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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s and Ends Jun 10. 2022

[플러피 에세이] 사랑이 지나가면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떠나 보내야했던 나의 음악 이야기

친구 집 앞을 산책하다가 만난 시바견이에요. 주인을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이 참 귀여웠어요.


 너무나도 사랑하면, 오히려 떠나 보내야 될 때가 있다. 첫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인생사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음악 이야기이다. 교육열이 강했던 부모님 탓에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을 내내 집 안에서 공부만 하며 보냈다. 밤이면 컴퓨터도, 티비도 없던 방 안에서 주구장창 음악만 듣곤 했다. ‘별 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 위에 앉고 싶어라(유재하 – 그대 내 품에’) 그 누구도 위로해 주지 못했던 사춘기 소년의 새벽을 달래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재하였고, 김광석이었다.




 좋은 음악은 좋은 음질로 들어야 한다며, 그 누구도 들고 다니지 않던 CD플레이어와 헤드폰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소년은 그렇게 음악과 사랑에 빠졌다. 우스꽝스러운 몰골에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아무렴 어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남들의 시선은 신경도 안 쓰이지 않던가. 사랑하다 보니 음악에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남몰래 연습장에 가사를 끄적이며, 작곡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그때가 아직도 넌 생각나니?(윤종신 – 오래전 그날)’ 고등학교 3년에, 재수 1년까지, 4년간의 짝사랑 끝에 드디어 대학에 들어가, 나는 처음으로 ‘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첫 키스의 순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으로 만든 노래의 멜로디와 노랫말은 생생하게도 기억난다. 그만큼 첫 작곡의 경험은 짜릿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고자 하는 세상의 관성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만든 것이지 않는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과의 동거를 시작했다. ‘진짜 작곡가’가 되고자 휴학을 하고 서울에 집을 얻은 것이다. 약 1년간, 음악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 함께한 순간/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이문세 – 조조할인)’ 그러나 사랑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의 결말도 아름답지 못했다.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도 있었지만 사실 음악과 더 이상 함께할 자신이 없다고 느꼈다. 너무나도 커다란 재능의 영역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자각했다. 사랑만으로 평생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렇게 음악을 보내고, 나는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왔다. 그 후 몇 년간을 음악을 듣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틀어놓은 TV나 타고 가던 버스 라디오에서 좋아하던 음악이 흘러 나오더라도 애써 외면하고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 사람 나를 보아도/나는 그대를 모릅니다/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그리고 지금, 나는 돌고 돌아 결국 PD라는 분야에 사랑에 빠져 있다. 그 사랑에 오롯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러나 모두가 첫 사랑을 잃지 못하듯, 나는 아직 음악을 잊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사랑할 때 떠나보냈던 음악. 포트폴리오를 만든답시고 기획하고 제작했던 모든 콘텐츠들도 결국 음악과 관련되어있었다. 언젠가 PD가 된다면, 내 첫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면 그 프로그램의 소재는 분명 음악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다시금 음악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내 첫 곡의 노랫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이 말을 하는데 너무나도 오래 걸렸네요(한창희 – 잘 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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