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에 닿으면 이미 컴컴해진 밤. 현관에 들어서자 딸아이가 달려 나온다.
“아빠! 달팽이가 알에서 깨어났어요. 이리 와 봐요.”
종일 비워둔 아빠의 자리를 채우려는 아이의 손이 바쁘다. 처음 아빠라고 말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호객(?) 멘트도 하루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가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걱정도 자랐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는 부모일까?’
아이는 소중하다. 아이는 부모가 지키고 키워야 할 신비한 존재다. 아이는 부모의 보조 배터리다. 컴컴해져서야 터덜터덜 집에 도착하면, 일상을 살아갈 체력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아빠, 아빠!” 부르며 달려와 안길 때면, 메마른 가슴에 청량한 샘물이 흘러든다. 아이는 색칠 놀이의 귀재다. 고단한 노동으로 허옇게 바래진 부모의 일상에 아름다운 색깔을 한 모금씩 불어넣는다. 축 처져 있을 때면 아이가 따스한 숨결을 건넨다.
“아빠 어디 아파요? 내가 호-해줄게. 호오-”
하지만 부모로서 우리의 힘은 부족하기만 하다. 체력조차 예전만 못하다. 아빠 놀이랍시고 몸을 한껏 날려보지만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체력은 바닥을 드러낸다. SOS 신호를 보낸다.
“아빠가 5분만 누웠다가 일어나면 안 될까?”
바꿀 때가 된 휴대전화처럼, 체력이란 배터리는 충전하기가 무섭게 방전 경고를 울려댄다. ‘호락호락 무너질 순 없지!’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기지를 발휘한다. 과격한 몸 놀이 대신 책 읽기로 종목을 바꾼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입은 책이 아니라 하품을 읽어댄다. 눈은 책이 아니라 시계를 향한다. ‘건전지가 닳았나? 교실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가다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눈을 끔뻑이며 시계를 본다. 하품은 전염된다는데, 아이에게는 하품의 전염력이 소용없다. 감기 면역력은 신통치 않은 듯한데, 하품 면역력은 최고다. 아이의 눈은 여전히 또랑또랑하다. 아이가 잠들 시간은 요원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은은한 조명만을 남겨 놓은 시간.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에 지력이 다하고, 쉴 틈조차 없는 육아에 체력이 다했다. 화장실의 비틀려 쥐어짜진 치약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제는 잘 수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잠든 체만 하면 된다. 툭툭 치고 눈꺼풀을 뒤집어보며 심지어 입안에 손가락을 넣기도 한다. 아빠 엄마의 생존(?)을 확인하는 아이의 심문에 반응하지 않고 잠든 체만 하면 된다. 평소에는 짧은 평온을 만끽하다 잠들지만, 오늘따라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5:0이나 4:1 정도의 승부를 예상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고려하면 1~2년 후 승부는 알 수 없다.”
2016년 3월,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을 앞둔 이세돌 9단의 말이다.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 있는 바둑에서는, 제아무리 슈퍼컴퓨터라 해도 제한된 시간에 모든 수를 계산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인간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간 걸 깨닫기까지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4:1로 이긴 쪽은 이세돌 9단이 아니라 알파고였으니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먼 미래에서나 나타날 존재라고 여긴 뛰어난 인공지능이 갑자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불청객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기만 했다.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며 만류의 영장이라 생각했다. 1등으로 독주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알파고의 승리는 인기척도 없이 치고 나와, 뒤돌아보며 짓는 섬뜩한 미소였다. 다른 아이들만큼만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더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놀라운 건 인공지능의 뛰어난 능력만이 아니다. 발전 속도 역시 경악스럽다. 알파고는 ‘버전 13’으로 유럽 챔피언 판후이 2단을 5:0으로 꺾었다. 불과 4달 만에 ‘버전 18’로 무려 다섯 번 진화했다. 이세돌 9단을 4:1로 제압했다. 수개월 뒤 ‘알파고 2.0’으로 나타나 세계 정상급 기사를 상대로 63전 전승을 거뒀다. 전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알파고 마스터’로 변신했다. 세계 1위 커제를 3:0으로 완파했다. 그리고 홀연히 떠났다. 인간은 이해할 수도 없는, 알파고끼리의 기보 50장을 선물로 남긴 채.
사람들은 인간계를 평정한 알파고 마스터가 최종 버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개월 뒤 먼 우주에서 ‘알파고 제로’의 신호가 도착했다. “vs 알파고 마스터 승률 89%!” 인간이 넘볼 수 없다는 알파고 마스터마저 압도한 것이다.
인간의 직관과 논리 지능의 한계를 겨루는 지적 최전선, 바둑.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경지를 멀리 떠났다. 바둑판에 돌을 둘 곳은 있어도, 인간이 설 곳은 사라졌다. 지능 집약적인 일자리에도 인공지능의 침공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을 앞세운 로봇과 사물 인터넷 등의 발전이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여러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먹어치운다. 지능 집약적인 직업뿐만 아니라 노동자, 중간관리자 심지어 전문직까지 모조리 대체한다. 대표적인 전문직은 의사와 변호사다. 가천 길병원을 시작으로 여러 병원에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활용한다. 인공지능 서비스 ‘e-디스커버리’는 판례 조사처럼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업무를 대신한다. 1명의 변호사가 500명의 일을 하도록 한다. 500개의 변호사 일자리 중 499개가 증발하는 것이다. 서비스업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인공지능 로봇 ‘페퍼’를 단돈 이천만 원이면 3년간 맘껏 부릴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또 다른 로봇 ‘나오’와 합쳐 7만 대 넘게 팔렸다. 7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한 것이다. 농업에서도 인공지능 로봇이 스스로 과일이 잘 익었는지를 판단해 수확한다.
일자리의 대증발이 다가온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200만 개가 생기지만, 710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불안하다.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일자리가 몇 년 후에 사라질지 모르기에 불안하다. 부모이기에 더 불안하다. 아이에게 안정된 미래를 주고 싶은데, 어떤 일자리를 가지라고 알려줄 수 없기에 더 불안하다.
불안의 이유는 해답의 부재다. 부모세대의 방정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학생 때만 인간적 삶을 포기하고 공부에 전념하면 됐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취직할 일자리가 많았다. 취직한 직장에서 충성하면 평생 고용도 보장받았다. 지금은 다르다. 입시에 욱여넣고 대학을 보내도 취업이 어렵다. 취직해도 평생 고용은 보장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에 일자리가 잠식되어 일자리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불안을 부추기는 승냥이 떼의 소리만 커지고 있다. 사교육자는 목소리를 한껏 높인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창의형 인재, 공감형 인재, 코딩형 인재 등이 되어야 한다 강조한다. 터지기 직전의 압력밥솥처럼 과부하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새로운 코스도 완주하라 강요한다. 아이가 4차 산업혁명에도 살아남으려면 홀쭉해진 주머니를 더 긁으라 한다. 사회는 급변하는데 공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바쁜 삶에 밀려, 아이 미래에의 진지한 고민이 유예되고 있었다. 남들을 따라가던 나날들 속에서 부모의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만 있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에서 아이를 살리고 싶었다. 아이가 살아남을 길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전문가의 목소리는 제각기 달랐다. 비전문가는 근거 없는 주장을 더했다.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베개를 고쳐 베도 쉬이 잠들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래서 펜을 들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부모에게 첫 번째로 필요한 책을 쓰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에도 당황하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급변하는 시대에 사교육자의 달콤 살벌한 현혹에 속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교육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그 답을 담았다. 아이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인공지능의 실체를 밝히고 교육전문가가 지향하는 미래 교육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았다. ‘인공지능’과 ‘미래 교육’이라는 두 눈으로 인공지능 위에 올라서는 미래 인재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눈앞의 성적을 올리는 임시처방이 아니다. 인생의 성공을 거두는 책이다. 눈앞의 성적을 올려 명문대 입학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과 경쟁할 미래에도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는 책이다.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부모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은 메마른 성공을 향하지 않는다. 소모적인 경쟁으로 부모도 아이도 밀어 넣지 않는다. 인간적인 삶과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책이다. 미래가 불안한 부모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길 바란다. 한 줄기 빛으로 당신이 짊어진 불안이 한 겹씩 벗겨지길. 따스한 빛으로 아이와의 시간이 한 줌 더 따뜻해지길. 미래를 준비하는 견고한 한 걸음으로 이어지길.
집필에서 출간까지, 예상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달팽이가 알을 깨고 나오듯 느리고 힘든 시간이었다. 힘든 시간 속에 차곡차곡 쌓은 한 아빠의 진심이 세상의 유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019년 3월
느지막이 알을 깨고 나온 아빠 달팽이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