 야속할 뿐이다. 이런 야속한 마음을 알았는지 아내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마디 하기 시작한다. [목소리를 가다듬는다는 건 돈을 쓰는 일을 앞두고 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음음... 이번에 돌잔치 날로 먹었으니까, 바로 아기 1주년 기념 여행 잡는다."


갑자기 훅 들어온 공격에 무방비로 당했다. 당황하며 대답한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무슨 여행을 또 간다는 거야?"


"이맘때, 제주도 다 가"

"비행기 무료일 때, 꼭 한 번 다녀와야지..."


"..."


이번엔 또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은 부자의 귀갓길이다.


아내는 따뜻한 마음처럼 다른 사람을 잘 챙기지만, 그 마음이 오지랖은 아닐지 부자는 걱정하는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