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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Jun 05. 2019

28. 마음으로 나를 활용하기(2부: 캐릭터)

보다 지혜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9회 말 1사 2루, 점수는 6 대 7로 1점 뒤진 상황.

이번 차례는 팀의 에이스 4번 타자.

비록 투수와 상대전적은 좋지 않았지만,

상승세와 능력을 믿고 예정대로 타석에 세웠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믿을 수 없었다. 3구 삼진!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기회는 단 한 번뿐.

최근 부진했지만, 상대전적이 좋은 대타를 세웠다.

초구를 통타하여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

8 대 7로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당신의 캐릭터는 몇 명인가? 나는 회사에서는 과장, 집에서는 남편과 아빠, 당신에게는 저자, 누군가에게는 이웃이나 친구이기도 하다. 대강 떠올려도 5개 이상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캐릭터는 사고방식(Mindset)을 의미한다. 당신은 여러 캐릭터가 얽혀 있는 복합체다.

 스포츠팀(자아)에 여러 명의 선수(캐릭터)가 있는 관계와 같다. 이 선수들은 사고방식과 행동유형이 모두 달라서 상황에 맞게 적절히 기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를 써야 한다. 아무런 부담 없이 내질러야 쓸 만한 아이디어를 건질 수 있다. 브레인스토밍에 권위적인 웃어른 캐릭터를 쓴다면 침묵만 이어질 뿐 아무런 아이디어도 입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관성에 따라 캐릭터 활용하기


 캐릭터의 중요한 특성은 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경기장에 투입된 선수를 교체해주지 않으면 계속 뛰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는 최후통첩게임 심리실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실험집단을 나눠 A그룹에게는 비즈니스 물건을 보여주고, B그룹에는 그와 무관한 물건을 보여준 다음 최후통첩게임을 진행했다. 제안자가 일정 금액을 상대방과 분배하도록 제안하는데, 상대방이 승낙하면 제안대로 나눠가지지만 거절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게임이다. 그 결과 B그룹이 A그룹보다 균등분배 제안을 더 많이 했다. A그룹은 자신의 몫을 더 챙기는 조건을 제시했다. A그룹은 비즈니스 물건을 보았기에 높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 캐릭터가 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어떤 캐릭터로 활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교체하자. 예를 들어 자신이 과장인데 사무실에 부하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해보자. 단순작업을 긴급하게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현재의 ‘과장’ 캐릭터는 옆 부서 대리도 안 하는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며 투덜댈 것이다. 이때 선수 교체가 필요하다. 위 최후통첩게임의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 입사 통보를 받았던 감격의 순간, 기대로 가득했던 신입사원 연수 시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평소 입지 않았던 정장을 입고 첫 출근한 날, 자신을 반겨주고 가족처럼 챙겨주던 동료 등을 떠올려보자.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자, 캐릭터가 교체됐다. ‘과장’ 캐릭터는 벤치로 물러나고 ‘신입사원’ 캐릭터가 경기장에 투입됐다. 과장 캐릭터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일을 끝내면 된다. 캐릭터를 잘 교체해주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효율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캐릭터가 자신을 기용해달라고 날뛰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경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심기를 거슬리는 일을 되받아치려고 한다. 이때는 특히 주의하자. “신을 출전시켜 주십시오, 적을 섬멸하고 오겠나이다”라며 다혈질의 전사 캐릭터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를 제지하지 못하면 그는 당신을 점령할 것이다. 그라운드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릴 것이다. 흥분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이 그 캐릭터에 빙의되어 말하고 행동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캐릭터를 잘 활용하는 방법은 캐릭터의 특성을 파악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당신에겐 여러 선수(캐릭터)들을 기용하고 육성하는 감독의 권한이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만큼, 당신은 독재자가 되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캐릭터를 한 가지 기준으로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할 것이다.

 선수로서 탁월한 성공을 거뒀지만 감독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다. 한국과 일본을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이대호 선수는 심각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국내 프로선수 시절, 전설적인 타자 출신의 감독이 그에게 쪼그려 뛰기와 달리기로 무리한 체중감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릎 연골이 파열되어 수술대에 오르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실패한 감독들의 특징은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라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선수마다 재능은 제각기 색깔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색깔과 다른 선수들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정신력과 태도를 문제 삼는다. 그들이 이전에 선수로 출세한 것은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어떤 색깔의 재능이 있는지 알아본 지도자 덕분임을 모르는 것이다. 감독이라면 캐릭터의 색깔을 인정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캐릭터를 활용하면 지혜롭게 살 수 있다.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만큼 해결책을 찾을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회사 문제를 두고 사원과 대리의 캐릭터를 활용해 살펴보기도 하고, 아직 걸음마 단계인 상사나 사장의 캐릭터로 보는 방법도 있다. 사원은 신선한 시각으로 접근할 것이고, 대리는 실무적인 고려를 할 것이다. 상사는 유관 부서와의 관계도 고려하고, 사장은 회사 전체와 업계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다양한 관점을 조합해야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가정 문제는 자식, 부모, 형제자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수 있다. 관점을 바꾸면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캐릭터를 활용하면 풍요롭게 살 수 있다. 복잡한 세상사는 까마득히 잊고 순수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은가? 그럼 아이와 놀 때는 놀아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천진난만한 아이 캐릭터를 꺼내 같이 놀아라. 같이 멍 때리기도 하고, 아이가 웃을 때 그대로 따라 웃어보라. 그 순간만큼은 천진난만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열정적인 청춘이 그리운가? 추억 속에 자리한 청년 캐릭터를 꺼내라. 이것저것 재지 않고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두려움과 나태와도 작별할 수 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고 싶은가? 그럼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의 캐릭터를 꺼내라. 어깨 힘이 빠지며 안달복달하지 않게 되고 넓은 시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하게 나를 관찰하기


 자아 안에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 자아는 캐릭터들을 다루는 감독의 권한도 가지고 있다. 캐릭터는 여러 마인드 프로그램이 결합된 복합체다. 캐릭터는 대략 알겠는데, 자아는 막연하기 짝이 없다. 그럼 자아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란 말인가? 의문이 들 것이다. 자아가 아닌 것들을 하나씩 뜯어보면서 진정한 자아에 접근해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나를 경험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내가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하면서 마지막까지 무엇이 남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있는데 이 꽃은 내가 아니다. 왜냐면 이 꽃은 관찰되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나는 대상화돼 관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관찰되는 모든 것은 대상(object)이지 내(subject)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도 진정한 의미의 내가 아니다. 왜냐면 몸 역시 꽃처럼 관찰되기 때문이다. 몸 어디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모양이고 하는 것들은 내 안에서 바라보며 관찰할 수 있다.

 똑같은 논리로 보면 우리 감정이나 생각도 역시 진정한 나는 아니다. 감정이나 생각도 올라오고 사라지는 것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려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억과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로 구름처럼 일어났다 어느덧 자기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이 관찰된다. 만약 감정이나 생각이 진정한 나였다면 그러한 감정이나 생각이 사라질 때 나 또한 함께 사라져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몸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닌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나의 경우 몸, 감정,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버릇을 잠시 내려놓으니 그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남겨놓는 자유로운 빈 공간들이 있었다. 그 자유로운 텅 빈 공간은 몸 안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 밖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작과 끝,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공간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 공간이 묘하게도 살아서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안다. 하지만 그 자체는 앎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채로 온전히 자유롭다.

<[마음 산책] 나는 왜 태어났고, 나는 누구인가?, 혜민스님, 중앙일보, 2015.5.15>


 당신은 우주의 일부다. 우주 속에서 일정한 경계가 있는 ‘분리된 일부’가 아니라 끊임없이 우주 속을 ‘흐르는 일부’다. 어제 먹은 음식은 당신의 몸이 되었고, 아주 예전에 먹어서 당신의 몸이 된 부분은 각질과 호흡으로 떨어져 나가 더 이상 당신의 몸이 아니다. 어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한 것들은 오늘을 사는 당신의 의식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망각 작용으로 일부는 즉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일부는 잠재의식으로 좀 더 오래 머물다가 떠날 것이다.

 한 순간도 우리는 우주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끊임없이 음식물이 소화, 흡수되어 당신의 몸이 되고 몸의 세포는 각질과 호흡으로 분리되고 있다. 의식이 붙고 떨어져 나가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제아무리 빠른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하더라도 개인의 몸과 의식을 주변과 정확히 분리해서 촬영할 수는 없다. 우리 자신과 주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이 움직이고 싶다고 해서 당신의 몸을 온전히 이동시킬 수 없다. 몸의 세포들을 온전히 다 가져갈 수 없다. 한 발짝 떼는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세포는 각질로, 탄소원자는 호흡으로, 당신에서 주변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진정한 자아를 관찰하는 것이 어렵다. 갓 태어난 아기가 한 뼘 앞만 볼 수 있듯 자아를 보는 시력 또한 갓난아기와 같다. 아기가 모빌을 보며 시력을 단련하는 것처럼 당신 또한 일기나 명상으로 자아를 관찰하면 시력을 기를 수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고정된 자아 인식으론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살갗 속에 갇힌 자아에게 자유를 선사하자. 의식을 살갗 안에 가두지 말고 주변으로 뻗쳐보는 것이다.


살랑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가보세요.

그리고 눈을 감으세요.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의식을 실어보세요.

혹시 주위에서 소리가 들리나요?

소리의 파동이 지나온 공간으로 의식을 확장해보세요.

숲 속을 거닌다면,

피톤치드가 가득한 주변 공기로 나를 펼쳐보는 겁니다.

의식을 확장하는 연습에 익숙해진다면,

눈을 떠 석양을 바라보세요.

지평선까지의 드넓은 대지로 의식을 확장해보세요.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고 교감하며,

의식을 달과 별에 닿도록 뻗어보세요.


 뗏목을 타고 더 나아갈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상황에서는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캐릭터(Mindset)는 물론이고, 마인드 프로그램에서 판단 단계의 가치 기준, 입력 단계에서 부여한 나, 상대방 등의 의미가 모두 뗏목이다. 그 모든 뗏목을 필요에 따라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유연하게 가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경우, 권리에 대한 판단 기준에 집착하지 말자. 얻을 수 없는 권리를 내려놓음으로써 판단 기준을 바꾸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나와 상대방에 대한 정의도 유연하게 내려놓자.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경우, 당신과 나라는 개념까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과 나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고 우주의 일부임을 유념하자. 배가 고프면 뇌는 체세포의 당분을 빼앗아 섭취한다. 하지만 체세포는 뇌를 원망하지 않는다. 둘 다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분별이 없기에 원망할 필요조차도 없다. 당신의 체세포와 뇌가 별개가 아니듯, 필요에 따라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고 같은 우주임을 인식한다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다음 편 - 29. 마음으로 나를 활용하기(3부: 5가지 힘)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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