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주변사람들을 잘 챙긴다. SNS에 노출되는 생일인 친구들에게 선물을 챙기거나 축하인사라도 꼭 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랬기에 아이가 생기고 많은 지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중 값비싼 카시트를 친한 선배에게서 선물로 받는다. 물론 선배가 사용하던 중고품이었지만 충분히 쓸만한 상태였다. 이 시기 앉은자리에 풀도 나지 않을 만큼 지독한 남편도 운 좋게 사수에게서 사수가 사용하던 카시트를 똑같이 받아온다. 우연히도 받아온 2개의 카시트의 브랜드와 모델이 동일했다.
아내는 두 개의 카시트 중에 상태가 훨씬 나은 카시트 하나를 챙겨서 우리 애마 서민 3호(SM3)에 설치를 종용한다. 본래 신차에는 바로 장착이 되는 장치가 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2006년에는 그런 기술이 없었나 보다. 2006년식 낡은 구형 차량에 장착장치가 없어 한참을 고정시킬 방법을 찾다가 안전벨트로 고정하는 방법을 찾아 겨우겨우 장착을 완료한다. 안전에 관련된 부분이라 꼼꼼히 고정했는데 몇 번 흔들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아 안도한다. 장착을 한 카시트를 한 발짝 떨어져 물끄러미 바라본다. 카시트도 약간은 낡은 것이 오히려 서민 3호와 제법 잘 어울린다.
아내가 받아온 줄도 모르고 사수에게서 챙겨 온 상당히 낡은 카시트는 처분을 해야 한다. 유유상종이라고 사수는 나와 비슷한 굉장한 구두쇠이다. 사수가 준 카시트 또한 사수가 누군가가 쓰던 걸 받아서 사용하다가 아이가 크고 나서 나에게 고이 넘겨준 유서 깊은 물건이었다. 그래서인지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아래쪽 플라스틱의 일부가 부서져 있었고, 시트에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내가 새 제품을 살까 봐 급한 마음에 상태에 상관없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온 것이다. 그 두 가지 흠만 빼면 사용하는 데 지장은 전혀 없는 괜찮은 물건이었다.
아내는 카시트를 버리거나 당근마켓에서 판매를 할 수도 있었는데, 특유의 고운 마음씨로 카시트가 필요할 만한 사람을 찾아 고민한다. 그러다 아내의 고등학교 선배였던 한 오빠를 기억해 낸다. 이제 곧 태어날 딸을 기다리던 선배였다. 아내가 참여하던 모임이 있어 부부동반으로 몇 번 만나서 저녁식사도 했던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아내가 선배를 지명했을 때 바로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경기권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굉장히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형님이었다.
아내가 묘안을 찾아냈다는 표정으로 말을 한다.
"아! OO오빠 주면 되겠네."
"당신도 알지? 그 모임에서 만났던..."
"아... 그 대기업 다니던 오빠?"
"어 XX 다니는, 그 오빠 이번에 딸이 곧 태어나거든, 거기 주면 되겠다."
"아... 글쎄... 좋아할까?"
"안 좋아할 거 같은데?"
"이게 얼마짜리인데... 당연히 좋아하겠지."
"그런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같이하며 부부는 너무나도 서로를 닮아 있었다. 아내가 떠올린 그 형님집에 우리 부부가 초대받아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용인 외곽에 위치한 신축 대단지 아파트였다. 40평대의 대형평수로 기억하는데 "ㄷ"자형 부엌에 고급 대리석으로 마감한 아일랜드, 집안에 설치된 가전도 전부 하이엔드급이었다. 고급 벽걸이 TV에 양문형 냉장고와 빌트인 식기세척기, 거실에 우두커니 서있는 에어컨이 2 in1으로 방에도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선배의 앉으라는 권유로 소파에 가만히 앉았는데, 다시 일어나기 싫었다. 폭신한 최고급 소파에 파묻혀 정말 오랫동안 눈치를 보며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는데 유럽에서 건너온 고급 식기에 보기에도 아까운 파스타와 와인이 가득 담겨있어 가난한 배가 미치도록 음식을 달라고 '꼬르륵' 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우리가 건네는 선물을 과연 좋아할지, 의심이 들었지만 해맑게 웃는 아내가 모처럼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초를 칠 수 없다. 그냥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동의를 한다. 아내는 신이 나서 선배에게 전화를 걸고 내가 받아온 카시트를 선물해 준다고 한다. 선배도 기뻤는지 당장 이번 주말에 만삭의 아내와 함께 카시트를 가지러 오겠다고 한다. 통화를 끊고 그 내용을 들었던 내가 그냥 우리가 가져다주는 것이 어떤 지 아내에게 심각하게 제안한다. 왠지 기대가 너무 커 보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아내는 기왕 온다는 선배를 굳이 다시 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 웃기다고 이야기하며 선물할 카시트를 정성스레 닦는다.
주말이 돌아오며 선배 부부가 방문하기로 한 날이 왔다. 선배의 아내가 만삭이어서 잠깐 들러서 카시트만 가지고 가기로 하고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집으로 찾아왔다. '띵동'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부부가 집으로 들어온다. 처음 방문한 집을 보고 먼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80년대 지어진 낡은 아파트의 방 하나 거실하나로 이루어진 작은 집, 누렇게 뜬 도배지와 싸구려 비닐장판에 먼저 놀란다. 단출한 살림에 17평 작은 집이 제법 넓게 느껴진다. 앉을자리가 없어 칵테일파티를 하듯 서로 서서 주변을 서성이다 안방을 보면 킹사이즈 침대와 범퍼침대가 서로 조립되어 발 디딜 틈이 없어 구경을 포기한다. 아내는 시어머니가 쓰다가 물려준 15년 된 냉장고[지금도 쓰고 있으니 25년 됐다. 돌아가는 게 신기한데 가전은 LG다.]에서 음료수를 꺼내 부부에게 건넨다. 선배가 감사의 인사를 한다.
"어, 고.. 고마워 잘 마실게"
두리번거리는 선배를 보며 아내가 말한다.
"응 소파를 놓을 자리가 없어서 앉을 데가 없어, 여기 방석에 앉아"
"OO씨도 같이 왔네?"
선배의 아내가 인사한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표정이 밝지 않다.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서둘러 내가 카시트가 있는 장소로 안내한다.
"카시트는 베란다에 저희가 잘 닦아 두었습니다."
선배가 어색함을 감추며 말한다.
"어 고마워, 안 그래도 준비할 게 많았는데 이렇게 챙겨줘서 고마워"
서둘러 베란다로 부부를 데리고 가서 카시트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비만 오면 베란다 천장에 칠해 놓은 페인트 가루가 떨어지는 탓에 카시트 주위로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얼른 다가가 카시트를 뒤로 들어 올려 가루를 털어낸 후 다시 돌려 카시트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카시트를 보던 두 부부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언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실시간으로 마주하고 봤다. 바로 표정관리를 하긴 했지만 지금도 내 머릿속 한 구석에 그 표정들이 사진을 찍어 놓은 듯 박제되어 있다.
선배는 잠깐 시간이 멈춘 듯 아무런 표정 없이 카시트를 2초간 응시했고, 선배의 아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는지 떡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아내가 처음 이사 갈 집의 화장실을 봤을 때의 표정과 너무나도 유사했다.] 그들과 같은 곳을 보고 있던 아내는 카시트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에 여념이 없었고 마주 보고 서서 카시트를 들고 있던 나는 그들의 표정과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의 진심 어린 설명이 끝나자 선배가 서둘러 말한다.
"어... 어.. 어 그래 여기 좀 깨진 거... 랑 얼룩... 말고는 다 좋네..."
"정말 고마워, 이렇게 선물까지 주고..."
"여보 그렇지??"
선배의 아내는 연기가 서툴다.
"어?.... 어...."
"고마워요. 언니!"
아내가 활짝 웃고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아냐, 아냐 우리도 두 개를 받아서 하나가 남아서 주는 거지."
"딱 필요할 거 같더라고, 오빠 생각이 났지."
선배가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 그래, 꼭... 필요했지..."
"다시 한번 고마워"
"우린 이제 가볼게, 아내가 피곤해해서..."
"다음에 꼭 맛있는 거 사줄게."
"선물까지 해줬는데..."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아니라니까, 어쨌든 다음에 저녁 먹자."
"잘 쓰고~"
그렇게 두 부부가 짧은 방문을 마치고 떠나갔다. 떠나가는 그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현관문을 닫고 조용히 말을 꺼낸다.
"여보 우리가 쓰레기를 준 것 같은데?"
아내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무슨 소리야?"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말한다.
"아니 딱 스타일이 새거나 새거 같은 것만 쓸 거 같아서..."
"아까 표정 못 봤어?"
"용인에서 일부로 멀리까지 와서 쓰레기를 받아가는 표정이었어."
"아냐, 아까 고맙다고 한 거 못 들었어?"
"주로 그런 상황에서는 고맙다고 말하지..."
"왜? 나한테 쓰레기를 버리냐고 따지겠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뱉는다.
"그런가?"
우리는 정답은 그들만이 알 거라고 생각하고 찜찜한 선행을 잊기로 한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우리가 선물을 했다는 것조차 잊어갈 무렵 아내와 산책을 나왔다. 이 시기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주말이면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새로운 취미였다. 밖을 좋아하는 아내와 살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워낙 좋아하던 내 성향도 차츰 바뀌어 갔다. 다만 밖에 나가면 아무래도 돈을 쓸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어서 타협이 필요했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날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에서 가까운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먼저 앞서 걷던 나를 뒤에서 아내가 불러 세운다.
"여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왜?"
휴대폰을 빤히 들여다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아내가 말한다.
"이것 좀 봐봐"
뒤로 되돌아가며 묻는다.
"뭔데??"
아내가 보여준 휴대폰 안에 SNS가 켜져 있었고 몇 달 전 우리 집에 방문하여 카시트를 가져간 선배네 가족이 나란히 차 안에서 사진을 찍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내는 그 사진 안에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던 카시트를 잡아 손가락으로 밀어줌을 하기 시작한다. 점점 사진이 커지고 아내가 조용히 묻는다.
"아니지??"
바로 알아듣고 대답한다.
"우리가 쓰레기 버린 거라니까..."
"새 거네"
아내가 한숨을 쉬며 얘기한다.
"그런 거 같네..."
실망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조용히 웃으며 이야기해 준다.
"여보 너무 실망하지 마..."
"덕분에 신고 안 하고 쓰레기 무료로 버릴 수 있었어."
"좀 미안하긴 하네 멀리까지 와서 쓰레기를 가져갔어."
"다음부턴 받아온 건 우리 내부에서 해결하자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대다 험한 말을 듣고서야 다시 조용히 산책길을 걷는다. 오래간만에 걷는 저녁 산책길의 공기가 참으로 상쾌하다. 다시 아내를 위로하며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직접 집에 와서 받아가면서 낡은 카시트와 잘 어울리는 우리 집을 보고 우리의 선행을 악의로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유모차에 타고 해맑게 웃으며 같이 산책길을 걷고 있는 아이를 보며 이 길의 끝에 '부자의 탄생'이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두 부자는 함께 자책하는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아내의 선행을 곱씹으며 부자는 참 좋은 아내와 엄마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부자에게 새로운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첫 가족 해외여행 계획을 발표하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