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새옹지마' 실감하기
오래간만에 호출, 설레는 마음
가장 자랑스러운 후배의 안부인사
그리고 저녁 한 끼 대접한다는 말.
기쁜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고 중간쯤 도착했는데
위치를 묻는 메시지가 온다.
거의 비슷한 위치.
만나서 같이 가잖다.
4-2 타고 있던 지하철 위치를 말한다.
혹시나 엇갈리까 목을 빼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중에 후배가 있는지
요러고 본다.
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후배가 탄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고
눈여겨둔 자리에 잽싸게 앉아
빈자리를 툭툭 친다.
통화를 하던 후배는 눈인사를 하고
조용히 내가 맡아둔 자리에 앉는다.
통화를 끊고
후배가 한숨을 쉰다.
뭔가 심상치 않은 공기의 무게.
조용히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회사를 운영하며 이직한 후배 중에
최고의 아웃풋.
다들 부러워하던 후배가
오늘 갑작스럽게 면팀장되고
퇴사시킬 사람들을 모아둔 팀에
발령받았다고 한다.
갑자기 성장한 대기업,
작은 구멍가게에서 3년도 안 된 사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 기업은
체계가 없었다.
신입에 가까운 후배를 스카우트해
1년 만에 팀장을 맡기더니
쳐내는 것도 비슷하다.
듣고 있는 내가 더 황당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후배는 멘털이 나갔다.
어떻게 시그널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처리하는지.
당황스럽다.
성과급을 많이 받았다고 하여
기분 좋게 얻어먹으려고 왔더니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불편한 마음으로
그가 사주는 갈빗살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불편하다.
술을 즐기지 않는 후배는
연거푸 맥주 한잔을 원샷하고
하소연을 시작한다.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다.
다들 그만둔 백수를 앞에 두고
직장생활 하소연을 그렇게나 해댄다.
참! 속도 좋은 내가 열심히 들어준다.
결국 끝이 정해진 싸움.
후배는 퇴사를 이야기한다.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제 30 초반
어디 가서 든 잘할 친구.
이 친구를 신입사원으로 뽑아 일을 시킬 때면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일을 잘 처리하거나
적시에 어렵다고 보고를 한다.
크게 정해둔 시나리오에서 대응하면 된다.
큰 기업에 가서도 잘했던 친구
정치는 배우지 못했다.
이제 큰 위기 속에 몸소 배웠으니 잘 될 거라
위로한다.
이미 후배에게 러브콜 하는 회사도 많다.
골라서 가면 된다.
살아오며 가장 크게 배운 교훈이 있다면
인생사가 모두 '새옹지마'라는 것이다.
지금의 상태에 몰입해서 미래를 판단할
필요 없다.
살아 내면 반드시 다른 좋은 상태가 기다린다.
그것을 알기에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는다.
분명히 좋은 날이 다시 올 것을 믿는다.
너무나도 달콤한 성취에 자만하지 않는다.
반드시 크나큰 고비가 다시 올 것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는
인생에 몸을 맡기고
너무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눈을 꼭 감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
그것이 인생을 즐기는 자세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안전바를 꽉 붙잡고
눈을 크게 뜨며 대비한다.
언제든 소리를 지르기 위한...
힘든 날은 빨리 취하는 법.
별로 마시지 않은 술잔을 앞에 두고
감상에 빠져 멍하니 앉아있는 후배를
가볍게 흔들어 깨어
집에 가서 그냥 소리 내서 울라고 얘기해 준다.
감정을 속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견디지 말고 지금의 감정을 즐기라고 해준다.
어차피 한 달 후면 오늘의 감정을
까맣게 잊을 것이다.
퇴사를 선택한 것이라면
하루빨리 다음 계획을 세워서
감정이 아닌 행동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한다.
대신 오늘은 펑펑 울어라...
백수인 내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자
달려들어 말리는 후배.
자기가 사기로 했으니 자기가 산단다.
거듭되는 성화에 조용히 손을 떼고
결제하는 후배 뒤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기다린다.
결제가 끝나고 뒤돌아 서는 후배를 향해
"잘 먹었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한다.
헤어지는 갈림길.
후배에게 다음에는 좋은 일로 부르라고
좋게 타이르고 이른 귀갓길에 나선다.
입맛이 쓰다.
다음 만남은 달콤한 한잔을 하길
잠시 기도한다.
휘몰아치는 하루하루의 사건에
휘말리는 일상을 다 반사(反射)하고
조용한 적막을 즐기고자 한다.
후배의 고통에 같이 빠져 있지 말고
그저 더 좋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주기로 한다.
그렇게 힘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