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反射)

9) '작은 행복' 음미하기

by 경자호

아내는 아이가 3학년에 올라가면

생존수영수업이 있다고 한다.

수영학원에 등록하면 학원비가 많이 나온다.

등록을 안 해줄 것을 알고 아내가

구립수영장의 어린이 방학특강을 찾는다.

집 근처에도 많은데 광클에서 탈락했다.

집에서 지하철로 3 정거장 거리에

겨우 등록을 성공했다.

오전 10시에 하는 수업이라고 한다.

"먼데..."

우선 주차는 무료가 아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한다.

아이랑 열심히 걸으면 35분 거리...

걷는 것을 선택한다.


아침 8시 반 아내가 회사를 가면

바로 아이를 전광석화로 깨워

밥을 먹인다.

원래 영어 리스닝을 틀어놓는데

수영학원에 가는 화, 목은

협조가 필요하여 유튜브를 보게 한다.

협상의 결과가 좋다.

아이가 눈에 불을 켜고 일어나서

유튜브를 켜고 집중해서 보고 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차리고

얼렁뚱땅 15분 만에 식사를 마친다.

아이는 수영장 샤워실에서 씻는다.

얼른 들어가 나만 씻고 나온다.

이번 겨울 수영장 가는 날이면

유난히 춥다.

영하 12도...

아내가 버스안타면 사달이 난다고

경고했다.

아이에게 오늘 맥도널드 사 줄 테니

엄마한테 버스 타고 갔다고 하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단단히 무장하고 길을 나선다.


추운 겨울 꽁꽁언길

부자가 마스크에 귀마개에 모자까지 쓰고

단단히 무장하고 길을 나선다.

"아빠 다리 아파"

"넌 걷지도 않았는데 다리 아프냐?"

아직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다리 아프다는

아이를 달래고 열심히 걷는다.

집에서 약 2.5km 거리 그렇게 멀지 않다.

그동안 같이 있어도 서로 다른 일을 했다.

아이와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물리적으로 가까웠지,

이렇게 상화작용을 한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았구나...

교통비를 아낄 요량으로 걷기 시작했다가

오히려 아이와 소중한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

무뚝뚝한 아빠와 아들은 집에 같이 있어도

대화가 없었구나.

새삼 느낀다.

아이는 귀멸의 칼날 게임 이야기부터

학교에서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군데

누구랑 같이 게임하면 좋은 지

넘어질까 맞잡은 손을 꼭 쥔 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고 의문 가는 걸 묻는다.

서슴없이 대화하는 아이와 가까워진다.

같은 공간에 있어서 가까운 것이 아니다.

서로 대화하고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때

진정으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아이와 걷는 35분 춥고 힘들어도

둘 다 행복을 느낀다.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행복에

감동이 밀려온다.

멀리서 '파랑새'를 찾아 방황하던

옛 일상을 다 반사(反射)하자,

바로 내 옆에 '파랑새'를 발견한다.

이 행복을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음미한다.


이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음을 알기에

즐길 수 있을 때 열심히 가슴에 담아두자.

아이와 탈의실에 들어가 옷 갈아입는 것을

봐주고 탈의실에 멀뚱히 서있으니

아이가 벌써부터 나가란다.

자기 혼자 할 수 있단다.

녀석 벌써 이렇게 컸구나...

시간이 얼마 없다.

수영장 관망대에 앉아 아이를 지켜본다.

작은 몸으로 어푸어푸 잘도 따라 한다.

그러다...

같이 수영을 배우는 젊은 여성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마주한다.

아이를 보러 온 것인데...

젊은 남자가 큰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그들의 무언의 협박에 굴복하여

멀찍이 앉아 책을 읽는다.

아이 사진도 찍어주고 싶은데

바로 경찰서로 갈 것 같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점심 때다.

교통비를 아낀 만큼 외식을 시켜준다.

맥도널드 맥치킨 하나에 아이는 행복하다.

걸어도 좋단다.

퇴근 이후 집에 돌아온 아내에게

아이 수영을 잘 시켜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 한마디에 기쁜 마음으로 아내가 말한다.

"2월은 월, 수, 금 3일로 등록할게..."

얼른 멈추라고 이야기한다.

이 추운 겨울 주 2회면 딱 적당하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못하는 진실된 아이가

오늘도 걸었다고 엄마한테 얘기한다.

아내는 오늘도 입에서 험한 말을 쏟아낸다.

눈은 슬픈 눈을 하고 있지만,

조용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막을 수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등원길에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