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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uffy moment May 19. 2021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슬픔

뜨개질을 하며 보낸 초여름이었다. 휴가 갈 때 쓸 여름 모자를 만들기 위해 일요일마다 을지로에 갔다. 늘어난 코로나 19 확진자로 여행은 취소했지만 네 번의 일요일을 지나며 챙 사이로 여름빛이 작게 조각나는 모자 하나가 생겼다. 일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시간이 쌓이는 만큼 편물도 꾸준히 늘어났다. 


제법 머리를 감싸는 모양이 갖춰지던 세 번째 일요일. 커피가 담긴 찻잔을 앞에 두고 창 밖으로 노을 진 하늘을 곁눈질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던 오후였다.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작고 귀여운 것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오래 키웠으나 이제는 떠나고 없는 포포 이야기를 했다. 말하면서도 무척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내 감정에 놀랐다. 그동안은 비슷한 질문의 낌새만 보여도 방어적으로 굳고는 했다. 울지 않고 애써할 수 있는 대답은 키우지 않는다는 현재의 상황뿐이었고 어떻게 해서 개를 키우지 않게 되었는지까지는 차마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담담하게 말하는 데까지 필요했던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일 년 반이 걸렸다. 평생 가능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해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이제는 괜찮아진 줄 알았다.


여름이 지나고 포포가 떠난 계절이 다가오면서 조금씩 내 맘 같지 않은 날들이 늘어났다.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작은 계획조차 세우기 힘들어하는 내가 있었다. 스스로를 방치한 채 가을이 지나갔다. 몇 년 전에 나는 나이 들고 아픈 강아지를 돌보는 일에 지쳐서 이런 투정을 했었다. 내가 가진 돌봄의 총량이 모두 강아지에게 가버려서 나를 돌볼 여력이 없다고. 고작 이런 삶을 살려고 그런 인색한 마음을 품었던 걸까. 이어지는 겨울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멋대로 깊어지는 어두운 마음이 꽤 오랜만이어서 손을 쓰지 못한 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작은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는 날들이었다. 내가 나의 의지와 행동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불편한 시간이 이어질수록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내가 편하게 느끼고 의욕을 보이는 일들은 무엇이었나 하는 답답함이 깊어졌다. 그래서 질문을 찾기 시작했다. 


31일 동안 31개의 질문에 대답하는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때마침 해가 바뀌어 31살이 되었으니 3과 1이 세 번씩 겹쳐지는 우연이 재밌었다. 한 달간 이어진 질문 끝에 내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차곡차곡 모인 답변을 읽으며 나라는 사람에게 꽤 우호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고, 가고 싶은 곳들의 리스트를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끝도 없이 바닥으로 쏟아지던 마음이 드디어 균형을 찾았다. 이제야 내 마음이 뭔지 알겠다고, 드디어 마음이 돌아왔다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하고 후련한 밤이었다. 자려고 누워 이불을 덮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두운 방에 누워 눈을 감고 잠드는 대신 울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자 품고 있던 강아지에 대한 슬픔이 드러났다. 의외였다. 지난여름에 드디어 울지 않고 차분하게 강아지가 떠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울지 않으려고 그동안 모든 것에 무감했던 걸까. 어쩌면 슬프지 않아야 강아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는 매일매일 덜 슬퍼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의 기운을 조금씩 지우는 일이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조차 내 안에 남은 슬픔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울지 않고 강아지가 떠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의 슬픔. 더 이상 슬프지 않기 때문이 아닌 그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가 된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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