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북한산을 걸었다. 둘째아이의 주말숙제가 가을의 자연물을 담아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청명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추석을 지나니 어느새 가을이 와버렸다. 낮에는 햇살이 뜨거워서 반팔을 입어야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해서 가디건을 걸쳐야겠다. 지난해에 선물받고 몇번 입히지 못한 예쁜 스웨터를 아이들한테 입힐 수 있겠다. 눈대중으로 아이들의 몸집과 옷을 비교해보니 어쩌면 스웨터가 작을 수도 있겠다. 오늘 아침에 첫째아이는 발목이 조금 달랑달랑한 얇은 청바지를 입고 등원했다. 여름의 시작에는 분명 품이 넉넉하고 길이도 좀 남는 바지였다. 녀석들이 그새 많이 자랐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사방이 도심에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같다지만 내 눈엔 서울의 오래된 허파처럼 보였다. 산책로의 입구부터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가 지천에 널렸다. 산을 오가는 사람들일 밤까는 재미가 쏠쏠했겠다 싶을 정도로 죄다 알맹이를 털렸다. 인기척에 놀라 낮게 푸드덕대는 오리, 길쭉한 강아지풀, 잡초처럼 무성히 핀 코스모스를 보았다. 수분을 머금고 축축한 솔내음도 풍기고 도토리나무를 처음 보고는 다람쥐가족마냥 잎사귀 끝에 열린 도토리를 열심히 모았다.
둘째 아이의 자연관찰통에는 솔잎, 꺾인 꽃송이들, 밤, 도토리, 이름모를 버섯이 가득 담겼다. 뚜껑을 닫으니 금새 습기가 차서 투명한 통이 금새 둔탁한 모양으로 변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대던 첫째아들은 아빠손에 이끌려 북한산의 나즈막한 그루터기를 올랐다. 둘째는 모든 것이 생경한 모양으로 짧은 혓소리를 내며 쫑알거렸다. 나는 필라테스의 여파로 종아리 뒷쪽부터 다리 근육 전체에 근육통이 있었는데 하산을 할 때쯤에는 통증이 덜했다. 남편은 부푼 배를 어루만지며 대만출장에서 봤던 꼬맹이들의 등산이야기를 했다. 주말에 남편과 동료가 대만의 어느 산을 오르는데, 근처 어린이집에서 어린 꼬맹이들이 단체로 견학을 왔더란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작은 아이들이 서로서로 손을 꼭 잡고서 가파른 산의 정상을 끝까지 올랐다. 성인도 조금 버거운 가파른 돌산이었다. 잘 깎인 등산로도 제대로 없었다. 거친 바위를 힘으로 딛고 올라야 하는 어려운 산행이었다. 교사는 평화로웠고 아이들도 낙오자 없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남편은 꼬맹이들이 예쁘고 기특해서 사진을 찍어 내게 전송했다. 맑은 아이들이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무언가 설명하는 교사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린이집 가방에 자연물을 담아 주며 주말에 열심히 주워 모았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라 했다. 아이들은 맷돼지가 출현할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푯말을 봤다는 이야기, 꽃에 앉은 일벌을 가까이서 봤다는 말도 할거라고 했다. 아이들 눈이 반짝 거렸다. 나는 반짝거리는 눈이 좋다. 아이도 어른도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좋다. 약한 흥분과 긴장상태로 기대에 찬 그 눈빛을 보면 없던 힘이 마구 솟는다. 학교에서는 질문하는 학생들을 좋아했다. 수업시간에 죽은 듯 졸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고고히 앉아 허리를 곧게 세우고 내 말에 집중하는 학생에게 더 눈이 갔다. 생명에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살아서 약동하는 것을 곁에 두어야 한다. 살기위해 몸부림 치는 것들,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들을 쫓아가야 한다. 하루씩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고 청춘으로 살고 싶다. 새싹같은 아이들과 함께 더불어 자라고 싶다. '나의 젊음이 흐르고 흘러 너에게로 간다.'고 한탄하던 어느 엄마의 자조를 들은 적이 있다.
찰나이기에 더 아름다운 순간이 많아서, 그런 생각을 하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