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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a Mar 28. 2019

"스타트업 지원동기요?"

바로 결과로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어, 아니야.

스타트업 1년 3개월차. 경력직으로 입사하여 나름 직급이 올라, 인턴을 비롯하여 정규직까지 여러명의 면접을 보고 있다.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기도 한데, 그를 통해 역으로 "아, 스타트업에 바라는 게 이런 부분이구나"싶다. 그런데 그 바라는 부분이 현실에서는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써 보는 글. 



난 어떤 사람? 바닥 끝까지 생각하고 가라

면접자(interviewee)가 아닌 면접관(interviewer)이 되고 나서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면접보는 것도 정말 일이다"라는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실무진으로 하루를 일 년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은 나로써는 면접자를 보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조차 큰 투자였다. 


단순히 바빠서만이 아니다. 대기업처럼 큰 조직 속 1명이 T.O 비니까 떼우려고 뽑는 그런 가벼운 차원이 아니라, 들어오자마자 "나"와 살을 맞대고 일을 해야하는 사람을 뽑기 위한 절차다. 


때문에 최소한 제대로 된 스타트업은 면접자보다 면접관이 더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접자1:면접관2이상의 1대多 면접인데다,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을 넘게 소요한다. 그럼 면접관의 총 투자시간은 최소 1시간 반 최대 3시간이다. 단 한 명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데 5명 중 1~2명 꼴로 왜 왔는지 모르겠는 분이 있다. 그의 숨겨진 포텐셜과 적성, 역량을 발견하기 위하여 모든 편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고 편히 얘기하시라 해도, 결국 본인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분이 가장 실망스럽다. 한마디로 시간이 아깝다. 



면접의 근본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를 모르면 뭘 보여주겠나



번지르르한 자기소개와 빵빵한 스펙보다 솔직담백하게 본인 스스로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아, 이 사람은 본인에 대해 깊이 고민 해 봤구나"라는 인상을 준다. 이래야만 합격한다는 게 아니고, 이래야만 서로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치명적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이러 이러한 부분이 스스로의 본질이 담겨있는 것 같다고 인정하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어쩐지 밉지 않다. 그 단점을 A란 경험(별거 아니어도 된다)을 통해 인지한 뒤 그를 극복하거나, 혹은 그 조차 자신의 모습임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산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매력이 있다


스스로를 고찰 해 보았는 지 알기 위한 가장 손쉬운 질문은 "단점이 뭐에요?"이다. 어느 회사든, 하다 못해 학교 입학 면접에서도 묻는, 가장 뻔한 면접 예상 질문이다. 하지만 정작 단점을 이야기 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이야기 하는 사람 드물다. 물론 여기서 단점이란 장점으로 어필하고 싶은 의도가 담긴, 이를테면 "전 너무 꼼꼼해서 탈이에요ㅎ"같은 거 말고 진짜 스스로가 인정하는 단점 그 자체를 말한다. 


좋지도 않은 단점을 남도 아니고 스스로 면접자리에서 담담히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충분히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나아가 그 단점을 가진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있거나 당당해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단점을 "잘"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기성찰과 자신감 및 솔직함을 검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스스로의 단점까지 인정하고 당당히 수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스타트업, 노력에 따른 결과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건 착각

고맙게도, 경험 및 스펙 등이 누가봐도 훌륭한 분들이 많이 지원을 하신다. 그래서 더욱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은 바로 지원동기다. 솔직히, 간절한 사람 몇이나 될까? 


"음, 관심이 좀 가서 지원 해 봄", 최소 80%는 되리라 확신한다. 따라서 사실 물어보면서도 큰 기대는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뻔한 질문을 잡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스타트업 지원동기라 말하는 이유 중 일부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지원을 한 이유는,
대기업보다 더 직접 업무에 투입되니 책임과 권한을 얻을 수 있고
 또 그에 따른 성과를 바로 얻을 수 있으니 
더욱 보람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열에 아홉은 이런 식이다. 직접 업무에 투입되는 것, 맞다. 투입되는 속도도 본인 하기에 따라 가속화될 수 있다. 그에 따른 책임과 권한도 당연히 가질 수 있다(reasonable한 조직이라면). 단, 한가지 무조건 맞다고 볼 수 없는 게 있다. 노력에 따른 결실을 보게 되는 시점이 더 빨리 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력에 따른 성과를 보다 빠르게 얻으려면, 효율적 분업화 시스템이 잘 되어 있거나 혹은 혼자 scope을 넓고 깊게 다 하는데 진짜 잘 할 때, 둘 중 하나다. 개인적 성취감은 후자가 월등히 높을 것이다. 애초에 스타트업에 오고자 하는 사람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오는 분들일 것이다. 


문제는 진짜 잘 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몰입도도 높고 전방위로 쏟아붓는 에너지가 상당한데, 결과 달성률만 보자면 걸음마 수준일 때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만다. 즉, 기여도와 실질적 성과 간의 괴리(현실적,심리적)가 발생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언제든 불안할 때도 있는 법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다수가 분업형으로 딱딱 해 내는 것과 AtoZ까지 꽤나 관여하며 중간중간 의사결정까지 내리는 것을 비교하면 후자의 속도는 더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면, 스멀스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게 맞나? 성과를 빨리 보고 싶은데.." 라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한편, 애초에 업계 구조가 린(lean; 불완전한 완성품으로 빠른 실행을 하되, 그에 따른 피드백을 즉시 얻고 재수정하여 실패비용을 낮추고 빠르게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에 적용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IT계열 무형서비스 등이 아닌 실물 업계, 특히 식품 업계에서는 애로사항이 더욱 많다(사람 입에 들어가는걸 가볍게 린으로 만들어냈다간 욕먹기 십상이다. 식품은 특히 신뢰를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이 글의 결론은 "알겠지? 스타트업 아무나 오지마 으와왕!!!" 이런 게 아니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다만, risk가 큰 조직으로 오고 싶을 수록, 스스로 가치평가에 대한 risk는 작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래도 종종 흔들리겠지만, 어쩌겠나 인간이 그런걸).




생각보다 많이 길어진 글.

이번주에는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겠다. 

벌써 한 해의 1/4이 갔는데, 무엇을 했는가?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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