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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a Dec 15. 2019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역사책이냐

『조선 직장인 열전』초 현실적인 조선 '직장인' 이야기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 소설책이었나 역사책이었나 아무튼 문학책을 읽고 있었다. 당시 정직원이었던-그야말로 지금 나같이 찌든 직장인-분께서 "저런 책을 읽다니 신기하네, 왜 읽지?" 라며 굉장히 의아 해 했던 반응이 기억난다.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반응만큼은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것으로 보아 내 뇌리에 박혔던 것 같다.


그렇듯 인문은 언제나 찬밥신세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수록, 치열하게 살아갈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눈 앞의 현실에만 집중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여유있게 소설이나 역사책을 읽었던 사람일 지라도, 헥헥거리며 살다보면 서점에 가서 결국 사는 책은 소설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에 대한 책일 때가 많다.


 

역사책인지 자기계발서인지, 그 묘한 밸런스를 잘 맞춘 책『조선 직장인 열전』



성장판을 통해 기회가 생겨 읽어 본 조선 직장인 열전은, 실무에 도움이 되는 책을 보고 싶은데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서에 지친 사람에게 추천한다. 혹은 역사를 교양삼아 읽고는 싶은데, 필요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서 읽기 꺼려지는 분들에게도 적합하다. 그만큼 이 책은 밸런스가 잘 잡힌 책이다.


사실 읽기 전에는 '직장인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이름만 이렇게 해 놓고 완전 역사책이겠거니'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 및 사실들을 현대의 조직생활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녹여져 있다. 분량으로 봐도 역사적 서술 50% + 해석 및 교훈 50% 정도로 아주 적절한 비율로 분배 해 둔 노력이 엿보인다. 


단순히 분량만 나눈 것도 아니고, 마치 사극드라마에서 해설이 중간중간 나오듯 적재적소에서 코멘트들이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역사적 사건들을 구경 하면서도 동시에 나의 회사 생활이 오버랩되며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황이니 ㅇㄱㄹㅇ ㅂㅂㅂㄱ이지, 일반인이 이렇게 썼다간 잘난척 대마왕 이력서로 낙인찍힐 수도 있겠지?



작은 디테일이지만 구성도 재미있었다. 일단 시대별, 사건별 서술이 아닌 인물별 목차로 구성되어있어 굳이 순서대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적 인물들의 직장인st 느낌이 최대한 들도록 각 인물별 챕터 앞 단에는 각 인물의 이력서가 있다. 


자소서를 밤새 썼던 취준생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적 위인의 이력서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별 것 아닐 지 모르겠지만, 인물별 요점정리를 해 주는 기능적 역할도 해 주기 때문에 재미도 내용도 둘 다 잡은 느낌이다.  


저자는 대기업 중에서도 메가톤 대기업에 다니고 계시니, 독자의 회사 상황 혹은 개인 성향에 따라 공감이 살짝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대기업에 다니다 결국 현재 스타트업에 재직 중이기 때문에 성향은 당연히 조금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읭?" 했던 부분은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정말 와 닿았고 그 중에서도 꽤 나에대한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회초년생 시절을 돌이켜보며 '유능한 팔로워'에 대해 생각 해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대기업 시절의 내가 많이 생각이 났는데, "좋은 팔로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를 돌아보면 항상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가시돋힌 고슴도치같았다. 다가오는 손길에도 차갑게 대할 때가 많았고, 그럴 수록 나는 더욱 더 나의 능력을 증명하기에 바빴다. "제일 어리지만 내가 가장 능력있어"라는 메시지를 가슴 속에 품고 다니는 사람마냥. 


지금 돌이켜보면 건방지기 짝이 없었을 때도 종종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비단 이 책을 읽은 후에 처음 든 생각은 사실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의 문제점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유능한 팔로워가 아니었다.


물론 이 책에서 나오는 lesson들이 여타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결국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결론에 가면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을 하지 않던가). 타 자기계발서는 정말 스마트한 직장인, 똑똑한 사람, 엄청나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 등이 본인의 성공스토리나 처절한 노력들을 써 내려간다. 


그걸 보고 있자면 약간 막막하거나 마음이 힘들 때도 있는데, 신기하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내 현실에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오히려 위안 비슷한 감정이 든다. "위대한 역사적 위인들 역시 너희랑 별반 다를 것 없었어. 조직에 치이고, 경쟁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어. 인생 뭐 다 그런거 아니겠냐" 라고 토닥거리는 것 같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로부터 동질감이란게 느껴지면 괜히 위안이 되 듯이.


역사적 위인들을 앞세웠지만 철저히 현대 직장인들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역사적인 내용이 불성실하게 나와있지도 않다. 적재적소에 있는 주석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마음 한 켠에 인문이 목 마르지만, 현실세계를 살아내야하는 직장인들은 한번쯤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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