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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Aug 09. 2018

호도협엔 러시아워가 있다. - 중국 - 호도협 트레킹




호랑이가 뛰어넘었다는 협곡인 호도협을 가기 위해 리장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 벌써 사람들이 많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쿤밍의 숙소에서 만난 인연으로 따리, 리장까지는 같이 왔지만 숙소 취향(?)이 달라 다른 곳에 묶느라 못 만났던 L양이었다. 미로 같던 리장 고성에서 (사실 며칠 지내다 보면 동선이 비슷해지긴 하지만) 우연히 한번 만나고,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면 차나 한 잔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결국 미로를 헤매느라 못 만났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리장에 오는 이유 중 하나는 호도협 트레킹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그 트레킹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걷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산을 타는 것은 예외로 두고 있기에 5000미터가 넘는 고산의 협곡을 걷는 트레킹이 내게 그리 반가운 일이 되진 않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객관적이지 못한 주관적인 순위 매김에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내 성향까지 더해져 세계 몇 대 트레킹 코스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더욱 나를 부정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참 오묘하기도 해서 그 부정적 마음의 한쪽 끝에는 세계 몇 번째라는 호칭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싹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주위의 부추김이 더해지면 어느새 그 싹은 쑥쑥 자라서 내 부정적 마음을 덮어버리게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호도협을 안 가보면 안 되지.."

"다음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저는 호도협 가려고 며칠 휴가 내서 온 거예요"


이 수많은 유혹들 앞에서 비공식 세계 몇 대에는 들어갈 마하 속도의 팔랑귀와 초 박막 새가슴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어느새 호도협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하려고 하니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말을 끄는 마부들이었다. 그들은 걷는 게 힘든 사람들에게 말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탄 미니 버스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L양은 한국인, 이스라엘 출신 청년 한 명, 그리고 나머지는 중국인들이었다. 두 명의 마부는 다년간의 노하우로 잠재 고객을 바로 분류해 내고 그들에게만 집중했다. 그 대상은 누가 봐도 우리였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에 잠재 고객을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경력이 많이 없어도 가능할 듯했다. 누가 봐도 말을 탈것 같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두 마부는 절대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뒤에서 말의 방울소리를 울리며 압박했다. 간혹 길을 잘못 들면 길을 알려주고, 쉬어가면 함께 쉬어가며 사진도 찍어주면서 손짓, 발짓으로 소심한 듯 노련하게 우리를 유혹했다.


"조금 더 가면 진짜 힘든데 나온다. 말 타구 가.."








드디어 호도협 트레킹의 백미(?), 최고의 고비 28밴드(28굽이)의 시작이다. 이제까지는 맛보기이고 준비운동 수준이었다. 마부 아저씨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니들 여기서는 안 타고 못 견딜걸?' 하고 말하는 듯했다. 우리의 목적지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리고 중간에 차마객잔(Tea Horse)이 있으니 일단은 그곳까지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실 우린 이곳에 오기 전에 따리의 창산 트레킹을 함께 한 전력이 있었다. 그곳에서 각자의 걸음의 속도를 파악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각자의 속도에 맞게 걷다가 차마객잔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너무 겁을 먹었었던 건지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아! 세상에 이런 풍경을 앞마당에 두고 있는 곳이 있다니.. 찾아오기 힘들어서 그렇지 교통만 좋으면 땅값을 무한정 불러도 좋을 만치 멋진 곳이었다. 물론 겨울엔 좀 많이 추울 것 같긴 했지만.. 냉장고에 든 (이 곳에 냉장고가 있는 것도 신기한) 시원한 콜라를 원샷하고 L양을 기다린다. 음악을 들으며 5600미터의 만년설이 쌓인 옥룡설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선들이 왜 그렇게 산에만 살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내가 비밀을 알게 되는 걸 두려워한 그들이 면담을 요청해 왔다. 그렇게 나는 신선을 만나러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신선세계와 인간 세계는 아마도 시간의 개념이 다른 것 같았다. 잠깐 인사만 하고 온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그런데 L양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걸음이 느려도 지금쯤은 도착하고 남을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그녀를 찾아야 하나? 아니면 그녀가 나를 못 보고 여기를 지나쳐 간 건 아닐까? 밑에서 본 지도에는 이곳에서 오늘 최종 목적지인 중도객잔까지 2시간이 걸린다고 쓰여있었다.  만약 중도객잔까지 갔다가 그곳에 없어서 다시 돌아와야 하면 왕복 4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날이 어두워질 것이고 그렇다면 이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다시 산을 내려갔다가 없으면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이것도 동일한 문제에 부딪힌다. 앞으로 갈 것인지, 뒤로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갑자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떠올랐다. 그리고 제발 그 동화처럼 거북이가 먼저 지나쳐 갔기를 바랐다. 나는 차마객잔을 나와 그 좁은 산길을 나는 듯이(?) 달렸다. 아마 이 협곡을 호도협이라 불리게 만들었던 호랑이가 내 모습을 보았다면 '형님' 하며 쫓아오지 않았을까?



얼마를 달렸을까?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좁은 협곡의, 이 좁은 산길에서 하필 퇴근시간의 러시아워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왕복 1차선의 이 좁은 길은 온통 퇴근하는 염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어느 누구도 호도협의 이 교통체증에 대해서는 귀띔해 주지 않았으니 나는 마치 서울 처음 올라온 촌놈이 호기롭게 퇴근시간에 올림픽대로 진입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염소들의 뒤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급해서 따라가고 있는데 염소를 몰던 아저씨가 내 맘을 읽었는지 갑자기 무어라고 한마디를 외쳤다. 그러자 기적처럼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염소들이 그 위험한 호도협의 갓길(?) 피하며 길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저 아저씨 되게 급한가봐?' 하며 바라보는 듯한 염소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다시 달렸다.



 







 


그렇게 호랑이도 놀랄 만큼 빠르게 중도객잔에 도착했다. 숙소의 일하는 사람에게 혹시 한국사람 왔냐고 물었다. 그는 저쪽으로 올라가 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그곳에 가보니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그녀가 앉아 있었다.


갑자기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가 있어 다행이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달리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을 멋진 풍경이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세상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화장실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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