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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May 20. 2017

극장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2017년 칸 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이슈로 떠올랐다. '옥자'를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는 '영화(?)'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그 배경에는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의 비디오와 DVD 대여점을 망하게(?) 한 유명한 기업이다. 실물을 대여하지 않고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트리밍 방식으로 영화, 드라마 등을 서비스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가 '옥자'에 투자를 하면서 이것이 극장용 영화냐 아니냐에 대한 이슈가 된 것이다. 어찌 됐든 '옥자'는 칸에 진출했고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극장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극장과 스트리밍은 공존할 것이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지금의 시대는 너무 빨리 변하고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이미 예전의 동네 극장들은 사라지고 모두 멀티플렉스로 바뀌었는데... 다만 정말 그의 말대로 극장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머리가 여물어(?) 가던 학창시절 나의 가장 큰 유희 장소는 극장이었다. 특히 그 시절 유행했던 동시 상영 극장은 혼자 놀기에 최고의 놀이동산이었다. 그 덕분에 수많은 영화를 보았고 어떤 장르건, 어떤 배우가 나오든 모든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튼 영화가 좋아서든, 그때의 쾌쾌하고 야릇한(?) 분위기가 좋아서든 여전히 극장은 설레는 장소이다. 그 버릇은 남을 주지 못해서 여행을 다니면서도 기회가 되면 여행지에서 극장을 찾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든 그 나라 제작 영화든, 영화를 이해하든 못하든, 대사를 알아듣든 못하든 그 나라만의 극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특히 시간이 맞아 선택한 그 나라 제작의 영화에서 내가 여행한 곳들이 배경으로 나올 때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호주 - 케언즈


케언즈는 호주 동부 해안의 북쪽에 있는 최대의 관광도시이다. 이 도시는 세계 최대의 산호군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여행의 전초 기지로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수많은 사람들이 오는 도시이다. 모두들 바다로 나간 한낮의 케언즈는 완전 시골 마을이다. 그곳에서 며칠을 어슬렁거리다 극장을 발견했다. 한낮의 마을만큼이나 한적한 극장. 그곳에서 '맘마미아'를 보았다. 마치 케언즈의 바다처럼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된 뮤지컬을 재밌게 보고 극장을 나서던 그때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극장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들도 영화처럼 열정적인 젊음을 살았겠지?




볼리비아 - 라파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수도(엄밀히 말하면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사법 수도는 수크레)인 라파즈는 여행 다니면서 숨쉬기 힘들었던 몇 안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 중 걷는 걸 즐기는데 이곳은 도시 자체가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결국에는 계획을 벗어나 택시를 타야 했던 곳이다. 그리고는 자꾸 본능적으로 밑으로 밑으로 걷다가 우연히 극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작정 들어갔다.

영화는 짐 캐리 주연의 '예스맨(Yes Man)' 스페인어로 'Si Senor'. 영화 정보도 없었고 짐 캐리 얼굴 보고 선택한 영화였다. 극 중에 짐 캐리가 한국어 학원에 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하는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때는 한창 여행을 길게 하던 시기여서 한국말이 낯설어서 였는지 스페인어를 계속 들어서 귀가 마비되었는지 나중에 다시 볼 때는 한국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때 처음 스페인어권 사람이 많아서 스페인어 더빙판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해리 포터 예고편이 상영되었는데 그것도 스페인어 더빙이었다.)




쿠바 - 하바나


다시 가고 싶은 최고의 여행지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서는 정말 열심히 걸었다. 아침 먹고 나가서 하루 종일 걷다가 저녁에 들어오곤 했다. 지금은 미국과 국교가 정상화되어서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지만 그때만 해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던 곳. 쿠바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화폐 기준이 다르다. 외국인의 관광비용에 의존하기 위해서인데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24배의 비용을 지불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외국인도 내국인 화폐로 환전하여 내국인들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꼭 24배를 지불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외국인을 실감해야 했던 곳이 극장이다. 영화비가 '1'이 쓰여있었는데 내국인에게는 그들의 화폐 1을 받았고 나에게는 외국인 화폐 1을 받았다. 내국인 화폐가 있어서 내려고 하니 안된다고 했다. ㅠ 아무튼 14배를 비싸게 치르고 들어간 극장은 무척 컸는데 예전 어릴 적 작은 동네의 복지관(? 뇐네 인증)처럼 생겼다. 영화 전용이 아니고 다른 공연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특이하게 사진을 못 찍게 했다. 영화는 쿠바의 영화였고 전형적인 3,4각 관계의 치정 액션(?) 영화였다. 알아듣진 못해도 다 알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매일 들렀던 하바나의 말레콘 해변이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태국 -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과거와 현재가 잘 공존하는 도시여서 대부분의 시간은 과거에서 보내다 가끔 현재로 마실 나오곤 했다. 현대식 커다란 쇼핑몰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시간을 보내다 극장이 있는 걸 알았다. 현대식 키오스크 매표소에서 꼬부랑글씨들과 한참을 씨름하다 고른 영화는 오랜만에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나오는 영화 '오토마타'. 안 그래도 잘 못 알아 들어서 걱정했는데 대사가 거의 없어서 다행. 대사를 잘 알아 들었어도 느낌은 똑같았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태국은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국민의례 같은 것을 한다. 다들 일어나는데 눈치 보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자는척했다.




인도 - 조드푸르, 자이푸르


인도에서는 두 지역에서 극장을 갔다. 블루시티 조드푸르와 핑크시티 자이푸르. 한 곳은 우연히 극장을 보고 들어갔고 한 곳은 극장을 가려고 그 도시에 갔다. 조드푸르에서는 얼음 담긴 콜라를 먹어보겠다는 일념으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몇 시간을 헤매다 발견해서 들어가니 그 건물에 극장이 있었다. 그래서 콜라 본 김에 제사 아니 영화 보게 되었다. 멀티 플랙스였는데 시간 맞는 인도 영화를 봤는데 재미있었다. 인도영화도 요즘은 과도한 가무를 자제하는 분위기인지 적절한 가무가 가미된 액션 영화였다. 못 알아 들어도 다 이해하고(?) 봤다. 람보 같은 아저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SAALA KHADOOS'
자이푸르에서는 유명한 극장이 있다길래 찾아갔다. 완전 오래된 옛날식 극장. 수많은 인도 가족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왔고 거금을 들여 전용 휴게실이 포함된 1등석에서 관람했다.






모로코 - 페스, 탕헤르


모로코에서는 페스와, 탕헤르에서 극장엘 갔다. 모로코도 사실 낮에도 혼자 다니기에는 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라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곳곳에 눈에 뜨이는 극장들이 있어서 참을 수 없었다. 첫 극장은 페스에서 도전했다. 숙소와 메디나(모로코의 전통 골목)을 오가는 곳에 극장이 있었다. 표를 사려고 하자 매표소 할아버지가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낸다. '아랍어 자막인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표 주세요' 어차피 액션 영화이니 대충 눈치로 알아들으면서 봐야지 하고 선택했던 영화는 리암 니슨의 '테이큰3'. 이곳의 극장은 나름 현대식 건물에 있어서 좀 작긴 했지만 좌석도 편안했다. 다만 아랍어 자막에 '프랑스어 더빙' 이었다. 할아버지의 걱정 어린 눈빛이 이해되었다. 못 알아듣는 영화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했는데 프랑스어가 묘하게 자장가로 들린다.
나중에 우리나라 K 가수가 테이큰3 돈 내고 다운로드했는데 아랍어 자막이었다고 말한 인터뷰가 한창 논란이 되었는데 아마도 내가 본 영화가 유출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탕헤르는 스페인과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도시여서 모로코이면서도 묘한 이국적인 모습을 풍기는 곳이었다. 그곳은 항구이며 국경의 역할을 하며 오래전부터 발달했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극장이 두 개 있었다. 그중에 한 곳을 찾았다. 단관으로 하루에 영화를 세 번만 상영했다. 영화가 끝나면 어두운 시간이 되기 때문에 모든 걸 숙소에 놔두고 딱 영화비와 음료수 값 정도만 챙겨서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모로코의 영화였다. 내가 여행한 페스가 초반에 배경으로 나왔고 나중에 주인공들은 탕헤르를 통해 스페인으로 넘어가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형적인 옛날식 러브 스토리였다. 사랑하는 연인이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고 남자는 돈을 벌로 가고 여자도 우여 곡절 끝에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이용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말은 못 알아듣지만 거의 완벽하게 이해했던 영화였다. 탕헤르의 극장은 영화보다도 그 분위기가 마치 시네마 천국의 그 극장 같은 자유스러운 옛날 분위기의 극장이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호주 - 앨리스스프링스


여행하며 다닌 극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극장이 좋아서나 여행지가 좋아서가 아닌 그곳의 분위기와 꼭 맞는 영화를 그곳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앨리스스프링스는 호주의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이다. 도시라기 하기도 뭐 한 정말 작은 마을인데 이곳은 호주의 유명한 여행지인 울룰루(에어즈락)이라는 그들이 말하는 세상의 중심에 박혀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기 위한 여행의 전초 기지이다. 호주의 내륙은 엄청난 사막인데 그 한가운데에 있으니 정말 고립된 곳이다. 그곳은 정말 울룰루나 근처의 캐년을 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이 동네를 정말 왔다 갔다를 수없이 하다가 극장을 보았고 들어갔다. 그때 마침 상영하던 영화가


'월-E'


였다. 그 영화는 마치 그곳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같았다. 정말 사막 한가운데의 나의 모습과 지구에 남겨진 월-E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지금도 가끔 어딘가에서 월-E의 모습이 나오면 그때의 시간이 떠오른다. 다시는 오지 못할 그 시간, 그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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