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부자의 위기

by 경자호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파업위기를 맞이하다.

즐거운 한때를 마치고 일상을 돌아와 힘겨운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와중에 일하던 직장에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큰 리조트 사업장 한 곳이 파업위기에 처한 것이다. 매년 회사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임금을 합의해 왔는데 이 해는 협상이 잘 안 됐나 보다. 가장 큰 사업장에서 제일 바쁜 여름 성수기 기간 파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본사에 조심스레 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큰 문제는 아니겠지' 생각하고 협상이 잘 마무리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매일매일 전해지는 소식이 심상치가 않다. 한창 바쁜 때, 1,500실이 넘는 리조트의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재앙과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 자명했다. 여름 성수기 기간을 2주 남기고 노조가 최종적으로 파업에 들어간다고 통보한다. 협상을 이어가던 인사팀을 시작으로 본사 전체가 위기에 휩싸인다.


내부적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최종 결정된 사항은 혹시라도 실제 파업이 벌어질 경우에 본사직원이 투입되어 업무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본사에서 어린 남자에 속했던 나를 포함 우리 팀 대부분이 당연한 듯 투입이 결정되었고 그렇게 여름 성수기 일주일 전 강원도로 가는 전세버스에 몸을 싣는다. 본사직원 50명 이상이 투입되는 큰 사건이었다. 노조와 인사팀 간의 협상은 남은 일주일간 지루하게 이어지고 리조트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어느 시골마을의 펜션에서 50여 명이 모여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즐거웠다. 워크숍이라도 온 것 마냥 함께하는 팀원들, 같이 협업하던 타 팀의 직원들과 바비큐파티도 하고 치킨도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나흘을 보내며 엄청난 무료함을 맞닥 들인다. 놀고먹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온종일 대기상태로 숙소에 있으면 좀이 쑤신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걸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 생각뿐이다. 그런 와중에 노조와 인사팀 간의 협상이 쉽지 않은 지 갑작스럽게 이동결정이 난다.


바로 업무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고 리조트에서 30분 거리의 숙소로 위치가 변경된다. 아무래도 노조를 압박하려는 수단인 것 같다. 1시간 거리에 우리를 두고 협박을 하다가 통하지 않으니 30분 거리로 옮기며 압박을 이어나간다. 마치 고대시대의 전쟁을 하듯 장기짝을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30분 거리를 이동하여 새로운 환경에 오니 그날 하루는 좀 숨통이 트였지만 할 것 없는 시골의 아무 업무도 주어지지 않는 삶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또 며칠을 보내며 협상이 잘 마무리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일주일이 넘게 참아주던 아내도 드디어 폭발하여 언제 돌아오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해온다. 이렇게 길게 떨어진 적이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기약 없는 복귀에 쩔쩔매며 통화하다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쉰다. 이때 또 이동명령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리조트 코 앞의 시내다. 이곳에 배치받고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자 해당 원정대 총괄 담당임원이 회의를 소집한다. 결국 노조와의 협상이 결렬되어 익일부터 투입이 된단다. 차라리 양단간의 결정이 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열흘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회사사람들과 가만히 있느니 일이라도 하면 시간이 빨리 갈 것 같다. 그렇게 어느 보직에 배치받을지 모른 채 마지막 하루가 지나간다.


가장 힘든 업무인 세탁실에 배치되다.

젊은 층의 남성들이 힘든 업무를 우선으로 배치되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업무강도가 높다는 세탁실에 지원할 사람을 모집한다. 늘 제일 힘든 일을 앞장서서 하자는 의지로 바로 손을 들어 자원한다. 같은 팀에 근무하던 비슷한 또래의 선후배들이 함께 자원했다. 입사 전부터 다양한 업종에서 알바를 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까짓 세탁실도 말만 그렇지 다 사람 하는 일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자신 있게 들어갔다.


메인 건물 지하에 위치한 세탁실은 지하이긴 했지만 굉장히 넓은 장소였다. 맨 처음 보이는 건 위층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이불과 베개 커버들이었다. 위층과 연결된 구멍을 통해 끝없이 떨어지며 산을 이루고 있었다. 직원들이 떠난 자리에 다행히 관리자급 직원들과 알바들이 남아 열심히 떨어지는 커버들을 주워서 마트 카트에 싣는다. 실어온 세탁물을 거대한 로봇 같은 영업용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다 마르면 중앙에 위치한 전용 건조기에 하나씩 펴서 올려놓는다. 그러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이불이 한 장씩 피자 굽는 오븐 같은 곳을 들어갔다 나오며 뽀송하게 마른다. 이제 그 마른 커버들을 깔끔히 접어서 포장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이 거대한 공장 같은 장소에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굉장한 장관을 구경하며 입이 떡 벌어졌다. 구경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바로 신입 배치자들에게 알바가 한 명씩 붙는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아르바이트생은 지역의 대학교를 다니는 남학생으로 방학 때마다 와서 알바를 했기 때문에 베테랑에 속하는 친구였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끝없이 쌓이는 이불산에서 세탁물을 카트에 실어 세탁기에 넣은 다음 기계를 돌린 후 다시 세탁물을 꺼내 건조하는 작업장으로 전달하는 업무였다. 몸이 굉장히 왜소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크게 어렵지 않은 업무라고 생각하고 잔뜩 자신감에 차서 이야기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이불산을 가리키며,

"학생 여기서 마트카트에 이불, 베개 커버 구분 없이 일단 실으면 되는 거지?"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아르바이트생이 얘기한다.

"네 맞습니다. 여기서 실으셔서 세탁기에 넣고 저한테 말씀 주시면 되세요."

목소리에 한껏 힘을 주어 말한다.

"그래, 쉽구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 도와줘 다 이해했어. 세탁물 넣고 작동방법은 다시 물어볼게"

아르바이트생이 웃으며 말한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넣고 말씀 주세요."


크게 웃으며 당당히 키보다 높게 쌓인 이불산으로 향한다. 우선 아래에서 세탁물을 잡아 빼는데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높은 높이로 켜켜이 쌓이고 이불끼리 서로 엉켜서 위에서 누르는 압력과 꼬여서 생긴 마찰에 아무리 잡아당겨도 꿈쩍을 안 한다. 바로 포기하고 이불산을 기어 올라간다. 이불산 중턱에서 꼬이지 않은 세탁물을 찾아 아래로 던진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지하에서 수많은 이불커버들이 날아다니며 실내는 말할 수 없이 공기가 탁하다. 마스크를 쓰고도 연거푸 기침을 하며 세탁물을 카트에 가득 채우고 나니 현기증이 난다.


힘겹게 카트를 한차 가득 채워 배치받은 세탁기에 도착한다. 거대 로봇 같은 세탁기 중앙의 둥그런 문을 열어 카트에 실어온 세탁물을 하나씩 빈 공간에 넣는다. 밖에서 본 둥그렇고 작은 문과 다르게 안은 공간이 넘어 세탁물을 아무리 넣어도 계속해서 들어간다. 들어가지 않는 세탁물을 꾹꾹 눌러 겨우 카트 한차를 세탁기에 다 채워 넣고 자신 있게 알바를 부른다. 이쪽저쪽 가르치며 하루 종일 정신없이 보낸 알바가 지쳐 보이는 얼굴로 다가온다.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당당히 말한다.

"여기 한차 다 실었어, 이제 세탁기 어떻게 돌리면 되는지 알려줘"

알바가 세탁기 안을 힐끗 둘러보고 코웃음을 치며 이야기한다.

"아직 멀었어요. 이거 카트 한차는 더 들어가요."

알바의 말에 기겁을 하고 되묻는다.

"이게 한차가 더 들어간다고? 이미 꽉 찼는데? 그럴 리 없어 절대 안 들어가."

알바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일단 한차 더 실어서 가져오시면 제가 보여드릴게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잔뜩 의심을 품고 이불산에 다시 등반한다. 힘겹게 한차를 실어 다시 세탁기 앞에 서고 알바를 부르기 전에 세탁물을 넣어본다. 아무리 눌러 넣어도 들어 기지도 않고 튕겨 나온다. 더 이상 자리가 없는 걸 보고 확신에 차서 의기양양하게 알바를 부른다. 절대 더 들어갈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세탁기를 가리키자 알바가 다가와 다짜고짜 카트에서 세탁물을 꺼내 들고 그대로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지르듯 쑤셔 넣는다. 기존의 이불이 푹 꺼지며 그대로 새로운 이불이 빨려 들어간다. 가운데로 한 번 넣더니 방향을 바꿔 위로 한 번 쑤시고 아래로 한 번 누르니 계속해서 세탁물이 빨려 들어간다. 곧 새로운 한차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그대로 다 빨려 들어간 것이다.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실제 상황을 본 것인지 애니메이션을 본 것인지 멍하니 보고 서있다. 아르바이트생은 꽉 채워놓지 않으면 공간이 많아 거대한 세탁기가 돌다가 덜덜거리며 망가질 수 있다고 핀잔을 준다. 최대한 많이 채워 넣어야 오히려 세탁기의 진동이 최소화되며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겸손하게 말한다.


"네... 선배님, 다시 넣어보겠습니다."


지금껏 일을 하면서 늘 일머리가 있고 자부했는데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고, 스스로 안된다고 사고를 닫았던 것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드러내고 이번엔 기필코 모두 넣어보겠다고 다짐한다. 다시 한차를 싣고 와서 있는 힘껏 밀어 넣고, 다시 한차를 가져와 배운 대로 어퍼컷을 날리듯 전광석화처럼 팔을 뻗는다. 쑤욱하고 이불커버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다. 카트의 절반쯤 쑤셔 넣고 나니 팔에 힘이 빠져 더 이상 손을 들 수도 없다. 겨우 팔을 올려 살짝 걸쳐놓고 그대로 머리로 박아버린다. 아르바이트생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말한다.


"옳지 그렇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이 짧다. 하지만 그의 업무역량에 주눅이 들어 그의 눈에 들고자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하루를 보낸다. 이 일을 내일도 하자니 벌써부터 삭신이 쑤셔온다. 언제 타결될지 모르는 직원들의 복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이를 꽉 물고 버틴다.


집으로...

언제 끝날지 모를 타협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어느덧 열흘이 지난다. 이제 제법 적응이 되어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오늘도 세탁기의 없는 공간을 비집고 세탁물을 밀어 넣으며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그날 저녁 담당임원이 파견직원 저녁식사가 있다는 공지를 해온다. 그 자리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파견 종료를 선포한다. 드디어 언제 끝날지 모를 파견의 끝이 온 것이다.


처음 차출되어 업무를 하기까지 굉장히 지루했고, 업무에 투입된 이후부터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현장에서 이토록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심을 가지고 최대한 현장의 업무에 과중이 없도록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며 간간히 볼 수 있던 아이를 이제 집에서 직접 안아줄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애증의 장소를 떠난다. 집에 도착하여 대만이를 보니 그새 더 큰 것 같다. 힘껏 들어 올려 안아본다. 많이 무거워졌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일을 하며 생긴 고통이 날아가는 것 같다. 역시 집이 최고다. 아내는 정말 오래간만에 복귀한 남편을 환하게 맞아주며 저녁을 맛있게 차려준다. 약 3주 만에 맛보는 행복이다.


잠깐 떨어지며 더 애틋한 감정이 생긴 우리 가족은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더 돈독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렇게 인생에 기억이 남는 힘든 한 달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지나간다.


가정에 애틋한 마음이 생긴 아빠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잠든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빠에게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극복하기 힘든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는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