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달 May 28. 2019

23.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3부. 판단 기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라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아테네 근처에 살았다.

잠자리가 필요한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그는 나그네가 집에 들어서면 쇠침대에 눕혔는데,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망치로 두드려 펴서 늘려 죽였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 죽였다.

단 한 명만이 침대와 정확히 크기가 맞아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를 노예로 부렸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은 결국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끝났다.

그 또한 자신의 침대에 눕혀져 같은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흔히 독단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상사의 태도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빗대어 비판한다. 하지만 프로크루스테스는 상사의 마음속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두뇌의 이성적 판단이다. 이성적인 판단 없이 본능대로만 행동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판단을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다. 나그네의 키를 잰 쇠침대처럼 말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업무뿐만 아니라 긍정적 에너지와도 관계가 깊다. 상사가 부하의 아이디어를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틀에 맞게 재단해버리면 부하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의욕도 죽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쉼 없이 찾아오는 의욕, 감사, 만족 등의 긍정적 에너지를 자신의 엄격한 잣대에 맞춰보고 가차 없이 처단한다. 끝없이 재물을 추구하는 탐욕 때문에 안정적인 월급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 나름 훌륭한 동료들과 일하고 있음에도 이런저런 구실을 대어 그들을 비난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만족과 욕망은 타협할 수 없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는 3가지 문제를 시사한다. 첫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만족시키는 것은 거의 없다. 크기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없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쇠침대에 대부분이 죽임을 당한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나 동료도 자세히 살펴보면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화분을 놓을 때 꽃이 잘 보이는 쪽을 당신에게 향하도록 놓는 것처럼 동료에게도 적용해보자. 옆의 동료는 아름다운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뒤섞인 화분이다. 굳이 흉한 면을 들추지 말고 좋아하는 면을 바라보자.


 둘째, 설사 자신의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도 욕망은 그치지 않는다. 더욱 맹렬하게 엄격한 조건을 추구할 것이다. 나그네의 키가 침대와 일치해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노예로 삼았을 뿐이다. 이제 프로크루스테스에게는 조력자가 생겼다. 자신의 침대가 옳다는 확신이 강해졌고, 조력자 덕분에 더 많은 나그네를 초대하고 처단할 수 있게 되었다. 알량한 성공 경험에 의지한다면 더 독단적인 사람이 될 뿐이다. 주변에도 “내가 해봤는데, 그건 안 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바뀐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안 된다는 사람 말이다.


 셋째,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 프로크루스테스 역시 수많은 사람을 처단했던 자신의 방식대로 쇠침대에서 인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면 상황에 맞춰 변화하려 하지 않고 그 기준을 고집하게 된다. 코닥은 전 세계 필름과 필름 카메라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했음에도 필름 시장의 잠식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디지털카메라의 마케팅을 소홀히 했다. 결국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대체됨으로써 몰락했다. 주변에서도 목격되지 않던가. 열린 상사는 자신의 경험에 더해 동료의 의견을 반영하고 새로운 지식을 학습해 조직의 중심에 확고히 자리 잡는다. 하지만 꽉 막힌 상사는 새로운 의견과 지식은 무시한 채 과거의 경험만을 고집해 조직의 변방으로 밀려나버린다.


 우리 또한 프로크루스테스와 마찬가지다. 바라는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매일 칭찬받으며 일해야 하고, 높은 고과를 받아야 하고, 늦지 않게 진급해야 한다. 상사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스마트해야 하며 동료와 부하는 일정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야 하며 때로는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명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까다로운 조건을 항상 만족시킬 수는 없기에 우리는 불행의 늪에 곧잘 빠진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찾아온 소중한 손님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듯, 자신의 엄격한 기준에 맞지 않는 현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욕망을 부추기는 판단 기준을 바꾸자


 판단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마인드 프로그램은 불만족이라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다. 직장이나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불만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는가? 내면의 프로크루스테스가 날뛰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유연한 판단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고정된 쇠침대가 아닌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침대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판단 기준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도구임을 명심하자. 반드시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쇠침대건, 유연한 침대건 불필요한 경우에는 내다 버려야 한다. 무언가를 판단하는 데는 한정된 에너지뿐만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소모된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그 잣대를 꺼내와 대보려고 한다. 인간은 끝없이 따지고 드는 호모 크리티쿠스Homo Criticus(비판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을 판단할 필요 자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자.


 판단 기준은 칼과 같은 도구다. 시퍼렇게 빛나는 칼을 칼집에서 꺼내어 24시간 들고 있으면 반드시 자신의 몸도 베일 것이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사람일수록 깊은 열등감에 시달리는 법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항상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불안감에 시달린다.

 칼은 전쟁이나 요리를 할 때만 써야 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고이 칼집에 넣어두어야 한다. 판단하는 사고 활동도 칼처럼 필요할 때만 꺼내 써야 한다. 업무를 재단하는 손을 감시하지 않으면 직장과 동료까지 재단하는 마수가 될 것이다. 마수를 거치면 형편없는 직장과 동료만이 남는다. 자신마저 침대에 올리고는 자기혐오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가꾸기 위해서 사는 것이지, 온 세상을 자신의 잣대에 맞춰 바꾸려고 사는 게 아니다. 심지어 잣대는 들쭉날쭉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이제 그만 잣대에 휘둘려 평온을 해치고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삶에서 빠져나올 때다.


저는 생존자입니다.

배가 거센 폭풍우에 침몰했어요.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답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땐 통나무를 안고 표류하고 있었어요.

통나무에 올라타 손을 저어 드디어 육지에 도착했어요.

통나무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지요.

통나무만 지니고 있으면 어떤 위험도 극복할 것 같았어요.

통나무를 매고 땅을 걷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통나무는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무겁기만 했어요.

삶의 은인이 아니라 족쇄가 되어버렸어요.


직급마다 가지고 있는 행동 전략은 다르다. 사원과 간부, 임원, 사장의 마인드 또한 달라야 한다. 신입사원의 행동 전략은 예스맨과 불도저 정신이다. 일단 “예, 알겠습니다!”라며 돌도 씹어먹을 기세로 일에 매진해야 한다. 전쟁에서 일개 병사와 같다.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에 일단 돌진해야 한다. 신입사원은 좌충우돌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이는 앞서 말한 도쿄대 이케가야 유지 교수의 미로 찾기 실험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주위에는 과거의 전략을 답습하는 분들이 있다. 유관 부서회의에서 넙죽넙죽 일을 받아오는 신입사원 같은 상사가 그 예일 것이다. 그 상사 밑의 사원들은 죽어날 게 불 보듯 뻔하다.

 사장 같은 사원이 입사한 팀에서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왜 이런 일도 해야 하냐며 투덜대는 태도에 팀원들은 어이를 상실한다. 최전선에서 돌격해야 할 병사가 본인은 제갈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령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돌격은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팔짱 낀 채 입만 놀린다.

 리더가 리더 다울 때, 뒤따르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할 때, 회사는 제대로 돌아간다. 리더는 맥을 짚어 현명한 결정을 하고 팀원들은 그에 맞게 최선을 다해 리더의 결정을 수행해야 한다.


위치에 맞는 행동 전략을 가질 것


 직급이 높을수록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변신해야 한다. 직급이 높아지면 골치 아픈 잡일을 부하에게 내던지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상사 L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는 사원이나 대리에게 시켜도 될 일을 야근을 하면서까지 직접 처리할 때가 있었다. 본인이 모르는 반복 업무일 경우였다. 직접 해보고 파악해야

부하에게 제대로 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다시 그 업무가 주어지면 부하에게 가이드라인을 잘 설명해주었고, 자신이 파악한 관리 포인트를 바탕으로 시의적절하게 관리했다. 문제를 부하 탓으로 돌리지 않았고, 부하가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업무를 지체하지도 않았다. 맡은 일은 대부분 훌륭히 수행했다. 그는 임원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행동 전략은 직급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사소한 일상에도 적용된다. 유머가 그 예다. 요즘은 좀체 들을 수 없는 고풍스런 유머를 부장님이 말하면, 처음에는 새로운 느낌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호응이 오니 부장님은 신나서 계속 고풍스런 유머를 시도한다. 부하들이 계속 맞장구쳐주면 정작 본인은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 다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분통 터지는 광경이 계속된다. 옛 유머라는 뗏목을 타면 또다시 웃음바다에 이를 거라는 순진한 아이 모습의 부장을 본다. 잘 보이려는 마음에 틀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 유머조차도 틀에 박혀 생각하게 한다. 깨어 있지 않으면 과거의 행동 전략에 집착하게 된다.


 행동 전략은 집에서도 달라야 한다. 집에 가서 그날 있었던 일을 두서없이 미주알고주알 넋두리하는 배우자에게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대답하면 부부싸움 나기 십상이다. 차라리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배우자가 “그래, 이게 결론이다!”며 이혼 서류를 내던진다면, 가정에서의 행동 전략을 하나도 모르고 살아온 게 틀림없다. 집에서 회사의 행동 전략을 적용하면 월급 머신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정서적 공감대와 안식처를 제공해야 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하나 이상의 행동 전략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데는 제각기 한계가 있다. 이를 간과한 채 무의식적으로 그 행동 전략을 적용하려고 하니 갖가지 문제가 생긴다. 명나라 선비 홍자성은 《채근담》 에서 생각의 체계를 인지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뗏목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곧 그 뗏목을 버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도인이다.

만약 나귀에 앉아서 또다시 나귀를 찾는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선사로 죽을 것이다.


 생각의 체계(마인드 프로그램)를 뗏목과 나귀에 비유하고 있다. ‘좌충우돌 불도저’란 뗏목을 타고 유능한 사원으로서의 길을 나아갈 수도 있고, 관리자가 되어 그 뗏목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역할뿐만 아니라 가치 기준도 유연하게 다뤄야 한다. 경쟁을 할 때는 이기겠다는 가치 기준으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 결과를 받아들일 때는 배우겠다는 가치 기준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이미 패배했는데도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 승부를 준비하자.

 지금 어떤 뗏목을 타고 있는가? 상황에 따라 역할과 가치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한다면, 진리를 깨달은 도인처럼 항상 자유로울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유연함의 문제다.


다음 편 - 24.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4부. 외미 부여)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매거진의 이전글 22.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2부. 악순환 탈출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