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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Sep 02. 2019

쿤밍의 카프카, 여행의 미스터리 - 중국 - 쿤밍



밤새 야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숙소에서 가위에 눌리고 난 후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안에서 18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쿤밍의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숙소에는 한글 책들이 제법 있었고 그중에서 내 눈에 하루키의 책들이 들어왔다. 하루키의 수필집 한 권을 읽고 그다음 집어 든 책이 '해변의 카프카'였다. 어느 정도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자꾸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건 내가 이곳에서 겪은 일과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자꾸 소설과 뒤섞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숙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고 첫날 나는 10인실의 도미토리를 혼자서 사용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그리고 외국에서는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아무래도 10인실의 커다란 빈 공간이 주는 암흑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날 내가 가위에 눌리며 본 것의 정확한 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아서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다. 온 정신과 몸의 신경을 집중시켜 간신히 몸을 움직이게 된 나는 방의 불을 켜고서 한참 후에야 다시 침대에 누었지만 어스름 동이 틀 무렵까진 다시 잠이 들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유령을 본다.

 

'유령'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유령이란 살아 있는 실체는 아니다. 이 현실 세계의 존재일 수도 없다. 한번 보기만 하면 그건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어떤 기척에 문득 잠에서 깨어, 그 소녀의 모습을 본다. 한밤중인데도 방 안은 이상할 정도로 밝다.

창에서 달빛이 비쳐 들고 있는 것이다. 자기 전에 커튼을 닫아두었을 텐데, 지금은 활짝 열려 있다. 그녀는 달빛 속에 윤곽이 뚜렷한 실루엣이 되어, 백골과  같은 특이한 흰 빛으로 물들어 있다.

 

......

 

나는 잠들 수가 없다. 다시 커튼을 쳐서 방 안을 어둡게 하고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를 않는다. 그 수수께끼의 소녀에게, 내가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강하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무엇보다도 맨 처음에 느낀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다른, 강렬한 힘을 지닌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에 생겨나서,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착실하게 커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늑골의 우리 속에 갇힌 뜨거운 심장이,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수축되고 확대된다. 확대되고 수축된다.

 

다시 불을 켜고 침대에 일어나 앉은 채 아침을 맞는다. 책을 읽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다만 거기 일어나 앉아서 아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늘이 희끄무레해지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잠자는 동안에 나는 운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베개는 차갑게 젖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 때문에 흘린 눈물인지 나는 모른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

 




 

다음날 숙소에 몇 명의 여행객들이 찾아왔고 저녁에는 간단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화제는 음식 이야기로 옮겨 갔고, 한분이 한때 건강을 잃었다가 잉어인지 붕어인지 어떤 물고기를 먹고 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화제는 더 세분화되어서 음식 중에서도 물고기 쪽으로 옮겨졌다.

 

그러던 중 한 분이 어릴 적 비 오는 날이면 미꾸라지가 지붕 위에서 떨어지는 걸 봤다고 했다. 다른 한분도 맞장구를 치며 가물치라는 물고기도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다른 두 분이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그게 말이나 되냐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며 물고기가 나무 위로 올라가느냐에 대해 재밌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하늘에서 물고기가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정어리와 전갱이가 2천여 마리, 나카노 구의 상점가에...

 

29일 오후 6시경, 나카노 구 노가타 0가에 약 2천 마리의 정어리와 전갱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근처의 상점가에서 쇼핑을 하던 주부 두 명이, 떨어진 생선에 맞아 얼굴 등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그 밖에 피해는 없었다. 당시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으며, 구름도 거의 없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고 한다. 떨어진 물고기는 대부분 그대로 살아 있어서 노상에서 펄떡거렸으며.....

 

나카타 상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러고 나서 천천히 우산을 펼치고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러고는 주의 깊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사나이들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패거리들은 웃었다.

 

"이 아저씨, 아주 맛이 갔군" 하고 한 녀석이 말했다. "진짜 우산을 쓰고 있잖아." 그러나 그들의 웃음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미끈미끈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

"거머리다!" 하고 누군가가 외쳤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

 

 

전혀 다르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타지에서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 소재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물고기가 지붕이나 나무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확률은 아주 낮을 것 같다. 그리고 허구라고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 또한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내 앞에서 펼쳐졌다.

 

 

숙소에 있던 여자 여행객 한분이 공원을 구경 갔다가 오더니 '여기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데리고 산책을 많이 나오나 봐요. 개도 아니고..'라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한 여행객이 '그러게요 이곳 사람들은 고양이도 많이 키우더라고요 물론 개도 많이 키우지만..'

 

 

사나이는 벙글벙글 웃으면서 고양이를 보고 있다. 고양이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체험한 듯이 말했다.

 

"흥, 당신은.... 제법 우리 고양이 말을 잘하네."

"아, 예" 하고 노인은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 경의를 표하는 몸짓으로 후줄근하게 낡아버린 등산모를 벗었다.

"언제든지 아무 고양이 상하고나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잘 돌아가면 그럭저럭 이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흐-음" 하고 고양이는 간결하게 감상을 말했다.

........

"고양이 찾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고 오쓰카 상이 물었다.

"네.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고양이 상을 찾는 일입니다. 나카타는 이렇게 고양이 상과 이야기를 조금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아 없어진 고양이 상의 행방을 잘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

 




 

고양이를 많이 키우면 분명 잃어버리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그것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분명 그 고양이를 찾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 미스터리한 상황의 하이라이트는 다음날 저녁에 발생했다.

 

 

다음날 가까운 곳으로 투어를 다녀오신 세분의 동창생분들이 오리 고기와 술을 사 오셨고 다시 가벼운 술자리가 벌어졌다. 또 여행 이야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사 오신 중국술이 바닥나자 한분이 방에 들어가서 술 한 병을 꺼내 오셨다.

 

'조니 워커'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은 검은 실크해트를 쓴 키가 큰 남자였다. 가죽 회전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다. 옷자락이 길고 몸에 착 달라붙는 새빨간 상의에 검은 조끼를 받쳐 입고, 긴 장화를 신고 있다. 바지는 눈처럼 새하얗고 아주 착 달라붙어 있어 마치 내복같이 보인다. 그는 한 손을 모자챙에 대고 있었다. 꼭 숙녀에게 인사를 할 때처럼, 왼손에는 둥근 금장식이 달린 검은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모자 형태로 보아 아무래도 그가 가와무라 상이 이야기하던 '고양이 잡는 남자' 같았다.

........

"내 이름은 알고 있겠지?"

"아뇨, 모릅니다" 하고 나카타 상이 말했다.

남자는 약간 실망한 것 같았다.

"모른다고?"

"네,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나카타는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이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단 말이지?"라고 말하고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옆을 향해 다리를 구부리고 걷는 시늉을 했다.

"이래도 모르겠나?"

"네, 죄송합니다. 역시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 자넨 위스키를 안 마시는가 보군?" 하고 남자는 말했다.

.........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텐데, 하여간 좋아. 내 이름은 조니 워커야. 조니워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알고 있지. 내 자랑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

 

 

'조니 워커'는 유명한 술이긴 하지만 하필 그때 그 상황에서 꺼내온 술이 '조니 워커'였다.

 

나는 그 술병을 바라보며 이상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내가 며칠 꼼짝을 안 하고 책을 보고 있으니, 이 숙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 '저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이 '해변의 카프카'니까 우리 한번 골려 줄까?'라고 의기투합하여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었다.

 

아니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중에 하나인데 내가 너무 민감해져 있는 것일까?

 

다음날 나는 책을 다 읽자마자 얼른 짐을 챙겨 그 숙소를 떠났다. 아무래도 이상한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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