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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s and Ends Jun 11. 2022

[플러피 에세이] To the sea

무의식의 망망대해를 향하여

친구네 강아지 콕스에요. 나이가 많은 닥스훈트인데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이 귀여워요.


 바다를 건너고 싶다. 내 조그만 섬에는 핑곗거리가 너무 많다. 적지 않은 나이, 부족한 커리어, 조금 떨어지는 학벌...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구니 번쩍번쩍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멋들어지게 꾸며놓은 나의 돛단배가 보인다. 저 가여운 배는 섬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에 단단히 매인 채, 바다를 향해 힘없이 자맥질하고 있다.



커다란 목표의 소실점에 가까워지려면 안락한 의식의 섬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화 ‘모아나’의 모아나가 그랬고, ‘싱 스트리트’의 코너가 그랬다. 폭풍우가 몰아칠 지도 모르는, 커다란 파도가 하염없이 넘실대는 무의식의 바다에 작은 배를 띄워야 한다.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한다. 나에게 방송사는 수평선 근처에 보이는 커다란 대륙이다. 아일랜드를 떠나는 코너가 그렇게 닿고 싶어하는 잉글랜드이다. 그 곳에 가고싶다.



야속하게도 섬의 관성은 너무나 강력하다. 영화 ‘변산’에서 박정민의 고향 변산처럼, 의식의 저변에 놓인 여러 가지 사유들은 익숙한 이 곳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자격지심과 두려움은 나무에 매인 돛단배를 풀어주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없는 바다로 나아갈 어떤 강력한 동기를 찾아야 한다.



만화 ‘무한동력’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네는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나?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나?” 기억 깊은 곳 어딘가에 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눈 앞에 선다. 학창시절 내내 장래희망에 줄곧 PD를 적어내던 작은 손아귀가 있다. 언젠가 죽음의 주마등을 마주할 때, 분명히 눈 앞에 아른거릴 장면임이 확실하다.



결국 나는 칼을 든다. 이윽고 돛단배에 올라타 매인 줄을 끊어낸다. 동남풍이 불어온다. 배는 기어코 바다로 나아간다. 무의식의 망망대해로 나를 밀어낸 건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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