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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s and Ends Aug 29. 2023

[미디어 칼럼] 과도기에 놓인 한국의 OTT예능

'세계화'에 치중되면 '제 2의 무한도전'은 나올 수 없다

 '오징어게임', '파칭코' 등, OTT플랫폼 내에서 파죽지세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콘텐츠로 우뚝 솟아오른 한국 드라마와는 달리,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OTT플랫폼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리다. 한국 예능의 수준이 떨어져서일까? 사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다음 기사의 내용을 보자.


예능은 비교적 세계적인 흥행이 어려운 콘텐츠 분야로 여겨졌다. 영화, 드라마는 스토리 위주로 전개돼 문화가 달라도 이해도가 높지만, 예능은 문화에 따라 웃음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같은 듯 다른'...OTT업체들의 예능 콘텐츠 전략' 기사 중 발췌)


 웃음은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웃음이 나오기 힘들다. 언어나 문화에 따라 유머가 통용되는 흐름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예능 콘텐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예능이 그동안 OTT시장에 먹히지 않던 것은 유머의 수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착하지 못한 '스탠드업 코미디'


 이를테면 영어권/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시피하다. 스탠드업 코미디 특유의 '로스팅(관객이나 특정인물을 마치 '태우듯이' 강하게 비난하여 웃기는 행위)' 문화는 존댓말과 나이에 따른 상하관계가 존중되는 한국에서 자리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웃음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문화마다 매우 상이하다. 따라서 특정 국가가 아닌 세계인에게 소구되어야 하는 OTT 콘텐츠들은, 가장 보편적인 재미를 창출하는 한정적인 소재의 예능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넷플릭스 화제작 '피지컬100'


현재 한국의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OTT플랫폼에 공개하는 블록버스터급 예능들이 대부분 연애나 육체경쟁에 치중되고 있는 것은 결국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발버둥이다. 남녀상열지사는 전 세계의 보편감정이고, 육체의 경쟁은 매우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재이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예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결국 자극적이고 단순한 1차원적인 콘텐츠가 양산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물론 세계적으로 통하는 예능 콘텐츠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방송사나 제작사의 첫 번째 목표는 무조건적으로 수익 창출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어쩌면 그동안 '예능 콘텐츠'만 가능했던 중요한 역할이 더 이상은 수행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웃음은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사회 내에서 그 맥락을 동시에 이해하고 같은 웃음이 발생할 때, 그 사회 구성원들간에는 강력한 유대감이 생기게 된다.


21세기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프로그램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예로 들어보자. 이 프로그램은 방영 기간동안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한도전>의 모든 내용을 함께 공유했다. <무한도전>의 초창기는 1차원적인 몸개그로 시작했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점에서는 아주 섬세한 맥락의 유쾌함으로 대중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당시에는 <무한도전>을 보지 않는 사람조차도 출연진의 캐릭터는 알고있을 정도로, 국민적 유대감을 형성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사람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일본의 예능 감성


<무한도전>의 감성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상 이해하기 힘들다. 간혹 방영된 해외를 타겟으로 한 에피소드가 가장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 문화권 내에서만 이해되는 예능 콘텐츠는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해당 사회 구성원의 공감의 저변에서 서사를 펼치며, 유대감과 소속감을 형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특유의 감성이 담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며 손가락질 하곤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우리와 달리 자국의 예능을 맥락 내에서 이해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앞다투어 OTT플랫폼을 통해 1차원적이고 자극에 촛점을 맞춘 천편일률적인 예능을 만들어낸다면, 예능 프로그램이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모습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앞으로 우리는 온 국민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트로트 오디션만을, 자식들은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만을 시청하며 세대간의 공감대가 사라질 미래가 우려된다. 넷플릭스 1등을 하는 예능도 좋지만, 가구시청률 30%를 넘기는 예능이 다시 한번 등장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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