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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s and Ends Jun 16. 2022

[플러피 에세이] 지느러미

인파를 거꾸로 헤엄치는 죽어가는 돌고래로소이다. 

홍대입구역 앞에서 만난 이름 모를 포메라니안이에요. 주인분께서 사진에 잘 나오라고 귀엽게 들어주셨어요.



 나는 살아있는 도시를 죽은듯이 유영하는 돌고래다. 말끔한 정장들의 파도를 가르는 한 조각 지느러미다. 아침 9시 출근길의 강남역, 밀려오는 사람들을 헤집고 반대로 걷고 있다. 사람들은 씩씩한 걸음으로 회사를 향한다. 당당한 마천루의 기세에 눌리기라도 한 듯, 나는 고개를 한껏 숙인 채 앞으로만 향한다. 멋들어진 그들의 차림과 섞이지 못 하는 나의 초췌한 행색이 너무나도 대비된다. 가방을 앞으로 매고 어깨를 움츠리며 급하게 인파를 뚫고 빠져나온다.




 이윽고 도착한 PD학원, 실내의 따듯한 기운이 오히려 숨막힌다. 강의실 맨 앞에 앉아 잠시 뒤를 돌아본다. 나만큼 지친 눈동자들이 보인다. 오랫동안 취업전선을 전전했던 사람들은 눈빛에서부터 표시가 난다. 마치 숙성 년도가 표기된 위스키처럼. 저들에게는 내가 몇 년산으로 보일까. 위스키는 시간이 갈수록 익어가지만, 우리는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다. 쉬는 시간, 펼쳐본 단어장의 alien이라는 글자가 도드라진다. Sting의 ‘English man in New York’ 이라는 곡이 떠오른다.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도 곡조가 계속 머리를 맴돈다. 강사님의 분필 소리가 기타 리프처럼, 강의 내용이 노랫말처럼 들려온다. ‘I’m an alien, I’m a ligal alien...‘ 도시의 이방인으로 사는 건, 도시의 걸음과 반대로 걸어가는 일이다.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됐던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벌써 해는 져서 어두워졌다. 회전 교차로를 돌고 있는 차들의 라이트가 마치 공전하는 행성 같다. 멀찍이 버스를 기다리는 나는 버려진 소행성이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도시의 구심력은 나에게까지 닿지를 않는다. 되려 무정한 원심력이 나를 야멸차게 밀어낸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그저 들어가려는 것 뿐인데... 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에 이마를 기댄다. 유난히 지치는 하루다. 오늘은 스터디 카페 대신 집에 가야겠다. 창문을 걸어 잠그고 핸드폰도 꺼 놓은 채, 눈꺼풀 속으로 숨으려 한다. 나의 지친 지느러미를 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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