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만남

내 인생을 바꾼 작은 만남

by bright jenny

1편: 낯선 문 앞에서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사립 여대 교문을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드디어 이곳에 왔다”는 벅찬 감정과, “내가 과연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형제가 넷이나 되는 집안에서, 나만 유독 비싼 학교를 선택했다는 부담감은 늘 따라다녔다. 부모님은 학비와 전세방을 마련해주셨고, 매달 스무만 원을 손에 쥐어 주셨다. 그게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근로장학생이 되었다.학교 기관에서 업무를 돕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과외를 했다. 책 사이사이에 낀 먼지를 닦으며, 내 미래도 함께 닦아내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방학마다 어학연수로 해외를 오갔다. 같은 과 친구를 캐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지만 내겐 그런 사치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워킹홀리데이.

그 선택이 내 인생을 어디로 데려갈지는, 그땐 알지 못했다. 다만 알바로 모은 돈과, 불안과 설렘이 뒤섞인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낯선 문 앞에 서 있었다.


2편: 남반구의 집

비행기는 길고도 멀었다. 창밖에 보이는 끝없는 구름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정말 내가 이걸 해내고 있는 걸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공항의 공기는 서울보다 훨씬 차분했다. 북적임 대신 낯설고 맑은 공기, 그리고 내 심장을 두드리는 설렘과 두려움만이 있었다.

내가 선택한 건 Au-pair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현지 가정집의 한 방을 쓰며 숙식은 제공받고, 대신 집안일을 돕는 생활.
그 집은 조금 특이했다. 부부는 이미 별거 중이었고, 아이들은 주말마다 엄마와 아빠 집을 오갔다. 내가 지낸 건 아빠의 집이었는데, 주중에는 출장도 잦아서 집이 텅 빈 날이 많았다.

처음 며칠은 오히려 무서웠다. 아무도 없는 집, 낯선 언어, 그리고 고요 속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나. 하지만 곧 깨달았다. 혼자라는 건 자유이기도 하다는 것.

냉장고를 열면 낯선 식재료들이 가득했지만, 나는 곧 한국에서 배운 손맛을 꺼내들었다. 된장찌개, 김치볶음밥, 잡채… 서툴지만 정성껏 만든 음식은 집주인 아저씨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이거, 정말 맛있네!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졌다.

오전에는 어학원에 갔다. 교실엔 스페인, 대만,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우리는 모두 비슷한 불안과 기대를 나누며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붙잡았다.
나는 오전 수업만 듣고 오후엔 집안일을 했다. 남는 시간에는 학원에 있는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에 손을 올리면, 외로움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시절 잠깐 배웠던 곡들이 서툴게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낯선 도시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작은 언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