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 부자의 여행

by 경자호

아내의 갑작스러운 여행발표로 시작된 긴 여정

대만이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3살이 되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며 그동안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부분에서 하나씩 재미를 찾아갔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어려서부터 순했던 대만이는 자라면서도 그 순수성을 잃지 않고 남달리 배려가 많은 착한 아이로 자랐다. 그렇게 대만이가 세상에 적응하며 치열한 생존을 해내는 와중에 아내가 새로운 미션을 꺼내 들었다.


집안에서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놀고 있는 모습을 밝은 미소로 지켜보며 아내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이제 대만이 만 24개월 지나기 전에 해외여행을 가야지?"

충격적인 소식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한다.

"제주도도 다녀왔잖아."

"이제 해외여행도 가자고?"

아내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건 작년이고~"

"올해는 꼭 해외여행을 가야지?"

지지 않고 반박한다.

"아니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가야 하는 법이 있어?"

"꼭 가야 돼?"


이미 정해놓고 통보된 결론이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근본을 건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얼른 예산을 통제해서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으로 여행일정을 확정 짓는 것이 효과적인 대응방법이다.


선수를 쳐서 여행 범위를 좁혀야 한다.

"그럼 동남아로 가"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애가 어려서 비행시간이 너무 길면 안 돼"

"일본? 싱가포르? 홍콩?..."

눈동자가 흔들리며 황급히 말을 끊는다.

"물가 비싼데 말고 싼데로 가자."

"아이도 어리니까 최대한 리조트를 편한 데로 하고 휴양으로 콘셉트를 잡자"


최종 선택지는 베트남으로 결정됐다. 어디서 정보를 얻는 것인지 이미 다양한 콘셉트와 국가들에 대한 여행정보가 아내의 머릿속에 가득하다. 도심지보다는 휴양지 중에서 당시 다낭이 인기 있는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아내의 강압적인 제안으로 이번 여름휴가는 갑작스럽게 베트남의 다낭으로 결정됐다. 다낭에 위치한 가성비로 소문이 난 일본계 리조트를 예약하고 다낭으로 떠났다.


휴양지에서의 시간은 나름 즐거웠다. 아이가 어렸던 탓에 대부분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잠깐씩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 구경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내는 마사지를 받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리조트에서 이벤트로 운영하는 마사지 할인패키지를 구매해 시간마다 자리를 비웠다. 그때면 리조트 수영장에서 대만이와 함께 물놀이를 하며 부자간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다만 장난기가 심한지라 한 번씩 물에 빠뜨리고 구해주길 반복했던 것이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까지도 물을 무서워할 줄은 몰랐다. 후회가 된다.


아내가 여행에서 마사지를 받고 쉬는 것을 좋아했다면, 워낙 한국에서도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다낭에서 일부로 시간을 내어 다낭 박물관에 갔다. 대만이는 어리고 아내는 크게 관심이 없어 박물관 안에서 둘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옛날 참파왕국의 유물이 가득 전시된 박물관을 돌며 전시된 유물과 활자를 거의 모두 정독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적당히 하라는 아내의 경고와 함께 정신을 차리고 리조트로 돌아와 셋이 배드민턴도 치고 해변에 앉아 바다도 구경한 즐거운 여행이었다.


행복하게 보낸 여행을 끝으로 시작된 악몽

어느덧 4박 5일의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긴 시간 알찬 경험도 하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던 덕분에 높은 만족감을 안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고 가는 비행기 속에서 대만이가 울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것도 없어 사건사고 없는 무난한 여정이었다. 바로 그다음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도 의젓하게 버텨준 대만이가 기특하다며 한껏 칭찬을 하고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공항셔틀버스를 탔다. 이른 저녁시간이었던 탓에 버스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거리에도 차가 많아 길이 막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저녁을 너머 밤으로 향하는 시간 버스가 올림픽대로에 들어서며 버스의 불이 꺼지고 모두들 눈을 감고 있었다.


우리도 고된 여행을 마치고 긴장이 풀린 탓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대만이는 아직도 베트남 다낭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듯 흥을 감추질 못한다. 가만히 손가락을 입에 대어 '쉿'하고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주고 아이를 안고 눈을 감는다. 이때 별안간 여성의 앙칼진 비명소리로 인해 고요한 버스 내부가 시끄러워진다.


"꺄악~~~~"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에 무슨 사고가 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바로 눈을 떴다. 눈을 뜬 그 순간 대만이가 앞에 앉아 있던 커플 중에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놓는 것이 찰나의 시야에 포착된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아이를 내 무릎에 올려놓고 앞으로 잠그는 아기띠를 착용하여 고정시키고 있었다. 앞에는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긴 생머리의 여성의 머리카락이 아이의 눈에 띄어 그대로 잡아당긴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의 사건으로 성악설을 믿게 됐다. 여성의 비명소리에 맞춰 아이가 바로 머리카락을 놓고 눈을 감는다. 본인도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었는지 바로 아무것도 안 한 척 눈을 감는다. 이때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로 뒤를 돌아본 그 여성과 하필이면 눈이 마주친다. 눈을 매섭게 흘기며 노려보는 모습에 무어라 해명할 틈도 없이 먼저 사과부터 한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죄... 죄송... 합니다."


돌아본 여성과 남자친구는 상황파악부터 한다. 아이는 얌전히 자는 듯 눈을 감고 있고 아내는 이제야 눈을 뜨고 별안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두리번 거린다. 그대로 여성과 눈이 마주쳐 빼도 박도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은 후에야 뒤늦게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모르고 잡아당긴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성이 뒤통수를 만지며 소리를 내지른다.

"아프잖아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제가 아니라 아이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모른 척하는 대만이를 흔들어 깨운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3살짜리 아이지만 능청스럽게 눈을 뜨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것처럼 해맑게 상황을 지켜본다. 커플도 3초간 상황파악을 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진 않고 앞을 돌아보고는 연신 아프다고 끙끙거린다. 그때서야 합류한 아내와 함께 커플의 뒤통수에 대고 연신 송구하다는 사과를 한다.


역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건 힘들다. 이 한 번의 사건으로 앞서 좋았던 추억이 눈 녹듯 사라지고 악몽으로 바뀐다. 아이에게 절대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두 손을 꽉 잡고는 조용히 상황을 주시한다. 다행히 사과를 받진 않았지만 앞의 커플도 더 이상 말이 없다. 속으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려 어느새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정해진 정류장을 하나씩 경유하며 집으로 향한다. 버스 내부에 불이 켜지고 이미 한차례 사건을 겪은 우리 가족은 자숙하며 조용히 내릴 정류장을 기다린다. 이때 갑자기 코를 찌르는 익숙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이를 들어 엉덩이에 코끝을 대어 본다. 이런 젠장 이번엔 대변 공격이다. 많이 먹는다 생각했는데 대변이 기저귀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여 넘쳐버린 것이다. 기저귀의 변두리 약한 부분을 비집고 대변이 새어 나온다. 멜빵 청바지를 입혔는 데 청바지의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새어 나오는 부위를 맨손으로 누르며 응급조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물리적인 부분은 수습한다 하더라도 화학적으로 퍼지는 주변의 냄새를 막는 건 역부족이다. 그대로 우리 코를 넘어서 다른 좌석으로 냄새가 천천히 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알아채기 시작하고 코를 막으며 무언을 눈치를 주다 이내 곳곳에서 수군대기 시작한다.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앞의 커플은 오늘 재수가 옴이 붙은 것인지 그대로 날것의 냄새를 정면으로 받는다. 서둘러 벨을 누르고 앞의 커플이 속삭이듯 구시렁대며 버스를 내린다. 아무래도 목적지가 아닌 것 같다. 괜히 미안해진다. 대만이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이 켜진 버스에 신이 나 내 무릎 위로 점핑을 시도한다. 아내가 가까스로 어깨를 눌러 대만이의 운동작용을 저지한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다. 물리적인 방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마침내 버스기사 아저씨의 백미러를 통해 마주친 노려보는 눈빛을 보고 아내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내리자"


아내가 조용히 벨을 누르고, 간신히 틀어막은 부위를 연신 압박하며 마리앙투아네뜨가 단두대로 오르는 길을 걷듯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그대로 느끼며 버스 맨 앞에 위치한 출입문으로 서둘러 걸어간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표정이 밝아지며 바로 출입문을 연 후 짐칸의 문을 열기 위해 따라 내린다. 먼저 내려 바로 멀찍이 떨어지고 아내가 짐칸에서 캐리어를 받는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밖이긴 하지만 지독한 냄새에 행인들도 쳐다보기 시작한다. 마침내 지하철 화장실에 숨어들어 마지막 상황을 정리한다. 아이는 아빠가 미션임파서블처럼 처리하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한 모습으로 기저귀 가는 모습을 누워서 바라보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다 한 가지 의심되어 넌지시 물어본다.


"대만아, 너 내가 물에 빠뜨렸다고 복수하는 거냐?"


대만이가 더듬거리며 되묻는다.

"복수??"


"그래 내가 베트남에서 수영할 때 넘어뜨렸다고 복수하는 거냐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한다.

"복수?? 응~ 복수."


지하철에서 뒷수습을 하고 집까지 향하는 남은 여정을 아내와 대만이와 함께 마무리한다. 정말 생애 경험하기 힘든 여행이었다. 아내에게 당분간 여행은 없다고 말하고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간다. 아내도 힘들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안다. 며칠이 지나면 새로운 여행을 계획할 것이란 것을...


성향이 다른 세 사람이 함께 살며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성향을 인정하고 맞춰나가기 때문이다. 오늘의 힘든 경험을 잊고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는 아내를 보고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 계획에 반기를 들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남편을 또 인정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또 아내가 해외여행 카드를 들고 나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하는 부자였다.


해외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회사의 중차대한 위기가 찾아오고 아빠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머나먼 출장길에 오르는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