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행복의 온도' 느껴보기.
방학을 맞이한 아이를 양육하며
요즘 가장 큰 업무는 아이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차려줘야 한다.
작년까진 돌봄을 보냈지만 이번엔 아니다.
아이와 하루종일을 함께 시간을 보낸다.
수학, 영어 태권도 학원을 갈 때는 빼고 말이다.
종일 같이 있으면 잉꼬부부도 싸우는 법.
아이와는 매일매일 전쟁을 치른다.
방학기간 충분히 잘 때까지 기다려주지만
일어나서 아침부터 반찬투정이다.
잠결에 삼키는 걸 힘들어하여
김에다 밥을 싸서 준다.
헌데 몰래 숨겨놓은 콩나물이 문제다.
하나하나 생선가시 바르듯 발라낸다.
좋게 타이르며 삼키도록 독려하지만
약 올리듯 발라내는 아이를 보며
성격만 버리는 것 같다.
그만두자.
아침식사를 마치고
방학기간 정해놓은 공부시간.
첫 교시 영어는 독해를 하다 드러눕는다.
화를 냈다고 하는데 화를 낸 적이 없다.
물론 목소리톤이 좀 올라가긴 했지만 말이다.
단어를 외우다, 문장을 완성하다,
툭하면 드러누워 파업을 한다.
기어코 화를 돋운다.
꾹 눌러 참고 부드러운 목소리 말한다.
"아빠가 잘못했어. 화 안 낼게"
다시 자리에 와 앉는다.
2교시 수학은 분량을 한 페이지 줄여 달란다.
안된다고 하자, 또 드러눕는다.
노조위원장을 해도 이러진 않겠다.
마지막 국어는 지문을 소리 내서 읽으라고 하자,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속으로 다 읽었는데 또 소리 내서 읽으라는 게,
그렇게도 억울한가 보다.
미안하다고 해도 그치지 않는다.
왜 우는지 그 이유를 찾아서
꼭 다독여 줘야 한다.
"아! 다 읽었는 데, "
"아빠가 모르고 또 읽으라고 해서 속상했구나?"
서럽게 울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읽지 마!"
타협을 본다.
오후 3시 학원 갈 시간이다.
날씨가 추우니 두껍게 입으래도
말을 안 듣는다.
억지로 패딩조끼를 안에 챙겨준다.
꾸역꾸역 옷 입히는 것조차 고역이다.
후다닥 챙겨서 학원에 보내고 나면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전쟁 같은 육아를 치르고 있다.
아이를 보내놓고 가만히 생각한다.
하루하루 전쟁이지만 얼마나 행복한 전쟁인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참! 좋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해서 좋다.
길게 기억에 남고 오랫동안 생각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귀한 시간이다.
5억짜리 정부지원 사업발표를 해서
큰 사업권을 따오는 것보다
아이와 같이 공부하고 배우는 시간이 더 좋다.
큰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버는 일보다
반찬투정받아주며 몰래 반찬을 넣는 게 더 좋다.
경제적 성취보다 소소한 일상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직장을 갑작스레 잃은 이후로
한동안 앓았던 마음의 병도
아이와 일상을 보내며 치료된다.
마치 구원받고 있다고 느낀다.
잠시 짬나는 시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처음의 억울하고 언짢은 기분은 물러가고
요즘의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가득 차 있다.
앞으로 이대로 살고 싶다.
부족하고 결핍된 일상을 다 반사(反射)하고
충만하고 따뜻한 일상으로 다시 채운다.
강박도 집착도 녹아내린다.
잠깐 새 즐기던 행복한 공상도 잠시,
이제 학원 끝나고 올 아이의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고등어 반토막을 약불에 올려 지글지글 굽는다.
썰어서 들기름에 볶아둔 당근을 그릇에 담는다.
골고루 먹지 않는 아이 덕에
숟가락에 한입크기로 밥과 반찬을 담아준다.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면서 모든 반찬과 밥이 같은 숟가락에
끝나도록 밥양과 반찬양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는
강박을...
아직도 내려 놓지 못했느냐고 스스로 꾸짖는다.
"오늘 같은 내일을 준비하자."
이야기하고 내일 있을 행복을
잠깐 상상해 본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말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