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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Mar 10. 2018

다짐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다짐

비행기에서 내리며 세 가지 다짐을 했다.


첫째. 덥다고 짜증 내지 않기.
둘째. 웬만하면 흥정하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만약 한다면 최소한 대화의 핑퐁을 3라운드까지는 가져가기.
(가장 많이 흥정해야 할 상황이 교통수단인데 그거 어려우니까 웬만하면 걷기).
셋째. 절대 과식하지 않기 (가능한 끼니 수를 줄인다.)


공항을 나와서 불과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자 내 이마에서는 벌써 땀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내 속에서는 짜증이 올라왔다.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다가 공항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벌써 첫 번째 다짐을 어겼다는 게 떠올랐다.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고 커다란 오토바이 주차장을 옆에 끼고 좁은 골목을 통과해 메인 도로로 들어섰다. 이제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더위를 피하고 몸을 누윌 숙소가 있다. 넉넉히 30분만 가면 된다. 그동안 구글 지도를 수없이 들여다보고 시뮬레이션 해 본 결과다. 확실하다.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그늘에 앉아있던 택시기사와 눈이 맞았다. 잠깐 고개를 돌렸는데 그 짧은 순간에 눈이 맞았다.


'택시?' 그 찰나의 순간에 그는 내 갈등을 읽었나 보다. 나는 못 들은 척 방향은 전방을 향하고 고개를 숙인 체 걸음의 속도를 미세하게올렸다. 이건 '흥정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안 피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못 들은 것도 아니다'라고 느낄 만큼 아주 미세하게... 등 뒤에서 '택시?' 가 한번 더 들리고 나서야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이제 직진이다. 곧장, 쭉, 무조건~~. 아까의 택시기사가 이제 나를 부르려면 요즘 유행하는 휴대용 노래방 마이크 정도는 써야 할 거리쯤 되었다고 느낄 때, 내 옆으로 슬그머니 오토바이 한 대가 접근했다.

잠시 후 아저씨와의 다소곳한 1라운드 흥정이 끝나고 나는 아저씨가 건네는 헬멧을 공손히 받아쓰고 아저씨의 허리춤을 꼭 움켜쥐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샤워하고 길을 나섰다. 가장 번화가인 이곳엔 이틀만 있을 예정이라 이곳에서 처리할 우체국 업무를 위해 위치도 파악하고, 새로 생긴 것들이 뭐가 있나 하는 일종의 맛보기 외출이다. 골목골목, 이 좁은 곳으로 사람과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지나간다. 전에 갔던 골목, 새롭게 탐험하는 골목들을 지나 우편 업무를 취급하는 곳도 알아낸다,. 오늘 가장 큰 할 일인 우체국 알아내기가 끝나자 그제서야 전날 자정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서 지금 오후 4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아니 경유지 라운지에서 죽 한 그릇 먹은 게 떠올랐다. 허기란 놈은 잊고 있을 땐 한없이 순둥이지만 그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참을성 없는 악마로 변한다.


보통 여행지에서 식사 한번 하려면 고민이 참 많아진다. 어느 곳이 맛 집인지, 아니 먹을만하고 내 입에 맞는지. 특히 혼자서는 더더욱고민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선택지는 패스트푸드였다. 원래 패스트푸드를 좋아하기도 하고 가장 실패 확률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다짐 3번 과식하지 않기에는 자그마한 부제(?) 같은 서브 다짐이 있었다. '패스트푸드를 줄인다(차마 안 먹기는 힘들고)'였다.


참을성 없는 악마는 점점 아우성을 치고 패스트푸드를 제외하자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마침 눈앞에 현지인들 몇 명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현지 식당이 보인다. 안 보는 척 슬쩍 곁눈질로 분위기를 파악한다. 나름 깔끔하고 끼니때를 지나 사람도 별로 없고 혼자 먹는 현지인도 있다. 내 한 몸 슬쩍 한 끼 처리하기에 알맞아 보인다. 예전에 다이빙 강사를 따라갔던 현지식 백반집 시스템이다.


세상엔 한번 몸에 배면 오래 쉬어도 금방 다시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자전거 타기, 운전, 수영 그리고 보디랭귀지(?). 두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혹시나 내가 모르는 이곳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동물의 특수부위 일지도 모르는 불길함에 '투푸?'라고 한마디한 걸 제외하면 상호 간의 완벽한 보디랭귀지 호흡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콜라를 한 잔 마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는 닭 다리뼈만 홀로 외로이 남겨진 빈 그릇이 놓여있었다. 순식간이었다. 이건 분명 누군가가 시간을 잠시 멈추고 내 음식을 먹어치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차마 내가 그걸 그 순식간에 다 먹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세 번째 다짐마저 무너진 걸 알게 됐다. 불과 3시간 만이었다. 아마 비공식적 기네스가 아닐까?


이제는 다짐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냥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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