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해외영업팀에 입사하게 된 데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광고 회사에서 비서로 일할 때, 하루 종일 얘기할 동료도 없었다. 업무 특성상 전화도 조용조용 받아야 했다. 회사 분위기 자체도 모든 게 ‘멋’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조명 하나, 찻잔 하나까지. 하지만 나는 ‘실용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곳은 나와 맞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무렵, 언니가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M언니라는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일본 사업을 하셔서 일본어에 능통했고, 대학에서도 일본어를 전공처럼 다뤄 네이티브에 가까운 실력을 갖추었다. 그런데 M언니가 회사를 고를 때 중요하게 본 건 이름값이 아니라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작은 회사에서 무역 업무를 하며 수주부터 제품 선적, 고객 응대까지 손수 하니 일이 즐겁고 보람찼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이 뛰었다.
‘그래,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 회사 간판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을 찾자.’
그 길로 해외영업 신입 채용 공고를 찾아냈고, 학교 취업정보 센터를 통해 지금의 회사를 지원했다.
입사 후 1년도 되지 않아, 회사가 일본 시장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득 M언니가 떠올랐다. 친언니를 통해 근황을 물으니, 기존 무역 일을 너무 좋아했지만 회사 이전 때문에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팀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서울대병원을 맡으며 영업 1등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회사 상황을 설명하며, 그 언니를 추천해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언니는 흔쾌히 연결해 주었다.
면접 날, 대표님은 M언니를 단번에 마음에 들어 하셨다. 서울대병원 담당 의사들의 생일, 취향, 가족 이야기까지 줄줄 꿰고 있는 그녀의 내공에 감탄하신 것이다. 영업왕은 괜히 된 게 아니었다.
며칠 뒤, M언니는 이 회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입사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일본 법인 설립 지령을 받고 파견을 가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일본 현지에서 법인을 이끌며 지금까지도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더불어 그 회사에서 만난 인연과 결혼까지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묘한 인연이다.
내가 M언니에게 영감을 받아 이 회사에 들어왔고, 다시 내가 연결고리가 되어 M언니가 입사하게 되었다. 인연은 이렇게 직선을 그리지 않는다. 멀리 돌아가다, 우연히 교차하다, 뜻밖의 연결로 길을 잇는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의 길은 언제나 ‘사람’이 이끌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