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새로운 무대, 미국으로

by bright jenny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대학교에 합격하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취업에 성공하면 인생의 한 phase가 끝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그 문을 통과하면 알게 된다. 합격과 입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해외영업팀에서의 시작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회사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불만을 토로하는 젊은 직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행운이었다. 기숙사와 세 끼 식사가 제공되었고, 무엇보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비서 시절에는 말투 하나, 옷차림 하나까지 조심스러웠는데, 여기서는 제조 현장과 맞닿아 있는 사무실을 활보하며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다.

“이건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선배님, 일정 맞출 수 있나요?”

크게 묻고 부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를 살렸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영어였다. 미국 지역을 담당하면서 영어로 메일을 쓰고 통화하며 매일같이 실력을 갈고닦았다.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돈을 벌면서 하는 영어 공부였다.

사회 초년생답게 욕심도 많았다. 발주 납기는 무조건 100% 맞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 발주 패턴을 분석해 재고를 관리했고, 초도품은 기술팀과 붙어 다니며 일정이 늦어지지 않도록 조율했다. 20대 중반의 신입 사원이 부서를 오가며 집요하게 묻고 부탁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대표님은 그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셨다.

입사 6개월 무렵,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납기 100% 달성 최우수 공급업체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순간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나에게 커다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입사 1년 만에 미국 주재원 파견 제안이 온 것이다.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이 어떤 곳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건 단순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했다.

비서일 때는 스스로도 자질을 의심하던 내가, 해외영업팀에서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고 주재원 파견까지 가게 된 것은, 능력과 자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입사 1년 반 만에,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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