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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Nov 16. 2016

자발적 터미널 난민

바야흐로 진정한 빅데이터의 시대다. 대부분의 신 기술이나 신개념은 일반인들에게 남의 이야기였다. 너무 앞서가서 그들만의 리그이거나 일반인들은 자신이 받는 혜택이 그 덕분인지 잘 모르게 적용되었다. 빅데이터란 단어가 IT에서 언급될 때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내비게이션을 켜서 안 막히는 빠른 경로를 찾고, 버스가 몇 분 후에 정류장에 도착하는지 알고, 웹사이트에 뜨는 광고가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유혹하고, 지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의 가수와 제목을 바로 알아낸다. 이런 편리한 세상이 오기 전인 불과 몇 년 전이 상상이 안 간다.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불편해서 못 산다.


여행도 쉬워졌다. 처음 가보는 곳의 맛 집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숙소도 금액을 비교하고 사람들의 평을 보고 선택할 수 있다. 빅데이터의 은혜는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항공권 구매에도 내려졌다. 각 항공사 가격을 비교 검색해서 최저가를 찾는 건 기본이다. 이젠 심지어 출발지만 선택하고 도착지를 정하지 않아도 어디로 가는 비행기가 가장 저렴한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만세!!

항공권 가격은 정말 요지경이다. 아무리 연구해도 규칙을 찾을 수 없다. 어느 정도 일반적인 가격 형성의 법칙을 따르긴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기능이 정말 반갑다. 그 덕분에 믿기지 않게 저렴한 비행기 표를 샀고 '어디로 갈까?' 하는 고민까지 해결됐다. 저렴한 비행기가 가는 곳이 내 목적지다. 요즘 흔한 저가항공도 아니다. 심지어 외국 국적기다.

다만 경유지를 거쳐야 하고 올 때는 바로 연결이 되는데 갈 때의 경유 시간이 좀 길다. 오후 늦게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 출발이다. 경유지에서 저녁을 보내야 한다. 처음 가보는 곳이면 어떻게든 나가서 밤 시간이라도 보내려고 했을 텐데 가본 곳이어서 이젠 귀찮다.


나가는 교통 편, 숙소,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오는 교통 편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공항에서 날밤을 세우기에는 몸이 반항한다. 마침 찾아보니 공항 안에 호텔이 있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내가 여행하는 내내 묵을 숙소 보다 비싸지만 비행기 표를 너무 저렴하게 샀기 때문에 호텔비를 합친다 해도 어디 항공권보다 싸다. 하루 동안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처럼 공항 난민이 되어보기로 했다.

공항은 넓었고 약간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평상시라면 투덜댔을 텐데 공항 난민에게는 아주 적격이었다. 밤으로 향해가는 공항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나는 예외였다. 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기에 최대한 느리고 꼼꼼하게 걸었다. 호텔을 찾아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동네 마실 나오듯 가벼운 옷차림으로 터미널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고 했다. 호텔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방이 없단다.

'나 예약했다고요'
'네 지금은 방이 없다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방이 없는데 이따가 자정쯤 되면 방이 나올 거라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서 이곳까지 오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얼른 씻고 저녁 먹으려던 계획이 어긋나버려 짜증이 밀려왔지만 외국 나오면 과묵해지는 성격 탓에 작게 따져보려고 했는데 리셉션 직원의 설명을 듣고는 욱했던 마음이 쑥 내려가 버렸다. 이곳 공항 호텔은 예약을 하면 6시간만 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체크인을 한다고 해도 6시간 자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자정에 오는 게 낫다는 것이다. 물론 6시간 보다 더 자려면 추가 금액을 내야 하고 그 금액은 한 시간마다 추가된다는 것이다. 이 무슨 택시도 아니고 기본요금에 할증이 붙다니.. 여행을 많이 다녔어도 공항 호텔에서는 자본적이 없으니 난생처음 보는 시스템이었다.

갑자기 공항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자정까지 어떻게 버텨야 할까?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음악도 듣고 노트북 꺼내 일도 좀 하고 웹서핑도 많이 하고 나니 그럭저럭 힘들게 시간은 지나갔다. 구면이라고 리셉션의 직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내 비행기 출발시간은 9시, 12시에 체크인하면 6시에 체크아웃,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1시간을 추가했다.(왠지 비행기 타고 먼 나라의 선불 PC방을 온것 같았다.) 모닝 콜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핸드폰 알람을 이용할거라서 괜찮다고 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왠지 살짝 웃고 있다고 느껴진다. 내가 잘못봤겠지 하고 생각했다.

공항 안의 호텔은 위치가 주는 특수성 때문인지 왠지 더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바닥과 벽, 천장이 모두 새하얀 호텔의 복도는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듯 길었고 일정 간격으로 방문도 끝도 없이 있었다. 그 복도를 걸으며 이,착륙 하는 비행기를 보며 잠들 생각에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참을 걸어 내 방을 찾아 문을 열었다. 정말 딱 있을 것만 오밀 조밀하게 들어있는 작은 방이었다. 정면으로 짙은색 두툼한 커텐이 쳐 있었고 그 밑으로 침대가 있었다. 캐리어를 한쪽으로 던져 놓고 커텐을 잡았다. 커다란 창 밖으로 비행기들이 하늘에 불빛을 남기고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커텐을 젖혔다. 헉! 이건 뭐지? 내 눈을 의심했다. 손으로 만져보고 내 눈은 정상임을 확인했다. 커텐 뒤에는 그냥 바로 벽이었다. 이 방은 아예 창문이 없는 방이었다.

'이것들이 왜 커텐은 달아 놓은거야?'

창이 없으니 잠은 푹 잘 수 있겠구나 하는 급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샤워후 잠자리에 들었다. 꿈속에서 커다란 창밖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세고 있을때 갑자기 쿵쿵쿵 문드리는 소리가 먼 발치에서 들렸다. 환청인가 생각하는 사이 또 다시 쿵쿵쿵 소리가 들린다. 이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뭐지?' 핸드폰 알람이 안 울린걸 봐서는 아직 일어날 시간은 아닌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쿵쿵쿵 소리와 외치는 소리는 점점더 늘어났고 불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 소리는 체크 아웃 시간 지났는데 안나오는 사람들 깨우는 소리였다. 숙박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자의든 타의든 안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직원들이 새벽부터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모닝콜을 묻던 직원의 살짝 미소짔던 얼굴이 떠올랐고 그 의미가 해석이 되었다.

'모닝콜 필요 없을꺼야, 새벽이면 난리들이 날테니까'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꿋꿋이 내 시간을 채우고 다시 하얗고 긴 복도를 지나 터미널로 돌아왔다. 라운지에서 뜨끈한 국물을 앞에 놓고 비몽사몽간에 창밖을 보았다. 해가 떴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흐리고 음산한 새벽 공항에 빨간색 셔틀 트레인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본 순간,  '내가 지금 누구고 어디에 있는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같은 창 밖 모습을 보며 어제 잔 호텔이 혹시 나를 이상한 미래로 데려다 놓은 건 아닐까 하는 시,공간의 혼란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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