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고 다양한 인간관계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by 셈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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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특별히 호감이 가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런 사람은 나와 공통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의 나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요즈음의 나는 가능하면 그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대부분 3가지의 공통점 중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첫째는 공통된 조건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자녀가 같은 또래이거나, 직업이 비슷하거나, 사는 장소가 같거나 등의 외면적 조건이 같은 경우이다. 특히 한국의 아줌마들은 그 장소가 어디이든 특유의 친화력으로 아무 하고나 말을 튼다. 그러면서 공통된 무언가를 찾으려 든다. 그중 하나라도 자기와 맞는다고 생각이 들면 마치 십 년은 알고 지낸 것 같은 친화력을 발휘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또 모든 아줌마들이 그런 건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멀어져 버린 내 절친들은 나보다 더 친하게 지내는 '동네 엄마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나의 성장 환경이나 직업, 성격 등의 이유로 웬만해선 브런치 모임이나 놀이터 수다를 즐길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아무 하고나 말을 한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공원에서도, 빨래방에서도, 시장에서도, 심지어 맥도널드에서도 처음 보거나 또는 낯익은 얼굴들에게 그 장소에 같은 목적으로 와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내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더 이상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느슨함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둘째는 결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이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짧은 대화지만 이 사람 왠지 결이 비슷할 것 같다는 느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사람에 대한 촉이 발달하기도 하고 또 경계심이 많기도 하다. 적어도 예전의 나는 경계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의 나는 그냥 누구와도 말을 하고 누구에게든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차이도 있고 나이가 든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현저하게 줄어든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말과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오다가다 스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 생각이 비슷하다 느껴지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 물론 처음에는 결이 비슷하다 느껴서 가까워지더라도 조금 사귀어보면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그냥 그대로 두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싶은 여유가 생겼다. 예전의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느껴지면 어떻게든 내 생각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했고 나 또한 어떻게든 그 사람을 이해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나이가 들어서야 모든 사람이 각기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며, 때때로 나를 이해해 준다고 느꼈던 사람들에게서조차 그게 말 그대로의 이해가 아니라 그냥 듣는 것에 그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내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예의가 되었든 아니면 일정 부분 정말 이해가 되었든 그저 듣고만 있은 것도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그랬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행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내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저 작은 부분이라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며, 그냥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마지막은 경청하는 자세이다. 그냥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대화라 할지라도 내 얘기를 경청한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호감은 배가한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듣는 편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나는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별로 없다. 집중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진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고 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지만, 적어도 흘려듣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때때로 내가 한 이야기들을 전혀 기억 못 하는 경우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실망이 어마어마해진다. 등가 교환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듣고 기억하고 배려하려 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구나를 느끼면 소위 상처라는 걸 쉽게 받는다. 어쩌면 그것이 편협한 나의 인간관계를 만드는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나의 모든 촉을 발동해 기억하고 배려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므로 아마도 나는 특정 인물에게 집중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대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누구나 그렇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얼마 전에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의 성격이 일반적이지 않구나를 느낄수록 나와 결이 비슷하구나를 느끼는 사람에게 더 호의적이 되는 것이다.


그녀를 만난 건 빨래방에서였다.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나는 대부분의 그 시간을 독서로 보낸다. 빨래가 끝날 때까지 잠시 다른 일을 보고 올 수도 있겠지만 혹시 내가 시간을 못 맞추면 다음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나는 웬만해선 빨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음에도 위의 3가지 공통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하는 일이 비슷했고 감성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려는 자세가 보였다. 나 또한 그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녀의 공방이 빨래방 근처라 나는 화장실도 빌려 쓸 겸 그녀의 공방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으며 연락처를 주고받고 그렇게 이곳에서 지인 한 사람을 더 만들었다.


그녀와의 만남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녀와의 공통점이 어디까지일지, 그녀는 정말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일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단지 빨래방에 자주 가는 내가 또 화장실이 급할까 봐 자신이 출타 중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열쇠 두는 장소를 알려주는 그녀의 배려에서, 이 사람은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겠구나가 느껴졌으며 그냥 이렇게 좋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졌다. 그렇게 오다가다 만나지는 인연도 소중한 나의 마음에 충실하며 '느슨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실천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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