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부자의 갈등

by 경자호

무시무시한 고부갈등의 서막

붙임성이 좋고 상냥한 아내는 누구와도 금방 친해져 사이좋게 지내는 성격이다. 지금껏 어느 조직에 배치되더라도 특유의 생존력으로 늘 인싸로 군림했다. 당연히 신혼 초 근처에 사시는 시어머니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주변 모든 며느리의 부러움을 샀다. 또한 어머니의 경우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퍼주려고 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힘들까 노심초사하며 늘 자신을 희생해 가정을 지켜왔다. 아들이 결혼을 한 이후로도, 아들이 선택한 며느리에게 아들에게 주었던 사랑을 똑같이 나눠주며 늘 아들에게 하듯 며느리에게 또한 그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대만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정말 모녀처럼 지냈지만 대만이가 태어나고 대만이의 양육을 함께하면서 관계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아이의 식습관부터 교육적인 측면까지 깊숙하게 관여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아내는 그런 시어머니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지만 다양한 부분에서 생각이 달랐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의 보호를 중요시했던 시어머니와 아이의 독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 아내는 아이의 교육에 관하여 때때로 다른 의견을 피력했고 내가 중간에서 최대한 지켜보며 조율을 통해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아왔다.


곡예를 하듯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최대한 다툼 없이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그렇게 대만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다섯 살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를 닮은 아이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묘한 긴장감 속에서 본인의 살길을 찾아 갖은 애교를 무기로 양쪽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 알았는지 이 험난한 정글의 포식자들 속에서 가장 약한 먹잇감이 나라는 것을 처음부터 간파하고 내 눈치는 전혀 보지 않는다. 어느 날도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한 번씩 잔소리를 듣고 대만이에게 엄마랑 할머니가 시켰으니 나갔다 들어와서 얼른 손을 씻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나를 향해 대만이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잔뜩 비웃는 투로 대만이가 말한다.

"아빠는 무서운 사람들 말만 잘 듣네"


이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솔직하게 대답한다.

"어, 너 지금 안 씻으면 엄마랑 할머니한테 혼나니까 얼렁 씻어"


이 말에 대만이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조용히 욕실로 가서 손을 씻는다. 이미 가정 내 권력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파한 대만이는 이후로도 내가 하는 이야기에는 반응이 없다가도 엄마와 할머니를 들먹이고 나서야 바로 움직이는 착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다섯 살의 마지막을 보내며 대만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아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 달라는 안내가 온다. 아이의 등원을 책임지던 어머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통해 선물의 규격이나 조건들을 전해 듣고 아내에게 전달한다. 아무래도 부피가 크면 많은 아이들을 상대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이벤트 진행이 어려워 기준을 세운 것 같았다.


일을 하던 아내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힘들게 선물을 준비하여 밤늦게까지 손수 포장을 한다. 다음 날 아내가 밤늦게까지 포장한 선물을 어머니께 전달드리라고 나에게 얘기하고는 출근을 위해 씻으러 들어간다.


정글의 포식자 간의 생사를 건 다툼

아내가 건넨 선물을 받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아무 생각 없이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가 들어온다. 요 근래 여러 가지 작은 사건들이 켜켜이 쌓여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심상찮은 분위기를 일찍이 눈치채고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긴장되지만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한다.

"엄마, 어제 아내가 대만이 크리스마스선물 포장해서 준비했어. 식탁에 있어."


이 말에 벌써부터 싸늘한 어머니의 눈초리가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포장된 선물상자로 향한다. 그 순간 어머니의 눈에 불꽃이 일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식탁으로 돌진해 아내가 밤늦게까지 포장한 선물상자의 포장을 갈기갈기 찢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무어라 방어하거나 말할 틈도 없이 굳어진 채로 망부석처럼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동시에 아내가 욕실문을 열고 이 광경을 목격한다.


아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친다.

"어머닛~"


순간 움찔했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어머니가 맞받아친다.

"그래, 내가 뭐라고 했니 크기가 작아야 된다고 했지?"

"내가 한 말을 무시한 거야 뭐야?"


아내가 이에 바로 대응한다.

"이거, 어린이집 엄마들이랑 공동구매로 산 거예요."

"다 이 크기로 가져올 거라고요."


싸움이 길어질 것 같다. 이런 큰 싸움은 처음이었지만 늘 상황을 중재하고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온 내가 아닌가? 전장을 앞에 두고 어머니와 아내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대치한다. 그 사이에 서서 양쪽의 주장을 듣고 내용을 열심히 전달한다. 집이 좁은 탓에 둘 사이의 숨소리도 들릴만큼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지만 내가 입과 귀가 되어 대신 이야기해야 한다.


어머니의 앞에 조용히 서서 냉정을 찾고 이야기한다.

"엄마, 아내가 공동구매로 어린이집 엄마들이랑 같이 산거래"


어머니가 소리친다.

"어린이집에서 크기를 정해줬는데 이건 규격이 넘는다고"


아내에게 가서 조용히 얘기한다.

"엄마가 규격을 전달했는데 순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그래... 다음부터는 설명을 잘해주자"


아내가 얘기한다.

"어린이집에서 준 규격보다 조금 큰 건 작년에도 했었고 다 같이하는 거라서 상관없어요."


어머니에게 다시 다가가 이야기한다.

"엄마 작년에도 컸고, 큰 차이만 없으면 다 그런데..."


어머니가 다시 이야기한다.

"그럼 내가 처음 얘기했을 때 설명을 해주든가 해야지..."


다시 아내에게 가서 말을 꺼낸다.

"다음엔..."


이 순간 아내가 소리친다.

"OOO, 너는 회사나 가~ 어머니랑 둘이 얘기할 거야"


그때 뒤에서 어머니의 외침이 들린다.

"그래 넌 먼저 나가"


앵무새 마냥 양쪽을 오고 가며 말을 전하던 내가 풀이 죽어 축 처진 어깨를 늘어뜨리고 현관문으로 걸어간다.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는데 저기 아이방 문틈사이로 묵묵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대만이와 눈이 마주친다.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애써 무시하고 동정 따윈 필요 없다고 조용히 읊조리며 현관문을 열고 길을 나선다. 출근길, 제발 잘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중용은 중간이 아니라 알맞은 위치에 서는 것

출근을 하고 나면 일이 많아 정신이 없다. 정신없이 보내던 와중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온다. 시어머니와 잘 해결했다는 문자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 모두 해결됐구나'하고 한시름 놓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평소라면 저녁을 함께할 어머니가 바로 집으로 간다. 역시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구나 생각하고 아이를 돌본다.


그러다 밤 11시가 넘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한 평짜리 골방의 주인인 동생에게서 문자가 온다. 벌써 5시간 정도 시달리다 보내온 것 같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동생은 아내의 잘못을 하나하나 꼬집는다. 그 내용을 보고 실제 일을 겪었던 입장에서 하나하나 반박을 한다. 어머니가 잘못한 부분은 잘못된 것이다. 관계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게 해선 안된다. 동생도 반박에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크게 한 번 화풀이만 하고 말을 끝낸다. 5시간 정도 시달렸다면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그렇게 동생과의 문자를 끝내고 잠이 든다.


충격적인 것은 그대로 곯아떨어져 자던 와중에 아내가 내 휴대폰으로 동생과의 이야기를 다 읽은 것이다. 세상 두려울 게 없던 나는 당시 아내에게 휴대폰 패턴을 공개했었고 내가 자는 동안 낌새가 이상했는지 확인을 한 모양이다. 오히려 이 확인으로 아내는 남편이 자신이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늘 자신의 편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행동으로 증명했으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에겐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관계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가족이다. 여기서 핵심가족은 나와 아내와 우리의 아이이다. 핵심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원가족을 돌보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다. 어머니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지만 우선 핵심가족을 돌보고 원가족을 챙기는 것이 순서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이 사달이 난 것도 이 이해관계에 대한 서운함에서 비롯된 점이 크다.


어머니가 서운할 수 있지만 우선 자신의 원가족을 떨어뜨리고 내 가족이 모여사는 지역에 홀로 온 아내를 먼저 챙기는 것이 맞다. 그리고 아내가 여기서 안정감을 느껴야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어머니의 근처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얻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 반대로 잃는 것도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사랑하는 아들들을 지근거리에 두고 보고 싶다면 어머니도 내놓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집착이다. 필요이상의 통제를 독립한 아들들에게 요구하면 그 관계는 건강할 수 없다. 독립을 했으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지 모두 다 통제해서 자기 뜻대로 자식들이 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 아니다. 이건 우리 아이에게도 적용하여 생각하고 있다. 지금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들이지만 결국은 독립할 때가 올 것이고 그때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안다.


그땐 아내만이 유일한 내 핵심가족이 되어줄 것이고 같이 즐겁게 늙어가고 싶다. 당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며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엄마 나 계속 보고 싶으면 아내한테 잘해"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더 없는 불효겠지만 실제 의도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원하는 만큼 편하게 함께 지내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었다. 생각이 올바른 어머니는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금방 이 이치를 깨닫고 관계설정을 다시 하여 지금은 다시 예전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여 지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가끔 긴장감이 흐른다. 갈등이 없다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건강한 긴장 속에서 서로 조심하며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줄여나가며 조금씩 더 건강한 관계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서운해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니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이 또한 모진 세월을 홀로 버티며 자식들이 잘 자랄 수 있게 기다려 준 고생에 대한 보상이다. 여전히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묘한 긴장감 사이에서 우리 부자는 오늘도 외줄을 탄다. 마치 어릿광대처럼 하루하루 잘 해내고 있다. 무척 행복하게 말이다.


아빠의 처세술에 아이는 '처음의 측은한 눈빛을 지우고 경외로운 눈빛으로 하나씩 배운다.'라고 아빠가 생각하는데... 아들의 진심은 알 길이 없다.


고부갈등을 해프닝으로 끝내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일상을 찾은 부자에게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