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직장인 열전』초 현실적인 조선 '직장인' 이야기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 소설책이었나 역사책이었나 아무튼 문학책을 읽고 있었다. 당시 정직원이었던-그야말로 지금 나같이 찌든 직장인-분께서 "저런 책을 읽다니 신기하네, 왜 읽지?" 라며 굉장히 의아 해 했던 반응이 기억난다.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반응만큼은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것으로 보아 내 뇌리에 박혔던 것 같다.
그렇듯 인문은 언제나 찬밥신세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수록, 치열하게 살아갈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눈 앞의 현실에만 집중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여유있게 소설이나 역사책을 읽었던 사람일 지라도, 헥헥거리며 살다보면 서점에 가서 결국 사는 책은 소설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에 대한 책일 때가 많다.
성장판을 통해 기회가 생겨 읽어 본 조선 직장인 열전은, 실무에 도움이 되는 책을 보고 싶은데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서에 지친 사람에게 추천한다. 혹은 역사를 교양삼아 읽고는 싶은데, 필요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서 읽기 꺼려지는 분들에게도 적합하다. 그만큼 이 책은 밸런스가 잘 잡힌 책이다.
사실 읽기 전에는 '직장인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이름만 이렇게 해 놓고 완전 역사책이겠거니'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 및 사실들을 현대의 조직생활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녹여져 있다. 분량으로 봐도 역사적 서술 50% + 해석 및 교훈 50% 정도로 아주 적절한 비율로 분배 해 둔 노력이 엿보인다.
단순히 분량만 나눈 것도 아니고, 마치 사극드라마에서 해설이 중간중간 나오듯 적재적소에서 코멘트들이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역사적 사건들을 구경 하면서도 동시에 나의 회사 생활이 오버랩되며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디테일이지만 구성도 재미있었다. 일단 시대별, 사건별 서술이 아닌 인물별 목차로 구성되어있어 굳이 순서대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적 인물들의 직장인st 느낌이 최대한 들도록 각 인물별 챕터 앞 단에는 각 인물의 이력서가 있다.
자소서를 밤새 썼던 취준생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적 위인의 이력서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별 것 아닐 지 모르겠지만, 인물별 요점정리를 해 주는 기능적 역할도 해 주기 때문에 재미도 내용도 둘 다 잡은 느낌이다.
저자는 대기업 중에서도 메가톤 대기업에 다니고 계시니, 독자의 회사 상황 혹은 개인 성향에 따라 공감이 살짝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대기업에 다니다 결국 현재 스타트업에 재직 중이기 때문에 성향은 당연히 조금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읭?" 했던 부분은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정말 와 닿았고 그 중에서도 꽤 나에대한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대기업 시절의 내가 많이 생각이 났는데, "좋은 팔로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를 돌아보면 항상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가시돋힌 고슴도치같았다. 다가오는 손길에도 차갑게 대할 때가 많았고, 그럴 수록 나는 더욱 더 나의 능력을 증명하기에 바빴다. "제일 어리지만 내가 가장 능력있어"라는 메시지를 가슴 속에 품고 다니는 사람마냥.
지금 돌이켜보면 건방지기 짝이 없었을 때도 종종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비단 이 책을 읽은 후에 처음 든 생각은 사실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의 문제점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유능한 팔로워가 아니었다.
물론 이 책에서 나오는 lesson들이 여타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결국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결론에 가면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을 하지 않던가). 타 자기계발서는 정말 스마트한 직장인, 똑똑한 사람, 엄청나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 등이 본인의 성공스토리나 처절한 노력들을 써 내려간다.
그걸 보고 있자면 약간 막막하거나 마음이 힘들 때도 있는데, 신기하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내 현실에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오히려 위안 비슷한 감정이 든다. "위대한 역사적 위인들 역시 너희랑 별반 다를 것 없었어. 조직에 치이고, 경쟁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어. 인생 뭐 다 그런거 아니겠냐" 라고 토닥거리는 것 같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로부터 동질감이란게 느껴지면 괜히 위안이 되 듯이.
역사적 위인들을 앞세웠지만 철저히 현대 직장인들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역사적인 내용이 불성실하게 나와있지도 않다. 적재적소에 있는 주석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마음 한 켠에 인문이 목 마르지만, 현실세계를 살아내야하는 직장인들은 한번쯤 읽어보길 추천한다.
#조선직장인열전 #신동욱 #국민출판사 #성장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