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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21. 2019

22. 자기주도력(2부)

: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경유지일 뿐이다

지난 편 -  자기주도력(1부)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경유지일 뿐이다


 “니는 알아서 잘하이까, 니 알아서 해래이.”

 (너는 스스로 잘하니까, 네가 스스로 해보렴.)


 이 무심한 소리는 부모님이 내게 종종 한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말대로, 나 스스로 잘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나 역시 부모 속을 많이 썩인 아들일 뿐이었다. 알아서 잘하기는커녕, ‘넌 왜 그 모양이니?’라는 말을 듣기에 딱 좋았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누나가 있었다. 자식이 둘인데, 그중 하나가 성적이 뒤처지면 이게 눈에 안 밟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누나를 본받아서 성적을 올리기는커녕, 중학교 3년 내내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게임에 빠져 살았다. 학원 마치고 밤 12시가 넘도록 게임에 빠진 날도 많았다. 주말에도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게임만 했다. 비실비실한 성적에도, 부모님은 시험이 끝나면 고생했다며 격려하셨다. 그 격려 덕분에, 시험 2주 전부터는 게임을 끊고 독서실에 박혔다. 


 고교에 입학하자 충격 선언을 했다. “저 학원 안 다닐래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원을 때려치웠다. 몇 달 후, 폭탄선언을 했다. “사는 게 의미가 없어요. 도 닦아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단전호흡 할래요.” 다른 아이만큼 공부해도 부족할 고등학생이 도를 닦겠다니! 보통의 부모라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면 몇 문제나 풀 수 있는데! 너 왜 그러니?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딴생각은 일절 하지 마!”

 부모님은 나의 황당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단, 단전호흡만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삐딱한 길의 연속이었다. 대학 진학 때는 취업이 불확실한 전공을 선택했다.  졸업을 앞두고 공단 1곳과 사기업 1곳에 합격했다. 안정된 공단 대신 치열한 회사를 선택했다. 다른 부모라면 뜯어말렸음이 분명하다. 공단은 준공무원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안정된 곳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 부모님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자식의 재능과 인생을 방치한다고. 조금만 더 바짝 쪼이면 더 나은 대학에 보낼 텐데. 조금만 고집을 꺾어 놓으면 더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닐 텐데.     

 어떻게 고1이 단전호흡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침 8시에 등교해 저녁 8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기에, 오전 5시 50분의 새벽반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눈이 떠지지 않는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서야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제풀에 지쳐 그만두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을 지원했다. 매일 새벽 아침밥을 차려 주었고, 한 달 후에는 어머니도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자식의 바람을 꺾지 않았기에 삐뚤어지지도 않았고, 성적을 유지한다는 현실적인 타협을 해주었기에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땐 PC통신을 즐겼다. 하지만 시험을 3주 앞두고는 스스로 모뎀을 떼어 안방 장롱 위에 얹어 놓았다.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믿음의 보답이었다. 


 부모는 매 순간 아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길 원한다. 하지만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 단기간의 결과로는 더 나은 선택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어차피 삶은 실패와 성공으로 얼룩져있다. 당장은 성공이라 생각하지만 결국은 실패한 것도 있고, 당장은 실패라 느끼지만 성공의 밑거름이 된 경우도 많다. 

 내 삶도 그러했다. 당장의 나은 결과를 선택했다면 나중에 나쁜 결과가 닥쳤을 것이다. 만약 부모님이 학원을 억지로 다니게 했다면? 단전호흡을 못 하게 했다면? 당장은 성적이 더 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반항심이 점점 커져서 성적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위장이 약한 탓에, 위염과 장염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      


 당장에는 실패라 생각했지만, 미래를 위한 성공이 되었다. 한 걸음 후퇴가 두 걸음 전진이 되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공부에서 멀어지게 하는 단전호흡이었지만, 그 덕분에 평소에 운동을 챙기지 못했던 어머니도 건강을 유지했다. 나 또한 수험생 병을 모르고 졸업했다. 수험생 병이 날 리 없었다. 수험생이 아니라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았으니까. 수십 만 명의 고3으로 살지 않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 살았으니까. 


 아이에게 선물한 자유와 시간은 의외의 면역력으로 돌아온다. 1999년 전국의 남학생이 PC게임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에 접속할 때, 나는 특별한 신분이 되었다. 부모님이 PC방을 개업한 것이다. ‘PC방 아들’인 나에겐 모든 게임이 공짜였다. 하지만 난 게임을 하지 않았다. 틈틈이 일을 거들뿐이었다. 요란한 게임 사운드 말고도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소리가 많았다. 재떨이에 티슈 한 장 깔고 분무기로 치익! 치익! 두 번 물을 뿌려야 담뱃재가 날리지 않았다. 찰가당-땅-하며 현금출납기가 입을 벌릴 때마다 장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음료자판기에 다르르륵- 다르르륵- 캔을 채워 넣는 소리는 청량음료보다 시원했다. 

 고양이 앞에 놓인 생선처럼, 고딩 앞에 놓인 게임을 물지 않은 건 부모님이 선물해준 면역력 덕분이다. 중학교 때 질리도록 게임을 했기에 게임이라면 치가 떨렸다. 다른 학생이 공부하는 시간에 게임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다. 게임 중에야 말초적 자극 덕분에 걱정이 들 새도 없지만, 몇 시간 후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허무만 남았다.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하면서도 절제를 못 하니 게임을 지웠다. 어떻게든 게임을 다시 구해 설치하길 반복했다.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른다. 중학교 내내 부모님은 내 양손에 공부와 게임을 각각 쥘 수 있게 선택권을 주었기에, 고등학교 때는 스스로 게임을 내칠 수 있었다.


 결코! 오르지 않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시험 때마다 ‘우리 아들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라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난 내가 진짜 고생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로 나오니 공부가 제일 쉬웠다. 하지만 부모님이 ‘공부가 얼마나 쉬운 건 줄 아니?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한 때야. 왜 정신을 못 차리니?’라고 했으면, 학생의 고충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삐뚤어졌을 것이다. 공부보다는 게임을 더 움켜쥐었을 것이다. 숨 막히는 학교에다 숨 막히는 집까지 더해진다면 숨 쉴 구멍은 게임밖에 없을 테니까.      


 타인 주도적인 경험은 삶을 좀먹지만, 자기 주도적인 경험은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 당장의 성공과 실패는 없다. 그저 성공으로 향하는 경유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단전호흡도 대학 전공도 그러했다. 단전호흡을 시작할 때는 ‘이걸로 득도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교 때 단전호흡을 그만뒀다. 단전호흡은 실패한 선택도 성공한 선택도 아니게 됐다. 내가 선택한 전공도 마찬가지다. 취업률이 낮아 재수와 전과로 떠나는 동기를 보며, ‘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전공을 살려 취업한 소수가 되었다. 하지만 5년 후 직장에서 직무가 바뀌어 전공 경력이 끊겼다. 내가 선택한 단전호흡도, 내가 선택한 전공도 모두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선택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일 뿐이다.


 성공과 실패의 양면으로 이루어진 경유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꿋꿋하게 살아왔다. 스스로 한 선택이기에 책임지려 했다. 내가 선택한 단전호흡으로 공부 시간은 줄었지만, 더 건강한 심신으로 공부 효율을 높였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취업이 힘들었지만, 분발해서 좋은 직장을 얻었다. 공단을 버리고 사기업을 선택했기에, 치열한 경쟁에서도 버티고 살아남았다. 내 선택이었기에 환경을 원망할 겨를이 없었다. 아마 부모님이 성적이나 전공, 직장을 강요했다면 쉽게 포기하거나 타성에 젖어버린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때그때의 성공과 실패로 판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지 않은 선택이지만 ‘내가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삶의 주인으로서의 느낌이다. 그 느낌이 아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근사한 답을 찾도록 한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키운다.      


언행 불일치 : 아이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당연히 저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다. 진정한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진학하고 취업하고 승진하고 은퇴하기까지 너무 떠밀려 산다. 눈치를 많이 보는 문화다. 주인이 아니라 하인으로 사는 것이다. 몸은 안다. 현재 주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냥 텔레비전을 켜고 싶고 그냥 여행을 가고 싶다. 때론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려고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현실을 잊고 떠나고 싶으니까. 주인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럼 “아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아이”라고 대답할진 몰라도 그것 또한 진실이 아니다. 아무리 아이에게 성적과 진학과 취업과 결혼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주인으로 살아가게 하기는 힘들다. 생물학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별개의 자아로 인식하지 않는다. 특히 엄마의 뇌는 자녀를 자신과 동일하다고 여긴다. 뇌에서 자아를 인식할 때 반응하는 부위가 자녀를 떠올릴 때도 반응한다. 자녀와 나를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내 배가 아파 낳은 아이고, 내 살덩이가 자라 이루어진 아이다. 부모가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저항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의 삶이 딱 한 번 뿐이듯, 아이에게도 자신의 삶은 딱 한 번이다. 혹시 게임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겨주겠다며 조종기를 빼앗지 않는가? 부모에게 조종기를 내주는 게 당연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에게 자신의 조종기를 쉽게 내어줄 것이다. 부모의 간섭으로 자란 아이는 쉽게 쓰러진다. 큰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작은 실패를 허용한다면, 당장의 실패가 견고한 성공으로의 경유지임을 깨달을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그리고 취업까지. 아이의 인생을 결정할 것 같은 관문은 그 자체로 실패나 성공이 될 수 없다. 아이에게 조종기를 돌려줄 때, 경유지는 아이가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자기주도력을 키우기 가장 좋은 곳 


 “넌 공부만 하면 돼, 다른 건 일절 신경 쓰지 마.”

 흔히 부모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공부에 전념하는 데서 자기주도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나에게 공부에 전념할 기회를 주다니, 이번 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가 봐. 난 정말 공부에서 내 존재 가치를 느껴!’라고 생각할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사회에서 써먹기는커녕, 시험만 끝나도 폐기된다. 단지 시험 성적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한 쳇바퀴를 돌리는데 어떻게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커질수록 무기력해지는 법이다. 그나마 타인 위에 올라섰다는 뒤틀린 우월감에 기대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갈 뿐이다. 


 자기주도력은 자기효능감에서 싹튼다. 자기효능감은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며, 실생활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자기효능감은 아이의 지적 발달과 진로 개척, 건강, 행복까지 선사한다.

 아이의 자기주도력은 어디에서부터 자랄 수 있을까? 가정이다. 가정에서 행해지는 모든 집안일에 아이가 참여토록 하자. 쓸기와 닦기 등의 청소, 설거지, 요리, 빨래, 정리정돈, 화분 가꾸기 등 정기적인 집안일에서부터 가구 배치 바꾸기, 페인트칠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안일을 함께 하자. 사회적인 면에서도 자영업을 한다면 가끔은 가게 일을 돕도록 하자. 직장인이라면 아이를 직장에 데리고 갈 순 없어도 아빠,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사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요즘 시장 상황은 어떤지 공유할 수 있다. 마트도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된다. 효율적으로 물건 찾기, 가격과 성분을 비교해서 고르기, 계산하기 등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들더라도 가급적 참여하게 하자. 요리도 좋다. 베이킹, 밥 안치기와 계란 후라이 정도의 요리는 초등학생만 되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빨래를 갤 때는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개자. 집안일은 혼자 뒤집어쓰면 독약이 되지만, 함께 나누면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명약이 된다. 

 운 좋게도 나에겐 많은 기회가 열려 있었다. 내 방 청소와 정리는 물론 거실과 안방까지도 언제든지 청소할 수 있었다. 청소뿐만 아니라 설거지와 화단에 물 주기, 강아지 먹이 주기까지 제한이 없었다. 쑥쑥 크는 화단의 식물과 강아지를 보며 자기효능감을 느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초등학교 때 어깨가 빠지도록 자동차 왁스 칠하기, 중학교 때 벽에 페인트칠하기, 고등학교 때 PC방 돕기 모두 자기효능감을 높였다. 군 제대 후 복학 전까지 8개월간, 부모님의 작은 음식점에서 가게 홍보와 오토바이 음식 배달을 맡았다. 직접 발로 뛰며 영업해 밑바닥 매출을 가족의 인건비가 나올 정도로 올렸다.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라며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을 얻었다. 부모님이 ‘복학해서 공부 열심히 해라’하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었다. 일이 힘들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다음 편 - 23. 자기주도력(3부) : 자신만의 색을 더할 때 빛이 되는 아이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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