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의 3개월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학원도, 머물 집도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덕분이었다. 하루하루가 낯설긴 했지만 안정적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 호주로 넘어온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한국에서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 신분 덕분에 여러 혜택을 누렸고, 보호받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모든 게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그저 **“무직인 성인 외국인 여성”**일 뿐이었다.
가장 싼 유스호스텔에 방을 잡았다.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갔다. 숙박비, 세 끼의 식사… 하루하루는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돈을 태워 없애는 일이었다.
일자리 정보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랐다.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정보는 늘 늦게, 단편적으로 흘러왔다. 가족들은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어렵게 온 길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막한 1주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때, 그 언니가 다시 나타났다.
“어머, 여기서 보네! 너무 반갑다.”
언니는 내 숙소 맞은편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다. 제빵을 공부하기 위해 호주로 왔고, 집을 구하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그날, 언니는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였다. 나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식사 후, 언니는 한인타운 신문을 꺼내 보여주었다.
“여기 구인란 봐. 지원해봐. 분명 기회가 있을 거야.”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한국인 가정을 찾아갔다. 그 집에서는 아직 영어가 서툰 아이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숙식을 제공해 준다는 조건까지 있었다.
사실 나는 긴장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과외 선생님인 양 당당히 소개했다.
“이 친구, 정말 잘 가르쳐요. 믿어도 돼요.”
그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집주인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나는 하루 만에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어둡고 막막하던 나날 속에서, 다시 길이 열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