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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Feb 17. 2017

도~~신들의 섬 - 인도네시아 - 발리

낯선 나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환율을 확인하고 환전을 한다. 장기간 다국가를 여행하며 육로 입국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곳은 공항이 된다.


공항의 환율은 좋지 않다. 백 퍼센트라고 자신할 수 없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고속도로 진입 바로 전의 주유소가 가장 비싸듯 급하고 아쉬운 사람들이 주로 환전을 하게 되는 곳이 공항이니 굳이 싸게 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경제의 법칙이기 때문에 비쌀 거라는 걸 인지하고 환전한다.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은 일단 급하게 쓸 돈 정도만 환전을 한 후 그곳에 조금 익숙해지면 밖에서 본격적인 환전을 한다.

요즘은 거기에 유심칩이 하나 추가되었는데 이것도 익숙함이나 무서움의 정도에 따라 공항에서 사느냐 나가서 사느냐가 결정된다.


두 번째 방문인 발리는 숙소는 처음 가보는 곳에 잡았지만 약간의 익숙함 덕분에 공항에서 최소한의 돈만 환전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제대로 된 환전과 유심칩을 사기 위해 동네 탐방을 나섰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유명 지역을 벗어났기 때문에 한적한 동네가 맘에 들었다. 그래도 식당, 마사지, 기념품점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생각보다 무척 많이...


그런데 1년 전에 왔을 때는 인지하지 못 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정식 환전소가 아닌 웬만한 모든 가게들이 환율표를 내걸고 환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가장 유명한 지역들만 다녔지만 짧은 기간 탓에 미리 다 환전을 해와서 관심이 없어서 못 봤던듯하다. 가게들의 환율을 보니 공항의 환율보다 좋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여행을 나오면 그것에 민감해진다.


적혀 있는 환율이 1달러, 1유로 기준이어서 아주 미세한 차이 같지만 환전하는 돈이 커지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특히 물가가 싸서 그 차이가 밥 한번 사 먹거나 마사지 한번 받을 정도가 되면 마음이 흔들린다. 정식 환전소라면 당연히 바로 들어가서 환전하면 되지만 그런 것 같지 않은 느낌 같은 느낌이 들기에 망설였다.


'그래 이 정도에 흔들리지 말자. 불안할 땐 안 하는 게 정답이지' 하며 여행의 기준을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나오는 가게 들의 환율이 점점 더 좋아진다.


여행의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게들은 대부분 기념품을 파는 곳이었는데 대로변에 있었고 다 오픈되어 있었다. 여행의 기준을 흔들기 위한 합리화가 시작한 것이다.

'그래 그냥 확인만 한번 해보지 뭐'

그동안 본 환율 중에서 가장 환율이 좋고 가게 앞에 앉아 있는 주인의 얼굴이 순박(?) 하게 생긴 곳으로 다가갔다.

'환전하려고 하는데 이 환율이 맞아요?'
'물론이지. 얼마나 할 건데요?'
'100달러'
'따라와요'

예상하지 못 했던 따라오라는 이야기에 머리가 빨리 회전했다. 동네를 충분히 돌아보며 나름 가게 분위기들을 파악하고 구조들도 확인하고 여차하면 바로 길로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시작했는데 시나리오랑 다르게 진행되니 당황됐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내 얼굴을 읽었는지 괜히 말을 건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즉답을 안 하고 그를 쳐다보는데 가게 안쪽으로 테이블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테이블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허리춤에 있던 보조가방을 열고 돈을 꺼낸다. 가게가 안으로 그렇게 깊은 줄 생각 못 해 당황했지만 차분히 생각하니 그래도 가게는 다 오픈되어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뛰어나갈 수 있는 정도의 위치였다.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100달러면 130만 00루피아에요'

나는 지갑에서 100달러 지폐를 꺼내 들고 그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섰다. 그가 돈을 세기 시작한다. 테이블 밑에서 세어서 돈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손을 따라서 나도 속으로 따라 세기 시작한다.

'1, 2, 3, .... 10, 11, 12, 13'

나는 당연히 끝이라 생각하고 따라 세기를 멈췄는데 그는 계속 손이 움직인다.

'10만 루피아 짜리가 아니었어?'

나는 이미 얼마나 세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는 한참을 더 세더니 돈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5만 루피아 짜리였다. 두 장씩 내려놓으며 내게 보여줬다.

'10만, 20만, 30만.......130만.  그리고 나머지 00'
(지폐로만 주어서 오히려 환율보다 더 주었다.)

나에게 '맞지?' 하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100달러를 건네고 환율에 맞게 아주 작은 루피아 동전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테이블 위의 돈을 카드 걷듯이 양손으로 후르륵 합치더니 나에게 건넸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그의 손이 약간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느꼈다.


그건 마치 마술사가 마술을 하면서 '자 내 손에 아무것도 없지?' 하는 듯이 '나 아무 짓도 안 하는 거야'라고 하듯 아주 미세하게 손을 뒤집어 보이는듯했다. 그 행동을 못 느꼈다면 당연히 그냥 나왔을 텐데 왠지 이상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가 하듯이 5만 루피아 짜리를 두 장씩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10만, 20만, 30만....100만, 110만, 120만.....???' 다시 세어 보았다.
'10만, 20만, 30만....100만, 110만, 120만.....???'

100달러는 미리 주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의 표정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가 다시 세어본다.
'10만, 20만, 30만....100만, 110만, 120만.....???'

그는 가방에서 5만 짜리 두 개를 꺼내어 돈에 합쳤다. 그리고 다시 세어 준다.
'10만, 20만, 30만....100만, 110만, 120만, 130만'
그리고는 다시 아까와 같이 양손으로 돈을 합쳐서 나에게 준다.

나는 그의 눈앞에서 다시 세어 본다.
'10만, 20만, 30만....100만, 110만, 120만.....???'

그제야 그는 당황한 목소리와 약간 떨리는 손으로(나의 느낌)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며 택스를 빼야 한단다. 그가 말하는 택스를 빼면 공항의 환율보다 안 좋게 된다. 나는 환전을 안 하겠다고 하고 100달러를 돌려 달라고 했다. 그는 다행히 순순히 돈을 돌려주었다.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앞만 보고 걸었다. 걸으며 속으로 침착하게 대처한 나를 칭찬하는데 문득 금액 맞추느라 그에게 건넨 루피아 동전을 받지 않은 게 떠올랐다. 다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큰 돈을 사기 치는 척하며 작은 돈을 챙기는 신종 사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역시 여행의 기준을 흔들면 안 돼' 하며 계속해서 동네 탐방을 하는데 가게들의 환율이 더 좋아진다. 이제 심지어는 140만까지 나타났다. 마술쇼(?)를 본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아 나약한 인간이여....'


이번에는 가게를 더 자세히 살피며 타깃을 물색했다. 환율이 좋은데 가게가 그리 크지 않고 안으로 깊지도 않다. 거기에 주인이 아줌마다. '그래 여기는 설마 마술 못하겠지'


'환전하려고 하는데 이 환율 맞아요?'
'네 맞아요 얼마 할 건데요?'
'100달라요'
'잠시만요'

아줌마 갑자기 가게 밖으로 나가더니 누군가를 부른다. 옆 가게에 있던 아저씨가 뛰어온다. '아! 작전 미스다'
이 작은 가게에도 안쪽으로 테이블이 있었고 아저씨는 뒤로 가며 괜히 친한 척 말을 건다.

'숙소가 어디예요?'

질문의 내용만 바뀌었지 레퍼토리가 똑같다. 테이블 밑에서 돈을 세고 5만 루피아 짜리 두 장씩 테이블 위에 놓는다.

'10만, 20만, 30만....120만, 130만, 140만'

140만을 내려놓자마자 그가 돈을 합치기 전에 내가 먼저 돈을 후르륵 하고 합쳤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게 돈을 다시 달라고 하더니 다시 세어준다. 나는 그가 합치기 전에 또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러자 계산기를 꺼내더니 텍스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돈을 미리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안 바꾼다고 하고 그냥 나왔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은행 환전소로 달려갔다.

신을 모시는 사원이 수없이 많아 신들의 섬으로 불리는 발리는 살아있는 신(?)들도 수없이 많은 듯했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이런 도신 들을 양성하는 학원이 있는듯했다. 똑같은 기술을 전수해 주는...


P.S
발리에 사는 한국 식당 사장님도 나중에 만난 다이빙 강사도 다들 똑같이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는데도 큰돈을 바꿔야 하니까 환율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후에는 은행만 이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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