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주의 그림 같은 집에서 예쁜 여자아이 두 명과 함께 살게 되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가 서툴렀다. 매일같이 쓰는 일기를 도와주고, 교구를 사서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숙식은 해결되었지만, 생활비는 직접 벌어야 했다.
다시 그 언니가 내 곁에 있었다. 교민 신문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 한번 지원해봐. 아트박스에서 사람을 찾는다네.”
처음 보는 진짜 면접이었다. 긴장했지만, 대학 시절 수업 시간에 만들어두었던 나만의 홈페이지가 떠올랐다. 내 성격과 장점, 잘하는 것들이 정리되어 있던 자료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결국 나는 합격했고, 호주 생활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었다.
아트박스에서 일하며 몇 개월 만에 돈이 모였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영어 공부를 위해 왔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 속에만 있구나.’ 다시 학원 문을 두드렸다.
Cambridge FCE 시험 준비반. 아침마다 수업을 듣고, 오후엔 아르바이트. 내 땀으로 번 돈으로 공부한다는 마음에 숙제를 거를 수 없었다. 수업 분위기를 더 즐겁게 만들고 싶어 한국에서 유행하는 퀴즈나 이야기를 준비해 갔고, 덕분에 유럽에서 온 친구들과 금세 가까워졌다.
그 무렵, 한국에 있던 남동생이 방학을 맞아 호주로 왔다. 집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방을 내어주셨고, 동생은 한 달 동안 어학원에 다니며 친구들을 사귀었다. 자연스레 나도 그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치 오래전부터 호주에 뿌리내린 사람처럼 적응해 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우연. 뉴질랜드에서 알게 되었던 언니가 호주로 오게 된 것이다. 마침 동생이 다니던 학원에서 알게 된 집에 방이 하나 비어 있었고, 우리는 언니를 그곳에 연결해 줄 수 있었다.
인연이 인연을 낳고, 또 이어지는 순간.
그 모든 시작은 결국, 뉴질랜드의 피아노 앞에서 만났던 한 사람으로부터였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선배님께 늘 마음 깊이 감사한다. 작은 만남이 내 인생의 큰 길이 되었음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