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피아노 건반 위로 손을 얹을 때면,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뉴질랜드의 고요한 오후, 집안일을 마치고 학원에 남아 서툰 곡들을 연주하던 그 시간만큼은 외로움이 물러났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멜로디를 흘려보내고 있는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혹시 한국 분이세요?”
놀라 고개를 돌리니, 눈웃음이 예쁜 여자가 서 있었다.
“저 남섬에서 있다가 이번에 북섬으로 올라왔어요. 근데… 우리 학교, 선배님이시네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남반구의 작은 도시, 낯선 학원에서, 나와 같은 교정을 걸었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우연 같았다.
그 언니와 나는 금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제빵을 배우기 위해 영어 공부를 먼저 하고 있다고 했다. 활짝 웃을 때마다 공기가 환해지는 듯했다. 최진실을 닮은 듯 사랑스러운 인상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우리는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서로의 일정이 달랐기에, 학원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묘한 힘이 생겼다.
“넌 꼭 잘 될 거야.”
언니가 해준 짧은 한마디는,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그때는 몰랐다. 이 만남이 훗날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귀한 인연이 될 줄은.
마치 피아노 소리가 닿아 마음을 두드렸듯, 그 언니와의 만남도 내 삶을 깊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