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외로운 주재원의 첫 달

by bright jenny

회사는 내 미국 파견을 위해 변호사까지 고용해 취업 비자를 준비해 주었다.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인 사수님이 비교적 쉽게 비자를 발급받았던 것과 달리, 스물여섯 살, 미혼 여성, 그것도 마케팅 전공자인 내게 미국 취업 비자의 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몇 달을 대기하다가 간신히 받은 건 B1 비자였다. ESTA도 없던 시절이라, 최대 6개월간 일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처지였다.


최근 뉴스에서 본 ‘조지아주 현대/LG 노동자 감금 사건’은 내 기억을 불쑥 끌어냈다.

“출장 온 사람들까지 범죄자 취급을 받다니….”

그때 나도 충분히 그런 취급을 받을 수 있었겠구나 싶어,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비즈니스란 결국 서로 주고받는 관계여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십수 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화가 치밀었다.


다시, 그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산호세에 있는 수영장과 정원이 예쁜 집에 머물렀다. 사수님이 살던 집이었다. 나무로 지어진 집은 한국의 콘크리트 아파트와 달리 뭔가 허술해 보였지만,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날씨에는 딱 맞는 집이었다. 호텔도 비슷했다. 겉보기엔 멋있지만, 세세히 보면 허술한 느낌.

사무실도 따로 없었다. 사수님의 집을 그대로 홈오피스로 쓰고 있었는데, 거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싼호세 시내 전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다니… 촌사람 출세했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마다 웃음이 났다.


엄마는 영어를 잘하시진 않았지만, 타고난 ‘소통가’였다.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 외국인들과 인사를 나누셨고, 심지어 동네 한국인 가정과도 인연을 만들어 오셨다.

“저 집에 대학생 딸이 잠깐 와 있대. 네 또래라더라?”

놀랍게도 그 딸의 절친이 내 대학교 같은 과 동기였다. 이름만 들어본 사이였는데, 그렇게 연결고리가 이어졌다. 덕분에 나와 그 딸은 금세 친해졌고, 엄마들끼리도 친구가 되었다. 미국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였다.


그러나 한 달 뒤, 엄마도, 그 친구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게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이렇게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형제가 북적이는 집, 늘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던 일상만 겪어온 나는, 주말 아침 눈을 떴을 때 해야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게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불안은 잠을 빼앗아 갔다.

낯선 땅, 넓은 집, 산호세의 멋진 풍경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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