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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Oct 22. 2019

긴급조치 20호 - 베트남 - 하노이

"따르르릉..... 따르르릉...."

베트남주재 한국 대사관의 김조체 영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어 침대 옆 스탠드의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정확히 여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 주말도 편히 늦잠 자기는 글렀군.' 하는 심정으로 스마트폰의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김영사님이시죠? 여기 하노이 경찰서입니다. 한국 사람이 연행되어 왔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왜 잡혀 왔는지 계속 항의 중입니다. 경찰서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도 그 항목 위반이겠죠?"

"네 맞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출발하겠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 김영사의 머릿속에 지난 3개월이 일들이 빨리 돌려보는 비디오 테이프처럼 흘러갔다.


베트남 정부에서는 그동안 수없이 재기되던 민원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3개월 전 긴급조치 20호를 발표하였다. 긴급조치 20호로 인해 베트남 경찰과 법원은 수없이 쌓여가던 사건들이 획기적으로 줄어 다른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해 3000만 명 이상 방문하는 관광대국인 베트남이 간과한 게 있었다.


관광객들은 그들의 긴급조치를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위반했을 경우 해결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긴급조치 덕분에 베트남 주재 각국 대사관들은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국 관광객들로 인해 경찰서를 드나들어야 했다. 한국 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하노이에 근무하는 김영사는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대사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개최했고 관광객에게 예외를 적용해 달라는 호소문을 작성했다. 물론 아직 그 호소문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큰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끝마치고 특별 휴가를 받은 정법준씨는 휴가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동안 고생 한 몸에 휴식을 주는 휴양지로 갈까? 아니야 그래도 여행인데 제대로 여기저기 봐야겠지?'


결국 그의 정복욕이 휴식욕을 이기고 장소는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곳을 방문해 볼 수 있는 베트남으로 정했다. 늦은 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 첫날은 그저 외국에 왔다는 기분만 느끼고 그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없었던 정법준씨는 새벽 다섯 시 눈이 떠지자마자 호텔을 나서서 무작정 걸었다. 골목들을 여기저기 헤매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가는 걸 목격하고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의 목적지가 드러났다. 하노이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호안끼엠 호수였다.


이미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무척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배드민턴 치는 사람, 족구 비슷한 발재기를 차는 사람, 호수 주위를 걷는 사람, 아침 체조를 하는 사람 등. 그중에 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베트남도 중국과 비슷하게 공공장소에서 주위 아랑곳없이 각자의 몸풀기(?)에 충실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다른 점이라면 중국은 태극권 같은 동작이 대부분이었다면 이곳 베트남은 그냥 일반적인 맨손체조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 체조의 동작이 참 묘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맨손체조라 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신기한, 특이한 동작들이었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길거리에서 남성들의 상의 탈의는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아침체조에선 보기 힘들었는데 베트남은 아주 흔한 광경이었다.


간단하게 분위기를 파악한 정법준씨는 여기서 그의 여행 미션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미션이란 어디를 가든 여행지에서 잠깐 동안 현지인처럼 지내보는 것이었다. 현지 친구를 사귀든, 현지인의 집에서 지내든 관찰자가 아닌 생활자가 되어보는 게 그의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베트남에서는 그들이 많이 하는 아침 체조를 마치 현지인 인양 자연스럽게 해 보기로 했다.


일단 주위를 살펴보고 유일하게 입고 있는 상의인 반팔티를 벗었다. 수영장이나 바닷가가 아닌 공공장소에서의 탈의가 어색한 그는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사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게 불안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잘 행하지 않던 공공장소에서 상의를 탈의하게 되자 불안한 마음이 좀 더 커져서 일단은 상황을 좀 지켜보고자 가만히 있어 보았다. 귀에 무전기 이어폰을 착용한 경찰들은 물론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자 그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팔을 들어 잠시 동안 스트레칭을 한 후 어떤 운동을 할까 하는 고민 하는데 앞의 벤치에서 그처럼 웃통을 벗은 아저씨가 벤치를 기구 삼아 하는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의 등 뒤 쪽에 있던 그는 재미있어 보이는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두 번 정도 그 동작을 반복하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다른 사람의 동작을 구경하는데 본능적으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만히 서 있던 경찰관 중 두 명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노이 경찰서 소속 응웬 꾸앙 바 경위는 긴급조치 20호 종합 상황실에서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올라오는 로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긴급조치 20호는 준비기간만 2년이 걸린 대 프로젝트였다. 처음 1년은 법안을 마련하는 기간이었고 나머지 1년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간이었다. 베트남 경찰청 전산팀 소속이었던 꾸앙 바 경위는 2000억동(약100억원)이 소요되는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이라는 중책을 맡아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느라 원형탈모가 왔고 아직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각국의 선진 시스템 특히 미국의 개인행동 감시 시스템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고 카지노의 CCTV 시스템까지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지금의 시스템이 완성되었지만 긴급조치 발표 후 시스템 안정화를 위해 꾸앙 바 경위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베트남 국민들도 위반에 검거되면 항의하는 일이 많았는데 시스템에 기록된 정확한 화면을 보여주자 위반 발생률이 낮아져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건 정도만 검거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이었다.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베트남이기에 더욱 심각했다.


오늘 새벽만 해도 벌써 3명의 외국인이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어 호엔끼엠 파출소에서 하노이 경찰서로 이송되어 왔고 방금 또 한 번의 경고 알람이 울렸다. 경고 화면을 보니 한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의를 벗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상황 같지만 체온 변화, 심장박동 변화, 동공의 변화등을 감지한 시스템이 내는 경고는 정확할 확률이 95%이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주위의 순찰관 두 명에게 대기 명령을 내렸고 아니나 다를까 그 외국인은 결국 체조 특허 240932번을 위반했다. 체포 알람을 받은 순찰관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가기 시작했다.



* 긴급조치 20호 : 체조를 너무 좋아하는 베트남 국민들이 자신이 만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독특한 동작에 특허를 등록하여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무단 사용 시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

무단 사용 여부는 특별히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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