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언니 친구이자, 내게 회사 선택의 영감을 주었던 M 언니는 사실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뒤, 같은 학교 후배가 새로 입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산 출신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정이 가는데, 같은 학교 출신이라니, 괜히 마음이 푸근해졌다.
얼마 뒤, M 언니를 통해 그 후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후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퇴사하셨죠? 그래도 아직 회사에서 되게 유명하세요.”
“내가? 왜?”
뜻밖의 말에 놀란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대표님이 종종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 사장처럼 일하는 사원이 있었지.”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회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만큼 대단한 일을 했던가? 기억을 더듬어도,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사소한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우리와 가장 크게 거래하던 A사와, 그 다음 규모의 N사가 있었다. 어느 날, N사 반도체 장비 부품 하나가 수명이 다해 긴급하게 필요하게 된 일이 벌어졌다. 사안이 급박했던 부사장님은 직접 우리 회사 사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부재중, 비서는 해외영업팀으로 전화를 돌렸다. 마침 팀장님도 자리를 비운 순간, 수화기를 든 사람은 입사 1년 차 사원, 바로 나였다.
“Hello, this is Jenny speaking.”
내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렸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영어 높임말이라고는 이름 앞에 "Mr."를 쓰고, “Sir” 정도 붙이는 게 전부였지만, 다행히 상대는 불편해하지 않았다.
부사장님은 다급하게 물었다.
“Do you have this part in stock?”
나는 곧장 준비해둔 장부를 확인했다. 평소 소량이라도 항상 전 제품 재고를 챙겨두던 습관이 그때 빛을 발했다.
“Yes, we have stock, Sir. How many pieces do you need, Mr. XXX? We can ship them tomorrow.”
기본적인 영어, 기본적인 대응이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했을 법한 일. 하지만 그 부사장님은 크게 안도했던 모양이다. 며칠 뒤, 대표님께 따로 연락을 해서 그날의 전화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사장이 없어도 사장처럼 일을 해결한 사원”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게 된 것은.
솔직히 말해 그 칭찬은 과분했다.
사소한 한 번의 대응이 과하게 미화되어 전설처럼 전해진 거니까.
하지만 나는 배웠다.
살다 보면 억울하게 손해 보는 일도 있고, 한없이 과분한 칭찬을 받을 때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스스로 다독인다.
“퉁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