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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Aug 17. 2018

지상 최대의 미로 - 모로코 - 페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매체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존심을 자극받는다. 물론 학교, 직장, 결혼, 집, 자동차와 같이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거쳐가는 일반적인 것들도 있지만, 세대와 환경을 벗어나 유독 '이것만은 절대' 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후자의 것들 중 내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 중 하나는 '길 찾기'이다. 동 세대에 보편적으로 소유하는 것보다 좋은 집, 좋은 차는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취향이라고 슬쩍 치부하며 크게 미련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딘가에 가서 남들보다 길을 못 찾거나 (특히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보고도), 특히 한번 이상 갔던 곳에서 헤매고 있는 일은 정말 내 자존심을 최고로 자극하는 일이 된다. 물론 예전만큼 총명(?) 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런 내 자존심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모로코, 그중에서도 페스라는 도시이다. 모로코에는 도시마다 '메디나'라 불리는 옛 시가지가 존재한다. 그곳은 좁디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외부 사람이 들어가면 백 프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게 되어 있는 곳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요즘에도 스마트폰 지도 앱이 무용지물이 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페스의 메니다는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꼬여 있다. 페스의 메디나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좁은 미로의 한 복판에 '무두장'이라 불리는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가죽 염색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들을 걷다 보면 정말 이런 곳에 무두장이 존재할까 하고 의문을 품다가, 그 실체를 맞이하는 순간 '이곳에 정말 이런 광경이?' 하고 놀랄 수밖에 없는 그 염색 공장 덕에 페스의 미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고 도전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곳을 혼자 찾아가 보는 것이 이번 모로코 여행의 큰 미션 중 하나이다.


 







 사실 길도 좁고 더럽고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그 길을 스트레스받으며 굳이 혼자서 가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면 가이드를 고용할 수 있고 (대부분은 그렇게 찾아간다.), 설령 혼자서 간다고 하더라도 백 퍼센트 현지인들이 길을 알려 준다며 접근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발생할 상황이 혼자서 찾다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충격이 클 것을 알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처음에는 분명 친절히 길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적은 금액을 제시할 것이다. 목적지 근처에 오게 되면 말을 바꿀 것이고, 갖은 이유를 대며 처음 제시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마치 맡겨 놓은 듯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그곳이 내 기억에 좋은 추억으로 남느냐 아니냐를 좌우하는 요소 중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이다. 아무리 적은 돈이어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나 말을 바꾸는 식으로 사기 치는 현지인들과 만나게 되면, 제아무리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곳은 최악의 여행지로 남겨진다. 그래서 나는 진짜 자연스러운 만남이나 접촉이 아니면 웬만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소지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이곳은 외부 사람은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문을 들어가면 미로에 빠지게 된다.




이 거대(?)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위해 나름 작전을 세웠다. 처음부터 바로 무두장을 찾지 않았다. 일단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메디나의 입구에 가까이 있는 모스크와 몇 개의 관광 포인트를 찾아갔다. 가이드북과 구글맵을 보고 대략의 위치를 파악하고, 간간이 나오는 이정표를 조합하니 생각보다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훌륭한 작전은 아니었다.

처음 몇 곳을 찾으며 특징들을 기억했던 이 골목, 저 골목의 특징들이 금세 뒤엉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반적인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복잡한 좁은 골목의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몇 군데의 포인트를 찾으면서 얻게 된 자신감은 정작 무두장을 찾으려고 하자 헛갈리기 시작했다. 두어 골목 들어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서넛 골목 들어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 까지는 괜찮았지만 그것들이 여러 번 겹치고 좀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서 이제 나가는 길까지 못 찾게 되었다. 그때쯤부터 신기하게 불청객들이 '어디 가느냐?' '무두장 찾냐?' 하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분명 내 눈빛이 흔들리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걸 그들의 촉으로 파악했을 것이다.)


 








그들의 수법은 대부분 동일하다. 처음에는 무척 쿨한 척한다. 그냥 지나가다 길을 못 찾고 있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려 했다는 식이다. 괜찮다고 하면 금방 돌아선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그들은 나를 앞질러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의 다른 골목 앞이나 가게 앞에서 몸을 살짝 숨기고 기다리고 있다. 여기 와서 헤매는 사람들은 무두장을 찾는 것이고 혼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분명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그들을 거절한 후 관심 없는 듯 무심한 척, 관심 없는 척 다른 길로 슬쩍 들어서거나 바로 앞의 가게로 들어간다. 거기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좀 보내고 사장님의 인상을 보고 무두장 가는 길도 묻는다. 물론 대화가 될 확률은 희박하다. 손짓 발짓해도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것은 아직 내 목적지와 멀다는 뜻이다. 소득은 별로 없지만 귀찮은 호객꾼을 따돌리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위의 프로세스를 두어 번 거치고 몇 번 길을 되돌아 가고 '아,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가야 하나?' 하는 유혹을 몇 번 넘기니 드디어 구글맵이 내 위치가 무두장 근처임을 알려준다. 이제는 달라붙는 사람도 없다. 목적지 근처라는 촉이 온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무두장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다. 분명 맵의 빨간 점은 그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데... 







 

이 정도 근처면 가게들도 분명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말이 안 통해도 이 정도면 손짓 발짓은 통할 것 같았다. 가까이 있는 카펫 상점에 들어갔다. 다행히 무척 젊은 사람이 있었고 영어까지 유창했다. 속으로 '제대로 찾아왔군' 하며 무두장 가는 길을 물었다.


'무두장 가려고 하는데 혹시 길 알아요?'

'무두장. 여기서 가까운데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되는데, 그래도 찾기 힘들 거야. 내 친구가 거기 가는 길 잘 아는데 불러줄게.

돈 조금만 주면 돼.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금방 불러올게'

'어... 어... 그래'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다. 그의 빠른 영어에 당황하기도 했고 가깝다는 말에 순간 안심했다. 그 정도의 수고로 얼마나 큰 사기를 치겠어하는 마음과 함께.. 금방 오겠다는 주인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은근 마음이 불안해지며 가게 앞으로 나갔다. 그때 바로 앞의 가게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뛰어나오며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저 사람 믿지 마, 저 사람도 사기 치는 거야'


그때 문득 너무 방심했다는 게 떠올랐다. 뒤통수는 방심할 때 맞는 건데. 믿었을 때 맞는 뒤통수가 더 아픈 법인데. 내게 경고를 해 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개하여준다거나 본인이 알려준다고 했다면 그도 의심했을 텐데, 그는 경고만 해주고 그 뒤 프로세스를 진행하지 않았다. 아마도 두 가게가 앙숙인 듯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 가게 앞을 떠났다. 가게를 벗어나자 아이들 몇 명이 바로 달려들며 말을 건다. 분명 이 근처인 게 확신이 든다.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으며 처음 가게 주인이 빠르게 설명하던 기억을 더듬어 골목을 돌아서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역겨운 가죽 냄새가 확 하고 풍겨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찾았구나'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골목에 숨어 있으니 대문 앞에서 길을 물은 격이었다.











드디어 무두장 표시도 있다. 표시를 따라갔다. 그곳은 일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였다. 괜히 들어갔다 쫓겨 나올까 봐 지레 겁먹고 다시 나왔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서 보면 대부분 위에서 바라본 사진이 있었다. 그러데 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골목은 좁고 담은 높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길을 되돌아오니 아주 좁은 문들이 계속 있고 그 앞에 덩치 큰 아저씨들이 앉아 있다. 분명 저기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동전이 있다. 나에게 무관심한 한 아저씨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동전을 쥐여주었다. '이게 무슨?' 하고 쳐다보는 아저씨에게 들어가도 되냐는 손짓을 하자 들어가라고 했다. 그곳을 바로 계단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래 맞는 것 같다. 올라가야 위에서 바라보니까' 그런데 올라가며 생각해보니 돈을 안 줘도 되는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찾았다는 안도감과 아저씨의 덩치에 지레 겁먹고 조공을 바친 격이었다. 물론 동전이라 큰돈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것들은 다 금방 잊혀 버렸다. 계단을 올라 가죽 샵을 지나 마주한 광경은 오늘 겪은 모든 수고와 비용을 잊고도 남을 만큼 멋진 광경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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